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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초등학생에게 한자 교육은 부적절

by 한글문화연대 2014. 10. 15.

초등학생에게 한자 교육은 부적절

 

교육부가 2018년부터 적용할 새 교육과정을 마련하면서 교과서에 한자 병기를 강화하고 심지어 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한자를 함께 적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배경이 뚜렷하지 않고, 설득력 있는 연구 보고도 없다. 현재 교육부의 방침은 몇몇 교육 관료들의 일방적인 탁상행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초등 교과서에 한자를 함께 적게 되면 많은 학부모는 아이들이 한자를 알아야 수업을 쫓아갈 수 있으려니 하며 한자 교육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을 틈타 한자 사교육이 불붙을 게 뻔하다. 쉴 틈 없이 학원을 도는 아이들 어깨에 한자 공부라는 짐을 하나 더 얹는 셈이다.

 

일부에선 그동안 초등학생들에게 한자를 가르치지 않아 의미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 한글로만 적은 교과서로 공부하고 중학교 때부터 한자를 공부했던 우리 중년 세대의 경험에 비추어보건대 이런 주장은 아무 근거가 없다.

낱말의 뜻은 문자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실제 세계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사회’나 ‘회사’는 모인다는 뜻의 두 한자를 순서만 다르게 조합한 말인데, 한자 정보만으로 두 낱말의 뜻에 다다를 수 없다.

 

거꾸로 한자 구성을 모른다 해서 우리가 낱말의 뜻을 익힐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어린아이들이 한자를 모르면서 ‘유치원’이나 ‘학교’와 같은 낱말의 뜻을 어떻게 익히겠는가? 문자를 배우기 전에 이미 실생활에서 대화와 체험,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치며 입말로 익히는 것이다. 한자어가 아닌 ‘어머니’, ‘나라’, ‘사랑’과 같은 말을 익히는 이치도 마찬가지다. 그런 까닭에 안중근 의사와 내과 의사를 혼동한다는 이들의 궤변이 현실에서는 전혀 혼란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사회’나 ‘회사’가 어떤 한자로 이루어져 있는지는 중학교 시절에 공부해도 전혀 늦지 않다. 만일 한자를 가르치지 않아 청소년들의 의미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객관적인 연구 보고가 있다면 먼저 중학교 한문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부터 점검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무턱대고 초등학교부터 한자를 가르치겠다는 발상은 우리 국어 교육을 한자 풀이 수준으로 떨어뜨리고 사교육을 부추길 위험이 너무 높다.

 

* 이 글은 2014년 10월 8일(수), 동아일보에 실린 이건범 대표의 글입니다.

http://news.donga.com/3/all/20141008/670169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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