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 말이 그렇구나-202] 성기지 운영위원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며 여행자의 계절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취업 철이 시작되는 때이기도 하다. 마지막 학기를 보내며 많은 젊은이들이 사회의 문을 두드리는 계절이다. 취업을 위한 첫 준비가 바로 이력서를 쓰는 것이다. ‘이력’은 자기가 겪어 지내온 학업과 경력의 발자취이고, ‘이력서’는 이 이력을 적은 서류를 가리킨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한자말 ‘이력’ 말고 순 우리말 가운데도 ‘이력’이 있다. 순 우리말 ‘이력’은 “많이 겪어 보아서 얻게 된 슬기”를 뜻한다. 가령, “이젠 이 장사에도 웬만큼 이력이 생겼다.”와 같이 어떤 일에 ‘이력이 나다’, ‘이력이 붙다’처럼 사용하는 말이다. 이럴 때 쓰는 ‘이력’과 한자말 ‘이력’은 전혀 다른 말이니 잘 구별해야 한다. 한글학회는 한자말 ‘이력’을 순 우리말로 바꾸어 ‘해적이’라 쓰고 있다. 자기가 지내 온 일들을 햇수 차례대로 적은 것이어서 ‘해적이’이다.
한자말과 순 우리말의 소리가 똑같아서 어느 한쪽이 잘 쓰이지 않게 된 사례가 더러 있다. 이때에는 주로 순 우리말 쪽이 한자말에 가려 버린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을 줄여서 ‘노총’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생긴 지 한 세기가 되지 않았는데도 ‘노총’ 하면 누구나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을 떠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몇 백 년 이상 써 온 순 우리말 가운데도 ‘노총’이 있다. 순 우리말 ‘노총’은 “일정한 기일 동안을 남에게 알리지 않아야 될 일”을 뜻한다. 가령, “그 일은 노총이라, 일이 완성될 때까지 비밀이다.”처럼 쓰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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