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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방송일을 하면서 역사 공부를 했다. 현재는 교수가 돼서 강의도 하고 책도 쓰고 있다. 2000년에 ‘한글문화연대’라는 단체에 몸을 담았다. 현재는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우리말을 알리고 바른 말 사용하기 운동을 하는 단체다. 1997년쯤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제사회에서 영어가 가진 위상을 고려할 때 영어를 국가 차원에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영어의 중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한글 대신 영어를 집중해서 배워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한글문화연대를 만들었다. 한글문화연대는 과거 정권에서 추진했던 영어몰입교육에도 반대했다. 모든 교육을 영어로 하자는 것인데, 당위성도 따져봐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한글날(10월 9일)을 공휴일로 지정하자는 운동도 했다. 최근에는 공공언어 감시활동도 한다. 일상에서 남용하는 외래어를 줄이자는 것이다. ‘노인쉼터’를 ‘노인쉘터(Shelter)’로 부르거나 ‘승차진료’를 굳이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늦깎이 대학생 생활도 했다. 2000년에 성균관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졸업 후 곧바로 석사 공부를 했다. 2005년 당시 ‘SBS 도전! 1000곡’을 진행하면서 공부를 병행했다. 하지만 박사 과정을 시작하면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공부량이 많아지고 방송도 챙겨야 하다 보니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았다. 방송과 공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기였다. 당시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과정은 힘들지만 몰랐던 내용을 알게 될 때마다 희열이 있었다. 덕분에 어렵사리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현재는 성균관대에서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또 수원 화성 골목에서 아내와 함께 카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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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본 기사는 중부일보에 정성욱 기자가 작성한 기사(2021.1.19)입니다.
www.joongboo.com/news/articleView.html?idxno=363468630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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