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좋은 나라-68] 김영명 공동대표
2002년의 촛불시위가 촉발한 한국의 ‘반미’ 운동 시비는 보수 기득권층과 미국 측의 과장된 우려가 낳은 결과물이었다. 당시 사건의 성격이나 시위대의 요구, 그리고 평화적인 시위 방식 등을 종합할 때 그 시위를 반미 시위라고 규정하기는 어려웠다. 그 뒤에 일어났던 여러 번의 촛불 시위들도 반미적 성격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광우병 유발을 우려한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한 촛불 시위(2008)나 사드 배치 반대 시위(2016) 등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한국인들이 할 수 있는 정당한 문제 제기들이었다. 미국의 대한 정책이나 한국의 대미 정책에 대한 비판이나 반대 자체를 반미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덜 불평등한 한미관계에 대한 요구나 이라크 침공 반대 자체는 반미가 아니다. 앞의 것은 당연히 있어야 하는 국민의 요구이고, 뒤의 것은 반미로까지 가지 않았다. 미국 체제 자체에 대한 거부나 한미 동맹의 파기 주장 정도라면 반미 주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에서 그런 세력은 미미하고 그동안 일어난 여러 촛불 시위들은 반미를 위한 시위가 아니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사회의 반미 논쟁은 그 근거가 미약하다. 한국 사회에는 뚜렷하게 반미라고 할 만한 것이 없고 있다고 해도 그 세력이 매우 약하다는 말이다. 설사 한국에서 진정한 반미 운동이 나타난다고 하여도 그 체제에는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있다. 한국 사회에 친미 보수 구도가 워낙 지배하다보니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것 자체가 반미로 비쳐지고 이에 따른 우려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우리는 이념적인 면역이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는 다양한 목소리를 인정하여 이념적, 정치적 면역성을 높여야 한다. 그래야 국내외 정치의 여러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
지금과 같이 지나치게 미국 의존적인 한국의 대외 관계는 한국의 국력 증대와 중국의 부상 등 국제체제의 성격 변화에 따라 조금씩 바뀌어야 한다. 한미관계 뿐 아니라 모든 대외관계에서 자주성을 좀 더 높이고 좀 더 독자적인 외교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미 동맹 안에서 조금 더 우리의 위상을 올려야 한다. 구체적으로 국군의 전시 작전권을 빨리 회수해야 한다. 미국 정부가 가져가라고 하는 전시 작전권을 준비 부족을 핑계로 계속 미루는 것은 국가적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한다. 실리가 중요하지 자존심이 무엇이 중요하냐고 반문할 사람에게 미리 답한다. 우리는 어린이가 아닌 어른이다. 대한민국을 사람에 비한다면 말이다. 언제까지 남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있을 것인가? 어른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국제사회에서도 어른으로서 행동할 때가 되었다. 또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 자체가 바로 한국의 국가이익 즉 ‘실리’이다. 그렇게 하여 한국은 조금씩 자주국방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주국방이 다른 나라와 협력하지 않고 순전히 자기 힘으로만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가 아님을 잘 알 것이다. 미국의 군사력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지금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북한보다 몇 십 배 되는 군사비를 사용해온지가 몇 십 년인데 아직도 북한 침략에 대한 방어를 미국에게 맡기고 있는가? 우리 힘으로 북한을 격퇴할 능력을 아직도 못 갖추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정부의 무능이요 사실이 아니라면 정부의 거짓말이다. 물론 북한 핵 무기가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 문제는 여기서 다룰 수 없다.
우리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강대국의 영향 아래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강대국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나라를 망쳐버린 우리 선조들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이 말은 시대에 뒤떨어진 민족주의가 아니다. 또 민족주의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도 아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존립과 자주 독립, 그리고 한국인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길이 친미가 될 수도 있고 반미가 될 수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친미나 반미는 한국사회에서 이미 정형화 되어버린 친미 사대주의 아니면 그 반대인 빨갱이 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과 친한 것이 친미요 미국의 잘못된 것에 반대하는 것이 반미다. 원래 그대로의 말뜻이다. 어느 것을 더 중시할지는 개개인 각자의 몫이다. 반미와 친미의 이분법을 넘어서자는 얼핏 상식적이고 식상할 법한 제언도 일리는 있다. 다양한 견해와 이념들이 공존하면서 경쟁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어느 쪽으로 기울든 나는 한국의 자주성과 한국인의 존엄을 지키는 쪽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그것이 국가 주권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후기)
지금까지 말한 내 생각은 좌이 우니 하는 이념적인 성향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물론 아주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좌파가 보면 우파로 보일 수 있고 우파가 보면 좌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보다는 뭔가 ‘독립적’인 것을 추구하는 내 성향을 반영한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나는 조금 독립적인 성향을 보인 것 같다. 그렇다고 부모한테서 독립하여 혼자 살았다는 말은 아니고, 사대적이거나 의존적이거나 우리 자신을 비하하는 말을 매우 싫어하였다는 말이다. 개인 삶도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 스스로 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이런 개인 성향이 나라의 대외 관계에 대한 내 생각이나 취향에서도 자연스러이 나타나는 것 같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한글 전용에 관심이 많았고 커서는 영어 남용을 싫어하여 한글문화연대까지 만들지 않았던가.
끝으로 너무 쓸데없이 자주 되풀이하는 뱀 꼬리 하나를 또 달자. 이번이 (거의) 마지막일 것이다. 그래서 내가 출세를 못한다는 말이다. 아니 이제는 과거 시제로 하자. 그래서 나는 출세를 못했다. 출세를 하려면 큰 힘에 붙어야 하는데 그걸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독립적’인 성향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그래서 출세를 못한다는 말을 심심찮게 했던 것은 그래도 혹시 어떤 사람이 알아보고 날 출세시켜주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기 때문인데(그런데 정말 그랬을까?), 이제는 나이도 그럴 때가 지난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소리도 이젠 그만이다. 말하고 보니 재미있다. 재미있는 세상 아닌가. 재미지게 살다 가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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