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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알기 쉬운 우리 새말

[알기 쉬운 우리 새말] 국산 영어 그린 오션 대신 친환경 시장

by 한글문화연대 2023. 7. 12.

특정 산업을 시장 점유 정도, 발전 가능성 등에 따라 색깔로 나타낸 영어 명칭들이 있다. 아직 경쟁자가 없는 유망시장을 가리키는 ‘블루 오션’, 경쟁이 심하고 포화상태에 이른 시장 ‘레드 오션’, 기존 레드 오션에 발상의 전환을 꾀해 새로운 시장 가치를 개척하는 ‘퍼플 오션’이 그것이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이미 이들 중 ‘블루 오션’을 ‘대안 시장’으로, ‘레드 오션’을 ‘포화 시장’으로 다듬어 선보인 바 있다.

아직 ‘퍼플 오션’은 우리 새말로 다듬어 내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또 하나의 ‘색깔’이 등장했다. ‘그린 오션(green ocean)’이다. ‘그린’이라는 단어의 쓰임새로 뜻을 짐작해보시라. 농산물 시장? 그럴 수도 있겠다. 실제로 2006년 한 신문에서 그런 의미로 사용한 적이 있다. 하지만 요즘 이 용어는 ‘친환경이 가진 가치를 경쟁 요소로 내세워 새로운 시장과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을 뜻한다.

영어에서 ‘친환경’은 ‘에코-프렌들리(eco-friendly)’ 혹은 말머리에 ‘에코’만을 붙여 표현하지만 ‘그린’ 역시 보편적으로 쓰인다. 친환경 단체로 유명한 ‘그린 피스’나 ‘친환경 에너지원’을 뜻하는 ‘그린 에너지’ 등이 익숙한 표현이다. 그렇다면 ‘그린 오션’도 영어권에서 쓰이는 말일까. 답은 ‘그렇지 않다’. 영어권에서 ‘그린 오션’은 ‘녹색’이라는 단어의 원뜻 그대로 ‘녹색 바다’라는 뜻이다. 친환경과 관련된 뜻은 없다. 환경친화적 산업, 혹은 친환경 시장을 의미하는 ‘그린 오션’은 ‘국산 신조어’인 셈이다.

언론에서 ‘그린 오션’을 처음 언급한 것은 2005년 7월 <경향신문> 기사이다. 당시 경제 전문가 인터뷰에서 “경제와 환경이 살아야 사회가 산다는 ‘그린 경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전문가의 발언에 기자가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한 ‘그린 오션’이 요구된다는 말이다”라고 설명을 덧붙인 것이 첫 사례다. 이후 한동안 쓰임새가 잦지 않았던 이 표현은 2000년대 말 무렵부터 시민 환경 의식이 높아지고 친환경 상품이나 사업이 각광을 받으며 자주 쓰이게 되었다. 언론 용례는 다음과 같다.

“음료 가운데 가장 먼저 비닐 라벨을 제거한 생수업계는 이에스지 경영을 전면에 내세우며 친환경을 기반으로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그린 오션’ 진출에 앞장서고 있다.” (<매일경제> 2021년 10월) “그린 오션이 세계 경제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세계 각국이 환경 규제를 강화하면서 반도체부터 자동차, 전자, 금융, 식품에 이르기까지 전 산업에 걸쳐 경영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이투데이> 2021년 6월)

이외에도 친환경과 관련해 ‘그린’이라는 표현이 비 온 뒤 대나무 순 돋듯 등장했는데, 이미 많은 ‘그린~’이 새말로 다듬어져 발표되었다. ‘그린 모빌리티’는 ‘친환경 이동 수단’, ‘그린 테일’은 ‘친환경 유통’, ‘그린웨이’는 녹색길, ‘그린 시티’는 ‘녹색도시’, ‘그린슈머’는 ‘녹색소비자’ 등 대부분 ‘친환경’ 혹은 ‘녹색’으로 다듬어졌다.

그런 맥락에서 ‘그린 오션’도 ‘친환경’ 혹은 ‘녹색’으로 바꾸어 넣고, ‘오션’을 ‘시장’ 혹은 ‘산업’으로 대체해 조합한 새말을 후보로 올렸고, 그 중 설문조사 결과 88.1%의 높은 선호도를 보인 ‘친환경 시장’이 새말로 결정되었다(‘녹색 산업’이 76%, ‘녹색 시장’은 67%).

한편 씁쓸한 사실은 영어권에서도 쓰지 않는 ‘국산 영어’, 불필요한 영어 신조어를 국민들에게 ‘적극 소개하고 홍보하는’ 데 정부 관련 기관들이 여전히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부 지정 국가환경교육센터 누리집은 ‘새 환경용어’라며 “최근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인식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개념, 그린 오션이 등장했다”고 홍보하는가 하면, 초중등 학생을 대상으로 ‘그린 환경일기’를 공모하기도 했다.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 누리집에서 역시 “그린워싱(Green washing)을 경계하고, 리얼그린(Real Green)을 실천해야 해요”라는 글과 함께 ‘리유저블컵’, ‘리필스테이션’ 같은 영어가 등장하고 있다.

환경만 사랑해서 쓰겠는가. 우리말도 사랑해야 하지 않겠는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검색을 계속하던 중 앞에서 말한 환경교육센터 누리집에서 ‘초록작당소’라는 단어와 마주쳤다. 정부가 환경 교육을 진행하고자 하는 시민 학생들에게 무료로 제공해주는 장비와 공간에 붙은 이름이었다. 이 얼마나 깜찍하고 발랄한가. 앞으로 ‘그린 어쩌고 센터’ ‘에코 어쩌고 플레이스’ 대신 이런 이름을 보다 자주 접할 수 있길 바라본다.  

※ 새말 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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