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랑방/대학생기자단

연세대학교에 흐르는 ‘한글 물결’을 따라 - 이유진 기자·남재윤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17. 6. 28.

연세대학교에 흐르는 ‘한글 물결’을 따라

 

 

한글문화연대 대학생기자단 4기

 

이유진 기자 yoojin7305@naver.com

남재윤 기자 pat0517@naver.com


복사실, 학생식당, 교내서점, 커피점, 도서관. 대학생이라면 자주 접하고 이용하게 되는, 학교 안에 있는 다양한 편의시설이다. 복사, 제본, 출력을 할 수 있는 복사실, 책을 살 수 있는 교내서점, 값싸게 밥을 먹을 수 있는 학생식당 등 편의시설마다 그 시설의 쓰임새를 이름으로 만들어 간판을 걸어둔다. 그런데 여느 학교와 다르게 연세대학교에는 편의시설의 이름이 독특하다고 한다.

 

▲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전북대학교 박물관 커피점, 충남대학교 교내서점,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건국대학교 기숙사사진이다.

 

연세대학교 교정을 지나 학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학생회관으로 들어가면 학생식당, 전자기기 대여실과 같은 이름과는 다르게 독특한 이름이 눈에 띈다. “푸른샘, 솟을샘, 하얀샘, 보람샘, 슬기샘, 맛나샘, 고를샘, 알뜰샘”. 연세대학교의  간판에 적힌 이름이다. 푸른샘, 하얀샘은 학생회관 매점 이름이고 알뜰샘은 도서관 매점, 슬기샘은 책방, 맛나샘, 고를샘은 식당 이름, 알뜰샘은 문구점, 보람샘은 기념품 가게 이름으로 모두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직접 지은 이름들이다.

 

이 이름들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순우리말 이름들이 우리를 두 팔 벌려 우리를 반겨주는 기분이 든다. 자주 사용하지 않아 익숙하지는 않지만 제 역할과 알맞은 이름이 정겨운 느낌을 자아낸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연세대 또한 학생식당, 복사실 등의 이름을 사용했지만, 그런 간판을 하나둘씩 순우리말로 지어 한글로 쓴 간판으로 바꾸는 물결이 시작되어 지금은 연세대학교를 상징하는 자랑거리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고를샘, 부를샘, 솟을샘, 본뜰샘, 빌리샘, 알뜰샘/슬기샘의 사진이다.

 

고를샘 : 스파게티와 리조또를 파는 식당으로, 학생회관 1층 왼쪽에 있다.
부를샘 : 한식, 중식, 일식을 파는 식당으로, 학생회관 오른쪽 고를샘 맞은편에 있다.
맛나샘 : 연세대 내에서 가장 싼 식당으로, 라면과 식사류를 판매한다.
하얀샘 : 과자, 라면, 각종 생활 용품을 판매하는 매점으로, 학생회관 1층에 있다.
한울샘 : 공과대에 위치해 있는 식당 겸 매점으로, 라면과 간단한 식사류를 판매한다.
본뜰샘 : 인쇄, 복사, 스캔, 팩스 등의 업무가 가능한 곳으로, 중앙도서관 지하에 있다.
빌리샘 : 각종 전자기기를 일정한 금액을 받고 빌려주는 곳으로, 학생회관 1층에 있다.
이외에도 보람샘, 슬기샘, 알뜰샘 등이 있다.

순우리말로 이름 붙인 한글 간판을 붙이기 시작한 사람은 과연 누굴까? 연세대학교 학생회관의 간판 이름을 순우리말로 지어 한글로 붙이기 시작한 사람의 발자취를 좇아가 보니 연세대학교 한글운동 동아리, ‘한글 물결’을 만날 수 있었다.

 

한글물결은 동아리 장을 ‘으뜸빛’이라 부르는데, 현재 으뜸빛인 연세대학교 컴퓨터과학과 권예린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 왼쪽은 연세대학교 컴퓨터과학과에 재학 중인 한글물결 으뜸빛 권예린씨의 사진이며, 오른쪽 사진 두 장은 한글물결의 활동 모습이다.

 


- 한글물결은 어떤 동아리인가요?

한글의 물결 안에 있는, 한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입니다. 1967년에 국어국문학과 소속 국어운동학생회(우리말 순화 운동)에서 발전해서, 현재 50년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980~1990년대에는 문집 ‘한어울’을 제작했고, 1990~2000년대에는 ‘한글이름 큰잔치’를 진행했으며, 최근에는 격년으로 신촌 일대 간판을 조사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글날에는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에 헌화 활동을 하고, 세종대왕 박물관 및 한글 관련 장소를 방문합니다.


