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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예능 속 우리말 게임을 보며 마냥 웃을 수 없던 이유 - 김연우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22. 10. 5.

한글문화연대 대학생기자단 9기 김연우

yourkyw@naver.com

 

△티비엔(tvN) 예능방송 ‘지구오락실’의 한 장면

 

7월 국내의 한 케이블 예능 방송(지구오락실)에서 출연진들이 우리말만을 사용하는 게임을 즐겼다. 게임에서 이기려면 음식점에서 외국어를 사용하지 않고 종업원에게 음식을 주문하면 된다. 한 번이라도 규칙을 어기면 음식을 못 먹고 다른 식당으로 이동해야 한다.

게임이 시작되자 출연진들은 외국어를 쓰지 않으려고 진땀을 흘렸다. 이들의 말투는 마치 번역기 목소리를 흉내 낸 듯 어색했고 부자연스러웠다. 대체어를 찾으려고 갖은 애를 쓰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터트리게 했다. 끝내 출연진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습관처럼 오케이(OK)’, ‘사이즈(size)’ 등의 영어를 내뱉고는 게임에서 지고 말았다. 그러고는 게임이 너무 어렵다고 고백했다.

방송을 보면서 재미를 느꼈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우리의 일상 언어 가운데 외국어, 특히 영어가 너무나 깊숙이 침투해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출연자들은 순우리말로 충분히 대화할 수 있는데도 재미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영어를 쓴 게 아니다. 실제로 몇 분간 이 게임을 직접 해보면 영어 없이는 대화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이는 세계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해외에서 들어온 새로운 개념들은 마땅히 우리말로 대체할 단어가 없을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컴퓨터(computer)’, ‘로봇(robot)’과 같이 대체할 우리말이 없는 단어들은 외래어로써 이미 우리말의 한 갈래에 속하기에 당연히 사용해도 된다. 문제는 충분히 대체할 우리말이 있는데도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언론사 이름이 이에 해당한다. ‘OO 이코노미(economy)’, ‘OO 사이언스(science)’는 경제와 과학이라는 국어 표현을 못 본 척하고 영어 단어를 언론사 이름에 쓰는 것을 고집하고 있다. 쉬운 우리말을 사용해 원활한 의사소통과 모범적 언어생활을 장려해야 할 언론이 영어 이름을 쓰니 하물며 기사는 어떻겠는가. 언론이 앞장서서 외국어를 남용하니 답답하다.

이는 영어를 쓰면 똑똑하고 세련되어 보인다는 생각이 만연해있어서 그렇다. 순우리말을 사용하면 고지식해 보이기까지 한다. 우리는 예능에서처럼 외국어를 쓰면 눈앞의 음식을 포기해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에 있지 않다. 그렇다 보니 생소한 우리말 표현을 찾아보거나 쓰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흔히 통용되는 영어 표현들만 계속해서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외국어는 우리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말들까지 뒤섞어버리는, 언어 생태계를 교란하는 외래종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것이 외래어인지, 외국어인지 잘 살피는 노력을 기울이고 외국어는 순화해서 쓰도록 해야 한다. 대체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국립국어원 누리집의 다듬은 말 목록을 활용해보자.

우리말로 바꿀 말이 없다면 새로운 이름을 지어줄 수 있다. 예를 들어, ‘리플댓글이라는 새 이름을 얻고 바뀐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네티즌을 순화한 누리꾼은 언론과 공공기관 등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새 우리말 이름은 친근하고 입에도 더 잘 붙는다. 언론과 공공기관은 기사와 보도자료에서 불필요한 외국어, 한자어 사용을 줄이고 순화한 단어들을 알리려고 더 노력해야 한다.

예능방송을 보며 불편해하는 자세가 누군가에겐 불편하겠지만, 방송은 국민의 언어문화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자화상과도 같기에 잘 들여다보면 그동안 무시하고 넘어갔던 잘못된 언어 습관을 바로잡을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예능에서처럼 외국어를 말하지 않고 대화하는 게임을 해보자. 게임에서 웃고 끝나지 않고 우리의 언어문화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면, 잊고 지내던 소중한 우리말 하나를 일상 언어 가운데 다시 초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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