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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알기 쉬운 우리 새말

[알기 쉬운 우리 새말] 갈등이 풀리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등돌림 문화

by 한글문화연대 2023. 7. 12.

새말 모임에서 다듬는 외국어 신조어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예전부터 있었던 개념으로 이미 우리말 이름이 있는데도 특별한 이유 없이 영어로 바꿔 부르기 시작한 말이 그 한 가지다. 이번 달 새말 모임에서 다듬은 외국어 중 ‘머니 무브’나 ‘뱅크 런’ 등이 그렇다. 딱히 새로운 현상도 아닌데 멀쩡한 우리말로 불리던 ‘자금 이동’, ‘인출 폭주’가 어느 순간 영어로 둔갑했다. 새말 모임은 원래 쓰이던 이 우리말을 새삼 ‘새말’로 되돌렸다.

또 다른 하나는 새롭게 등장한 기술이나 현상이라 우리말로 이를 일컬을 말이 정착하기 전에 영어 표현부터 쓰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부터 살펴볼 ‘캔슬 컬처(cancel culture)’가 그렇다.

캔슬 컬처는 “유명인이나 공적 지위에 있는 인사가 논쟁이 될 만한 행동이나 발언을 했을 때 사회 관계망 서비스(에스엔에스) 등에서 해당 인물에 대한 팔로우를 취소하고 거부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인종, 계급, 성별 등에서 소수자를 주류 세력이 차별하고 배제하는 현상은 이전부터 있었던 터. 그런데 인터넷상의 공동체와 사회 관계망이 발달하면서 ‘(트위터 등의) 팔로우’나 ‘(페이스북의) 친구 관계’를 ‘취소’한다는 뜻에서 ‘캔슬 컬처’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용어가 널리 퍼진 것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 간에 인터넷상의 차단, 배척 현상이 두드러지면서다. 국내 언론에 처음 소개된 것도 같은 시기인 2019년 10월 <서울신문> 기사를 통해서다. 그 외에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캔슬 컬처에 대해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자신만이 정치적으로 옳다고 여기며 타인을 비난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호소했다.”(<한겨레21> 2020년 9월)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가 한국에 대해 ‘캔슬 컬처’가 심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캔슬 컬처는 유명인이 잘못을 저지르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언팔로하는 등 보이콧하는 현상을 뜻한다.”(<머니투데이> 2023년 2월 1일) 등의 용례가 있다.

이 용어는 인터넷 사회 관계망의 ‘취소’로만 쓰이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상품의 불매운동,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유명인사의 창작물 고발, 연주자의 공연 출연 배제 등 온라인 외의 공간과 맥락에서도 두루 쓰이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옹호한 음악인들의 무대 공연을 철회하거나 섭외를 중단한 문화계 움직임도 ‘캔슬 컬처’라 불렸다.

‘캔슬 컬처’를 우리말로 옮긴 예를 찾아보았다. 영어 뜻 그대로 옮겨 ‘취소 문화’라고 옮긴 사례(<서울신문> 등)가 간혹 있고 위키백과 역시 ‘취소 문화’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이런 ‘직역’은 많이 눈에 띄지 않는다. 온라인 사회관계망 외에서 두루 쓰이기엔 다소 부족함이 있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대신 <한국일보>나 <한겨레>는 ‘손절 문화’, ‘철회 문화’라고 옮기기도 했다. <국민일보> 역시 “캔슬은 ‘취소’보다는 지지 철회나 손절, 배척, 사회적 매장, 응징, 온라인 몰매로 해석하는 게 적절하다”고 제안한 바 있다.

‘단어+단어’의 간단한 형태로 옮기기 애매하다 보니 ‘온라인 왕따 현상’ ‘온라인상 집단 비방 문화’라고 수식하거나, 괄호 안에 문장으로 풀어서 설명을 덧붙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작은따옴표로 묶어 '캔슬 문화'라고 적은 뒤, 아예 우리말 뜻풀이를 생략해 버리는 경우도 늘고 있는 형편이다.

이렇게 적절한 대체 우리말이 정착되지 않고, 뜻풀이도 없이 영어 표현만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로 볼 때 빨리 새말을 다듬어 보급하지 않으면 영문 ‘캔슬 컬처’가 그대로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려버리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 그래서 새말 모임이 서둘러 우리말 순화작업을 할 필요가 더해진 것이다.

새말 모임에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 다듬어낸 우리말 표현은 ‘배척 문화’, ‘등돌리기/등돌림(현상/문화)’, ‘지지취소 문화’, ‘거절(거부) 문화’, ‘유행성 등돌리기’, ‘추방 문화’ 등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현상만을 지칭하지 않고, ‘배척’, ‘퇴출’보다는 부드럽고 너른 폭으로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을 찾고자 고민했다. 그래서 최종 결정된 후보는 ‘거부 문화’, ‘등돌림 문화’, ‘삭제 문화’였고, 이 중 여론조사 결과 ‘등돌림 문화’의 선호도가 가장 높아 최종 새말로 결정되었다.

개인적으로도 외국어를 우리말로 다듬을 때는 한자어보다 아예 순우리말인 ‘등돌림’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겨진다. ‘ㅇ’과 ‘ㄹ’을 많이 사용해 어감도 부드럽고 입에 감긴다. 게다가, 새말 모임에서도 나온 의견처럼, 등을 돌린다는 것은 상대를 이해하고 갈등이 해소되었을 때 다시 앞으로 돌아서서 상대를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캔슬’이라는 영어는 물론이요 ‘취소’나 ‘삭제’보다 더 희망적인 표현이 아닐까 싶다.

※ 새말 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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