- 연세대 안의 한글 간판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84년도에 으뜸빛이셨던 김슬옹 교수님께서 시작해서, 90년대에는 ‘한글이름 짓기 큰 잔치 대회’를 열어 한글(순우리말) 이름을 공모하여 ‘모듬샘’ 등을 공모하였습니다.


- 이렇게 순우리말로 지어 만든 한글 간판의 의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간판은 한 가게나 상호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순우리말과 한글이 그런 의도로 선택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아름답고,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말과 글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순우리말과 한글이 사랑받고 있다는 지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연세대학교 내에서 순우리말로 된 한글 간판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학생들이 우리말과 한글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한글 간판을 바탕으로 한글에 관한 관심과 사랑이 더 커졌으면 좋겠습니다.

 

권예린 씨는 이외에도 외국어와 우리말, 한글이 자리싸움을 하는 상황에서, 한글이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순우리말 한글 간판을 처음 시작한 김슬옹 교수께 한글 간판이 생긴 과정을 더 자세히 묻고 싶었다.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편지로 자세한 답을 받아 연세대학교 한글 간판에 가졌던 궁금증을 모두 풀 수 있었다. 김슬옹 교수는 국어학자이며 한글운동가로 한글을 지켜내는 일에 고군분투하고 있으셨다.

 

▲ 84년도 연세대 국어운동학생회 으뜸빛 김슬옹 교수 (사진 출처 동아일보)

-안녕하세요, 교수님! 간단한 소개 부탁합니다.

 

철도 고등학교 1학년 때 외솔 최현배 선생의 ‘우리말 존중의 근본 뜻’을 읽고 한글학회 부설 전국국어운동고등학생연합회 동아리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한글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용성(庸性)에서 ‘슬기롭고 옹골찬 우리말글의 옹달샘’이 되자고 순우리말로 개명을 하게 되었지요.


- 연세대학교 한글 간판이 1984년 김슬옹 교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한글 간판을 만들게 된 동기와 과정이 궁금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회평론의 길 1996년 8월호>에 쓴 글을 소개하겠습니다.

 

“푸른샘 이외는 한동안 모두 이름이 없었다. 그저 학생회관 매점, 도서관 매점, 구내 서점 등으로 불렀을 뿐이다. 그래서 정겨운 이름을 지어주자고 생각했다. 푸른샘의 샘자를 돌림자로 하는 방식을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내가 대학 2학년 때인 1983년 총학생회에 푸른샘 밑에 있는 매점 이름을 하얀샘으로 하자고 건의했고 학생회가 받아 들여 하얀샘이 탄생했다. (정확히는 언제 간판으로 걸렸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침 색깔 돌림까지 돼 더욱 좋았다. 


다음으로 태어난 이름은 솟을샘이다. 이 이름은 내가 대학 3학년 때인 1984년에 매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직접 지어 단 이름이다. 원래는 중앙도서관 지하에 있던 매점이다. 지하에서 솟는 샘처럼 학생들에게 원기왕성한 먹거리를 주는 매점이라는 뜻에서 솟을샘이라 지었다. 그런데 내 예언이 맞았는지 몇 년 후에 지하에서 지상 6층으로 올라갔다. 진짜 솟은 것이다. 도서관에서 공부에 찌든 학생들에게 솟는 샘이 된 것이니 도서관에 갈 때마다 자화자찬하게 된다.


다음으로 태어난 이름은 슬기샘이다. 일반인이 운영하던 서점을 학생 복지 위원회에서 운영하면서 공모해 얻은 이름이다. 슬기로운 지혜를 얻게 해 주는 서점이란 뜻이니 서점 취지와도 걸맞는 이름이 되었다. 다음으로 연세인 품안으로 온 이름은 알뜰샘이다. 이 가게는 학용품부터 갖가지 잡동사니를 파는 곳이다. 알뜰살뜰 작은 삶을 꾸려가는 학생들이 알뜰하게 이용하는 가게라는 뜻이다. 역시 공모를 통해 얻은 이름이다. 

