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정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가 추운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산시청 앞 광장에 섰다. 양손으로 받치고 선 흰색 패널에는 “에코델타 동 이름, 당장 취소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는 점심를 하러 오가는 시청 공무원들과 민원인들을 상대로 1시간 남짓 1인 시위를 벌였다.
이 대표는 ‘에코델타동이란 이름과 관련해 “공공기관이 외국어를 남용하면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쓰는 말에서도 점차 외국어가 넘쳐나게 될 것”이라며 “외국어 능력이 높지 않은 일반 시민들의 알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중차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되도록 우리말을 사용해야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지명을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의 1인 시위 직전에는 같은 장소에서 전국 75개 한글 단체와 5개 부산시민단체 등으로 꾸려진 ‘부산 강서구 에코델타동 이름 반대 국민운동본부’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국적 불명의 동이름 붙이기를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 단체는 지역 시민단체와 대학생, 교수 단체들을 상대로 동참을 촉구할 계획이다.
이들이 완강하게 반대하는 외국어 동이름은 부산 강서구가 추진하고 있다. 강서구는 지난해 12월 강동동·명지1동·대저2동에 걸쳐 있는 3만 가구 규모 신도시의 새 법정동 이름으로 ‘에코델타동’을 선정했다. 환경·생태를 뜻하는 에코(eco)와 낙동강 삼각주를 뜻하는 델타(delta)를 합성한 이름이다. 강서구는 이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지난해 10월 에코델타시티 아파트 입주 예정자 등 81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선호도 조사 등을 진행했다. 강서구가 에코델타동을 새 법정동 이름으로 확정하면, 전국 3648개 법정동 가운데 외국어를 법정동명으로 사용하는 첫 사례가 된다. 법정동은 신분증과 재산권 관련 문서 등에 쓰이는 공식적인 동의 명칭으로 행정기관이 편의로 설정한 행정동과 구분된다.
강서구의회는 “공공기관 명칭 등을 정할 때 한글을 사용하도록 규정한 구의 국어진흥조례에 반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 반응은 엇갈린다. 명지1동 토박이 조아무개(50)씨는 “지명은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마을의 역사가 쌓여 만들어진 것”이라며 “영어 단어를 조합한 지명에 분명히 반대하는 주민이 절대다수”라고 말했다. 에코델타시티에 건설되는 공동주택 입주예정자 김아무개씨(46)는 “영어 단어이지만, 지역 특성을 잘 드러내는 것이며 전국적인 인지도도 있다. (다른 법정동도) 주로 한자를 사용하지 순우리말을 쓰는 것이 아니지 않으냐”고 했다.
강서구는 지난달 27일 부산시에 법정동 신설 타당성 검토 신청을 위한 실태조사서와 구의회의 반대 의견서를 함께 제출했다. 부산시가 이를 검토해 행정안전부에 제출하고 행안부가 타당성 등을 살핀 뒤 승인하면, 강서구의 조례 제정을 거쳐 법정동명 선정 절차는 모두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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