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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아, 그 말이 그렇구나(성기지)

“맑순 주세요.”

by 한글문화연대 2017. 4. 19.

[아, 그 말이 그렇구나-182] 성기지 운영위원

 

음식점에 가면 차림표에 “대구지리”, “복지리” 따위로 써 붙인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고춧가루를 넣어 얼큰하게 끓인 생선국을 “매운탕”이라 하는 데 비하여, 고춧가루를 쓰지 않은 생선국을 그렇게 일컫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지리(ちり)”는 일제강점기 이후 아직도 우리말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일본어 낱말이다.


몇몇 책에서는 “지리”를 대신할 우리 낱말로 “백숙”을 들어 놓았다. 양념하지 않은 채로, 곧 하얀 채로 익혔다는 뜻이겠다. 하지만 “대구지리”나 “복지리”를 “대구백숙, 복백숙”이라 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그것은 달걀 백숙과 같은 음식이 아니라 국이기 때문이다. 이 음식들은 매운탕과 상대되는 것이므로 “지리”란 말을 “맑은탕”이나 “싱건탕”으로 대신하는 것이 좋겠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이미 “맑은탕”으로 순화해 놓았다. 예를 들어 “복지리”는 “복맑은탕”이나 “맑은복탕”으로, “대구지리”는 “대구맑은탕”이나 “맑은대구탕”으로 바꾸어 쓰도록 한 것이다.


한글학회 직원들이 자주 찾는 근처 음식점에서는 “맑은순두부”를 팔고 있다. 주문할 때에는 그저 “맑순 주세요.” 한다. 그리고 보면 고춧가루를 넣지 않은 국물 음식에는 두루 ‘맑은’을 붙일 만하며, 빛깔에 관계없이 맵지 않은 국물 음식은 “싱건찌개”, “싱건탕”처럼 ‘싱건’을 붙여 써도 괜찮을 듯하다. 아무튼 이제부터는 음식점 차림표에서 “복지리”나 “대구지리”와 같은 국적 불명의 음식 이름들은 씻어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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