 

다음으로 생긴 이름은 맛나샘과 고를샘이다. 모두 연세대 국어운동학생회인 ‘한글물결’에서 지었다. 맛나샘은 연세대에서 가장 싼 식당이다. 그 맛이 시골 장터 식당이나 옛날 허름한 주막을 연상시키지만 그 흐더분한 맛이 그만이다. 고를샘은 반찬을 직접 골라 먹을 수 있는 식당이다. 카테테리아라는 외래어보다 더 감칠맛나는 이름이다. 값이 비싼 듯 하지만 여럿이 조리조리 이용하면 다양한 먹거리를 싸게 먹을 수 있는 식당이다. 이제 식당 가운데는 교수님들과 대학원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식당만 이름이 없는 셈이다. ‘골똘샘’이라면 어떨까. 골똘히 연구하는 힘을 키워주는 식당이란 뜻이다. 

 

마지막으로 얻은 이름이 보람샘이다. 역시 한글물결에서 1996년에 지었다. 이곳은 학생회관 1층에 새로 생긴 기념품 전문 매장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보람’이란 ‘어떤 것을 잃어버리지 않거나 다른 물건과 구별하기 위해서 하는 표식“이란 뜻이다. 그 뜻을 잘 몰라 널리 사용하지 않는 토박이말을 활용해 지은 이름이다.

 

이렇게 해서 학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의 이름이 샘자 돌림이 되었다.  푸른샘이란 이름을 누가 지었는지 그야말로 샘이 되어 흐른 셈이다. (어느 신문에 학생과 직원이 지었다는 글이 소개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신문이름과 날짜를 몰라 찾지 못했다. 통신으로도 검색되지 않았다. 최초의 샘을 만들어준 그분께 감사드린다.) 사람은 이름을 짓는 유일한 동물이다. 이름을 불렀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는 김춘수 시인의 싯귀가 떠오른다. 막상 이 시인은 자신의 이름을 군사정권에 팔아 시의 생명력이 퇴색하긴 했지만 잘못된 의미로 자신의 시를 입증한 셈이다. 

 

나는 연세대의 샘자 돌림 이름을 토박이말 순결주의나 민족주의로 해석하고 싶지는 않다.  모든이에게 생명수로 흐를 수 있는 샘의 창조적 의미와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학교 공동체를 가꿔가는 공동체의 표징으로 해석하고 싶다. 연세대는 국학정신과 자유정신, 기독교 정신을 내세우는 학교다. 세 정신을 적극적으로 하나로 묶을 수 있다면 그것은 더불어 사는 아름다움과 그것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의 자세일 것이다. 연세 독수리는 어디에 살아있고 어떻게 날고 있는가.”

 

- 순우리말로 지은 이름의 한글 간판을 추진하시면서 어려움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연세대가 한글 정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국학 전통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한글 간판의 의의는 무엇인가요?

간판은 얼굴이요 소통이고 배려입니다. 이용하는 사람 모두를 배려하면서 그 가게만의 개성과 정체성을 담으면 최고라고 할 수 있지요.”

 
- 한글 간판을 추진하신 장본인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글 간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인사동 간판들이 제일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인사동에서는 다양한 개성을 살린 한글 표기 간판이 많았고 스타벅스와 같은 브랜드 이름도 한글로 표기합니다.


- 한글 간판 추진과 비슷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앞으로 건설되는 한문화 단지의 간판을 순우리말과 한글 위주로 하게끔 세종시 건설 자문위원으로 참여하여 정책 자문을 하고 있습니다.


김슬옹 교수와 나눈 이야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학교 편의 시설물의 주체는 당연히 학생으로, 학생들이 직접 운영하는 것도 있고 일반인이 운영하는 것도 있지만 학생이 주인입니다. 거기에 학생들의 애정을 담은 이름을 가졌다는 것은 연세대와 연세대인들의 복입니다. 물론 진정한 의미는 그런 시설물을 어떤 방식으로 이용하느냐에 달렸지만 말이지요.”

 

김슬옹 교수가 한글 간판을 시작하고 난 뒤로 연세대 국어운동 동아리 ‘한글물결’에서는 매년 공모전을 열어 다양한 순우리말 이름들을 만든다고 한다. 한 사람의 작은 물결이 어느새 큰 물결이 되어 흐름을 바꾸어 버린 것이다. 우리 또한 순우리말로 된 한글 간판을 취재하면서 학생들이 애정을 담아 만든 이름이 연세대 곳곳에 오롯이 존재하며, 그 이름이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것이 참 복되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래어가 무수한 요즘, 순우리말 이름으로 학생 편의시설 이름을 지정한 학교는 많지 않다. 아마 오랜 시간 써 왔던 이름이 하나하나 그 자리에 머무르고 있는 탓이 아닐까. 순수한 우리 한글만으로 그 역할과 의미를 온전하게 보여줄 수 있는 한글 간판의 물결이 전국에 널리 퍼져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