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랑방/대학생기자단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이란? - 오주현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18. 1. 15.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이란?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4기 오주현 기자
dhwnus@snu.ac.kr


“그런데 저희 PC경찰 프로그램이 이 논의를 거의 박살냈습니다. 사람인 저희들은 별로 한 것도 없었어요. 이 프로그램에 뭐가 걸렸느냐 하면, ‘이반'이라는 표현을 계속 PC하지 않다고 지적질을 한 거예요. 그게 옛날에는 동성애자들이 스스로를 부를 때 썼던 말이에요. 그런데 요즘은 PC하지 않다고 안 쓴대요. 그 바닥이 용어가 복잡하더라고요.……그런데 저희 프로그램이 계속 그 용어 문제를 지적하고 나선 거였죠. 그랬더니 이 사람들이 자중지란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온라인에서 진보 사이트가 하는 일을 망칠 수 있겠다 하는 교훈을 그 일로 알게 됐습니다.”

(p.85, 장강명 장편소설 『댓글부대』)

 

장강명의 장편소설 『댓글부대』에 나오는 대목이다. 진보적인 인터넷 사이트에 잠입해 악의적 댓글로 여론을 조작하고 돈을 받는 이들을 그린 이야기다. 이 소설에서 ‘피씨(PC)하다’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이 인터넷 상에서 분란을 일으키기 위한 핵심 전략이 바로 ‘피씨하지 않은’ 말을 늘어놓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피씨(PC)’의 정의

 ‘피씨(PC)’는 폴리티컬 코렉트니스(Political Correctness)의 약자다. 우리말로는 흔히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표현한다. 『온라인 옥스퍼드영어사전』에 폴리티컬 코렉트니스(Political Correctness)-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거나 차별받는 그룹을 배제하거나 하찮은 존재로 만들거나 모욕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표현이나 행동을 피하는 것. (예문) 여자들은 인권에 대한 그의 입장과 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그를 좋아한다.”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논의는 1970년대경부터 미국의 여성주의 운동가, 신좌파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1990년대에는 언론에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하면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인종차별부터 이민자, 장애인, 낙태, 성소수자 문제 등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의 점화성 높은 주제와 갈등이 정치적 올바름의 주요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사회적 합의에 따르면,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라는 말은 특정 종교의 색을 띄는 말이기에 ‘해피 홀리데이스(Happy Holidays)’라고 써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논의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다는 비판도 역시 있으며, 실제로 정치적 올바름 운동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정치적 올바름에 반대자들이 내린 정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포스트 모던 시대의 급진주의자들이 다른 사람에 대해 배려하는 민감함이라는 구실을 걸고, 성차별주의자·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하는 고통을 (사람들에게) 가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그들의 스피치코드와 행동을 따르도록 요구한다. - 폴 버먼 (1992)”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언론의 예상을 뒤엎고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을 두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그의 언행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트럼프는 선거 출마 때 아예 정치적 올바름을 거부하고 선거 유세 기간 내내 거침없는 막말을 이어갔다. 그는 “워싱턴의 기성 정치인들은 피씨(PC)에 숨어 문제의 핵심을 얘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이 망가지고 있다”라고 외쳤는데, 이런 그의 행보가 정치적 올바름의 모범 답안에 눌려 의견을 내세우지 못하고 숨어있던 피씨 반대파들의 표심을 끌어 모았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트럼프의 당선과 정치적 올바름의 관계를 분석한
책이 출판되기도 했다.
(출처:http://www.ytn.co.kr/_ln/0125_201711031442451953)

 

우리나라의 정치적 올바름
우리나라에도 차별적이거나 부정적인 언어를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2015년 법제처에서는 법령에 쓰였던 ‘파출부’, ‘사생아’, ‘혼혈아’ 등을 각각 ‘가사도우미’, ‘혼외 자녀’, ‘다문화 가정 자녀’ 등으로 바꾸어 쓰기로 했다. 이들 언어 표현이 특정한 직업, 성, 출생 등을 비하하는 등 차별적 의미를 지닌다고 본 데 따른 것이다. 오랫동안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고 지적받아 온 '정신지체(Mental Retardation)'라는 용어도 2017년 3월 교육부가 특수교육법을 개정함에 따라 ‘지적장애’라는 말로 바뀌었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과거에 쓰던 차별적인 용어에 대한 민감성이 높아지고, 변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과하면 독이 되는 법. 미국의 선례를 보며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의 역풍을 맞지 않도록 조심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장강명의 『댓글부대』가 풍자하고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모습처럼, 표현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본질을 소외시키고 혐오를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박금자, 『폴리티컬 코렉트니스 - 정의롭게 말하기』, 커뮤니케이션 북스, 201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