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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아, 그 말이 그렇구나(성기지)

‘밑’과 ‘아래’

by 한글문화연대 2018. 10. 24.

[아, 그 말이 그렇구나-257] 성기지 운영위원

 

흔히 쓰는 말인데도 ‘밑’과 ‘아래’의 차이를 물어보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국어사전에서는 ‘밑’을 “물체의 아래나 아래쪽”으로 풀어놓고, ‘아래’에는 “어떤 기준보다 낮은 위치”로 설명해 놓았다. 이 사전 풀이만으로는 얼른 구별되지 않는다. 먼저 ‘밑’의 쓰임새를 보면,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 “손톱 밑의 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등과 같은데, 모두 다리와 손톱과 독의 가장 아래쪽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때의 ‘밑’을 ‘아래’로 바꿔 써보면 매우 어색하다. 말하자면 ‘밑’은 ‘항아리 밑’처럼 사물의 일부이거나 ‘다리 밑’처럼 그 사물의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있는 부분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아래’는 ‘아랫배’, ‘아랫사람’처럼 ‘위’와 짝이 되는 경우이거나 “산 아래 동네”처럼 사물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공간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가령, ‘밑에서’라고 하면 “나는 훌륭한 선생님 밑에서 배웠다.”처럼 앞 사물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관계를 나타내지만, ‘아래에서’라고 하면 “나무 그늘 아래에서 책을 읽었다.”처럼 어떤 조건이나 영향이 미치는 범위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그러면, “훌륭한 지도자 밑에서”와 “훌륭한 지도자 아래에서” 가운데 어느 것이 바른 말일까? ‘밑’은 ‘아래’보다 밀접한(또는 직접적인) 관계를 나타내기 때문에, “훌륭한 지도자 밑에서”라고 하면 바로 그 지도자를 모시고 있는 관계를 말한다고 볼 수 있고, “훌륭한 지도자 아래에서”는 그 지도자의 다스림을 받는 처지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때에는 둘 중의 하나가 틀리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표현이 서로 다른 뜻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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