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랑방/대학생기자단

최초의 외국인 한글 학자- 호머 헐버트 - 김채원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17. 8. 30.

최초의 외국인 한글 학자- 호머 헐버트

- 한국어와 한글을 사랑한 외국인 특집 ① 


 

한글문화연대 대학생기자단 4기 김채원 기자
chaewon11@naver.com

 

최초의 외국인 한글학자 호머 헐버트

 

한글을 4일 만에 깨우치고 3년 만에 한글로 교과서를 썼다. 조선 최초의 신식학교 육영공원의 영어교사였던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 1863-1949)의 이야기다. 미국인 선교사로 1886년 조선 땅을 처음 밟은 그는 수많은 업적을 세웠다. 헤이그 제4의 특사로 나머지 특사의 입국을 도왔고, 조선 억압의 실태를 알리고자 수차례 미국과 소통하려 했다. 당시 전국 세금의 약 1.5%를 독립운동 지원금으로 낼 정도로 호머 헐버트는 한국을 사랑한 외교관이었지만, 최초의 외국인 한글 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최초의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를 편찬했으며, 한글의 로마자 표기를 연구한 큰 업적을 남겼다. 또한, 여러 논문에 한글을 배우기 쉽고 과학적인 문자로 언급했다. 1903년 미국 스미스소니언 협회 연례보고서에 훈민정음이라는 영문 논문을 기고해 대중이 의사소통하는 매개체로 한글이 영어보다 훌륭하다며 그 우수성을 알렸다. 헐버트는 1908년까지 총 15권의 한글 교과서를 펴냈는데 주시경 선생과 한글 연구를 함께했으며 우리글에 띄어쓰기와 점찍기를 도입하고 고종에게 건의해 국문연구소를 만들게 했다. 이렇듯 호머 헐버트는 한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외국인이었다.

 

선비와 백성이 모두 알아야 할 책 [사민필지]

최초의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의 표지

‘사민필지(士民必知)’는 선비와 백성이 모두 알아야 할 책이라는 뜻이으로 1889년 편찬된 최초의 한글 교과서다. 세계지리, 천체, 각국의 정부 형태와 인구를 한글로 작성한 세계지리 교과서로 헐버트가 육영공원에서 학생들에게 외국어, 지리와 서방 세계 물정을 가르치던 중 한글로 된 교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제작했던 것이다. 외국인 스스로 깨우치고, 책을 제작할 정도였으니 사민필지는 편찬 자체로 한글이 익히기 쉬운 글자임을 증명한 셈이다.


현재 [사민필지]는 1890년대 국어 연구의 소중한 자료다. 한글 전용 교과서이기에 그 시대의 언어습관과 표기법이 상세히 적혀있다. 표기법에서 ‘글ㅅ자, 언문ㅅ법’ 등 사이시옷이 사용되었고, 된소리 표기에 ‘ㄲ, ㅆ’ 같은 글자 외에도 지금은 사라진 ‘ㅺ· ㅼ’ 이 사용된 점이 주목할 만하다. 특히 유럽의 국명을 영어식 발음에 따라 ‘유로바·노웨국·쉬덴국·덴막국·네데란스국’ 등으로 적었다. 참고로 한문본에서는 위 지명이 ‘구라파(歐羅巴)·나위(那威)·서전(瑞典)·정말(丁抹)·하란(荷蘭)’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영어식 발음을 한글로 적어 들리는 영어 발음에 최대한 가깝게 써 이해하고 발음하기 쉽게 연구했다는 점에서 연구가 돋보일 뿐 아니라 그 의의가 크다.

 

사민필지의 내부

게다가 사민필지는 중화사상에서 벗어난 교과서였다. 예를 들면 “일본: 일기는 대한보다 좀 덥고 습기가 많으며…….” 와 같이 서술했으며 각국의 수출입액은 한국의 화폐단위인 ‘원’으로 표시했다. 한국을 중심으로 여러 나라를 비교해 특징을 나타낸 것이다. 외국인이 편찬했지만, 한국에 대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지금처럼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 국제정세에 대해 알기 힘든 한국에 지식을 전달하고 근대화의 문을 열어 주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헐버트 박사는 그 서문에서 "조선 언문이 중국 글자에 비하여 크게 요긴하건만 사람들이 요긴한 줄도 알지 아니하고 업신여기니 어찌 아깝지 아니하리오."라며 하대 받던 한글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한글을 로마자로 표기하다

헐버트의 또 다른 업적은 한글의 로마자 표기 연구다. [사민필지]에 등장하는 외국 지명은 한글의 로마자 표기를 활용한 것이다. 이현복 서울대 명예교수는 헐버트 박사가 1895년 8월 발표한 한글 로마자표기법의 상당 부분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쓸 정도로 매우 정확하고 선진적이었다고 평가한다. 헐버트 박사는 '우' 소리를 'oo'가 아니라 'u'로 적고 '으'를 'eu', '외'를 'oe'로 표기했으며, 'ㄱ'을 경우에 따라 'k'나 'g'로 썼다. 또 'ㅈ'이 낱말의 중간에 올 때는 유성화해 '아조'는 'acho' 대신 'ajo'로 써야 한다고 했다. 한문 번역으로 읽었던 외국어를 한글 발음으로 표기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당시 외국인 한글 학자만이 할 수 있던 연구였다. 영어와 한글 모두에 깊은 이해가 전제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헐버트의 심도 있는 한글 이해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글보다 위대한 문자는 없다.’ 호머 헐버트가 한글 연구 중 한 말이다. 그는 자신의 논문에서 ‘조선어는 대중연설에 적합한 말’이라고 밝혔다. 이는 매우 시대를 앞서간 통찰이라고 볼 수 있다. 한글의 우수함을 깨달았고, 잘 쓰이지 않는 실태에 안타까워했던 호머 헐버트. 그는 직접 15권의 교과서를 편찬해가며 한글로 다양한 지식을 전하고, 한글의 우수함을 세계에 알리고자 노력했다.

 

최초의 한글 교과서 제작자는 외국인이다. 부끄러워야 할 사실일까, 아니면 외국인이 알아볼 정도로 뛰어난 문자를 가졌다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껴야 할까.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중화사상 속에 천시받던 한글을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활용한 호머 헐버트는 국민이 고마워해야 할 업적을 세웠다. 동시에 우리는 한글을 아끼고 사랑해야 할 본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한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라는 말이 있다. 최근 맞춤법 파괴 문제와 외국어 남용이 만연한 이 시점에, 호머 헐버트의 한글 애정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며 우리의 언어 습관을 돌아보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