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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도봉구, 유흥업소 밀집지역에서 한글문화거리로 변신하다 - 김선미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17. 12. 4.

도봉구, 유흥업소 밀집지역에서 한글문화거리로 변신하다

 

한글문화연대 대학생기자단 4기 김선미 기자
sunmi_119@naver.com

 

서울시 도봉구에서 빈민 문제와 환경 개선 문의가 이어진 ‘방학천변 유흥업소 밀집지역’을 역사와 예술이 숨 쉬는 관광명소로 바꾸고 있다고 한다. ‘한글문화거리’를 조성하여 주민 소통의 공간과 청년 예술가를 위한 공방이 있는 거리로 만드는 도시재생사업이다.

 

방학천을 따라 걷다 보면 한글 창제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진 세종대왕의 둘째 딸인 정의공주 묘와 훈민정음 해례본을 지켜낸 간송 전형필 선생 가옥을 만날 수 있다. 이러한 지리적 위치를 이용하여 한글문화거리로 이름을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방학천변의 변화한 모습과 한글문화거리를 만나보자.

▲ 한글문화거리 조성 전(위)과 후(아래)의 방학천변 전경. (출처=도봉구청)

유흥업소에서 젊은 예술가의 보금자리로

방학천 주변 일대는 일명 ‘방석집’이라고 불리는 퇴폐업소 31곳이 20여 년간 영업을 이어왔던 지역이다. 이러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도봉구는 2016년 4월부터 단속을 시작하였고 지난 11월 15일, 드디어 31곳의 유흥업소가 모두 문을 닫았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주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과 청년 예술가를 위한 공방이 들어서고 있다.

▲ 유흥업소 자리에 들어선 공방들.

방학천의 변화에는 도봉구의 노력뿐만 아니라 지역 작가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있었다. 이들은 어둡고 침침했던 하천의 벽에 찔레꽃, 청둥오리 등을 그려 한층 생기 있는 모습으로 변화시키고 지역공동체 활성화를 도모했다. 이 벽화거리에 세종대왕의 둘째 딸인 정의공주와 훈민정음 해례본을 지켜낸 간송 전형필 선생 그림도 있다.

 

민족문화유산의 수호자, 전형필

▲ 전형필 가옥 팻말

▲ 간송 전형필 선생 가옥 전경

방학천을 나와 북한산 둘레길을 따라 조금만 걷다 보면 금방 전형필 가옥을 만날 수 있다. 간송 전형필(1906~1962)은 일제 강점기에 우리의 문화유산을 수집하고 연구하여 이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1943년 6월,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간송은 그것을 구매하려했다. 당시 판매자는 해례본의 값을 천원이라고 매겼지만, 간송은 귀한 물건은 제 값을 치러야 한다며 당시 집 열채 값인 만원을 지불하고 천 원은 판매자에게 수고비로 주었다고 한다.위의 일화에서 볼 수 있듯이 간송은 일제가 수탈해 가는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는 것에 힘을 쏟았는데,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하여 회화, 도자, 금속공예, 불교조각 등 수많은 문화재를 지켜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윤복의 단오풍정, 미인도 역시 그의 소장품이다. 이처럼 전형필의 가옥은 한글문화의 중심지로써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수집하는 민족 문화유산의 수호자였던 간송의 얼과 혼이 서려 있다.


한글창제의 숨은 공신, 정의공주

▲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 전경

전형필 가옥에서 나와 북한산 둘레길을 따라 조금만 더 걷다 보면 세종대왕의 둘째 딸인 정의공주와 사위 안맹담의 묘소를 만날 수 있다. 학문을 장려했던 세종대왕은 자녀들에게도 그 교육을 소홀히 하지 않았는데, 글공부에 뛰어난 실력을 보인 정의공주는 세종대왕의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났다. 특히 정의공주는 우리가 흔히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창제했다고 생각하는 훈민정음에 보이지 않는 큰 역할을 했는데, ‘죽산 안씨 대동보’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세종이 우리말과 한자가 서로 통하지 못함을 딱하게 여겨 훈민정음을 만들었으나, 변음과 토착(사투리)을 다 끝내지 못하여서 여러 대군에게 풀게 하였으나 모두 풀지 못하였다. 드디어 공주에게 내려 보내자 공주는 곧 풀어 바쳤다.” 또한 우리말을 우리글로 쓰고 싶었던 세종대왕에게 한자를 이두로 표기하는 것의 불편함을 이야기해 한글 창제에 박차를 가하게 한 인물도 정의공주이다. 이처럼 정의공주의 묘에서는 그녀의 우리말글에 대한 사랑과 한글창제의 의지를 다시금 생각할 수 있다.

 

이번 주말에는 도봉구에서 빈민가에서 예술가의 공간으로 변화한 방학천을 만나고, 간송과 정의공주가 가진 우리문화에 대한 사랑을 함께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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