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글문화연대 이건범입니다.
578돌 한글날을 맞이 '외래어 개념의 혼란과 극복 방안'을 주제로 한 한글문화토론회를 엽니다.
이번 토론회는 ‘외래어’와 ‘외국어’라는 두 개의 용어를 마구 섞어 쓰거나 모호하게 사용하는 세태에 문제의식에 관해 논의하려고 합니다.
<토론회 개요>
2024 한글문화토론회
‘외래어’ 개념의 혼란과 극복 방안'
때: 2024년 9월 20일 금, 오후 2~5시
곳: 서울시청 지하2층 시민청 워크숍 룸
주최: 한글문화연대
*토론회 신청주소: https://forms.gle/pDFs6MXeynryGu9h8
<토론회 배경> (이건범 작성)
‘외래어’와 ‘외국어’라는 두 개의 용어를 마구 섞어 쓰거나 모호하게 사용하는 세태에 문제의식을 느낀 지는 오래되었다. 이미 2017년에 낸 <언어는 인권이다>, 2019년에 낸 <알고 보니 한글은> 등의 책에서 나는 이 문제를 지적하였다. 매우 실천적인 문제임에도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손을 놓고 있다가,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는 다급함을 느끼고 이를 공론장에서 다루기로 마음먹었다. 그 사정은 이렇다.
2023년 12월 말에 부산시 강서구청은 신도시의 법정동 이름을 ‘에코델타동’으로 결정하고는 부산시청과 행안부에 승인을 받기로 했다. 강서구의회에서는 이 방침에 반대했지만 구청은 이를 강행하여 부산시청에 서류를 제출하였다. 국어단체들은 2024년 3월 8일에 부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담당자를 만나 반대 의견을 전달하였다. 그 뒤 행정안전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대통령실에도 민원을 넣어 반대 의견을 밝혔다.
나는 2023년 12월 초에 국민신문고를 통해 부산시에 반대 의견을 밝히고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명의의 밝힘글을 전달하였다. 이 밝힘글에서 나는 일관되게 ‘외국어로 법정동 이름을 짓지 말라’ 등으로 표현하여 ‘에코델타’라는 말이 외국어로서 국민에게 어려움을 주고 외국어 남용을 부채질할 위험이 크다고 비판하였다. 그런데 1월에 열린 강서구의회 심의나 2월에 나온 언론 기사에서는 ‘외국어 법정동 이름’이 아니라 대체로 ‘외래어 법정동 이름’이라고 표현하였다. 3월 8일 기자회견 전까지 이 사안을 다룬 45건의 기사 가운데 국어단체의 견해를 소개한 7건(15%)만이 ‘외국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52%의 기사에서는 ‘외래어’라고만 썼으며, 나머지 32%는 두 용어를 섞어 썼다.
‘외래어’는 고유어, 한자어와 함께 국어 어휘의 한 갈래라고 학교에서 가르쳐왔다. 버스, 피아노, 컴퓨터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렇다면 국어 어휘의 한 갈래인 외래어로 법정동 이름을 짓는 것이 왜 문제가 된단 말인가? 국어 어휘가 아닌, 외국어로 이름을 짓기 때문에 문제인데, 이를 ‘외국어’가 아니라 ‘외래어’라고 표현하면 문제가 무엇인지 국민들도 헷갈리지 않겠는가? 외국에서 들어온 말이지만 우리말처럼 널리 쓰이는 외래어로 법정동 이름을 짓는다고 해서 비판한다면 그런 비판을 하는 사람들은 무슨 국수주의자쯤 된다고 여기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런 개념 혼란과 용어 혼동은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
부산시청 담당자와 면담하면서도 ‘외래어’와 ‘외국어’라는 개념을 혼동하여 사용하는 일이 벌어져 이 점을 바로잡았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취재했던 기자들에게도 정확한 용어 사용을 부탁하였다. 그 결과 3월 8일 이후로 많은 언론에서 ‘외국어 법정동 이름’으로 표현하였고, 5월 31일 행안부의 ‘에코델타동’ 불허 결정에서도 그렇게 표현되었다. 3월 8일부터 7월 말까지 ‘에코델타동’ 사안을 다룬 기사 58건 가운데 38%에 해당하는 22건의 기사에서는 오로지 ‘외국어’라는 용어만 사용하였으며, ‘외래어’라는 용어만 사용한 기사는 17%로 대폭 줄었고, 두 용어를 섞어 쓴 기사는 44%였다. 바뀌기는 하지만, 하루아침에 혼동이 바로잡히지는 않을 것이다.
국어 관련 언급에서 많은 사람이 헷갈려 하는 개념 두 가지가 ‘한글’과 ‘외래어’이다. ‘한글’은 ‘한국어’와 ‘토박이말’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고, ‘외래어’는 ‘외국어’와 같은 뜻으로, 즉 외국에서 들어온 말 모두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국어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이나 국어운동에 참여하는 시민들, 관련 기자와 문필가들 사이에서도 흔하게 벌어지는 혼동이다.
부산시 강서구청의 ‘에코델타동’이라는 법정동 명칭을 ‘외래어 법정동 명칭’이라고 부르느냐 ‘외국어 법정동 명칭’이라고 부르느냐는 문제가 아주 하찮은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외래어’에 대해 학술적인 정의나 언중의 인식이 어떠하냐에 따라 강서구청의 기도를 비판하는 것이 마땅한지 그렇지 않은지 갈리기 때문이다. 국어 어휘의 한 갈래인 외래어로 법정동 이름을 지었다면, 고를 게 꼭 그것밖에 없었냐고 아쉬워할 수는 있지만 잘못이라고 비판하기에는 명분이 약하다. 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법정동 이름을 지으려 하기에 잘못이라고 비판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오해와 갈등은 피하기 어렵다.
또 한 가지, 강서구청에서 ‘에코델타’는 생태를 염려하는 ‘에코’와 삼각주를 뜻하는 ‘델타’의 합성어라고 설명하고 있는바, 이 합성어야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가 있지 않겠지만 ‘에코’와 ‘델타’가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말이라면 강서구청에서 내놓을 명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2007년에 ‘동사무소’를 ‘주민센터’로 바꾸는 일에 한글문화연대가 반대할 때 행정자치부에서는 ‘센터’라는 말이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가 있으므로 ‘외래어’이며 외래어는 우리말의 한 갈래이니 문제 될 게 없다고 항변했었다. ‘델타’는 예전부터 지리 과목에서 ‘삼각주’라는 번역어로 가르쳤고, ‘에코’는 비교적 최근에 퍼진 말이라 둘 다 국어사전에 올라가 있지는 않지 싶었다.
웬걸, 찾아보니 ‘델타’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어 있었다. 다행히도 ‘에코’는 올려져 있지 않았다. 만일, ‘에코’마저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려 있었으면 국어단체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우리말의 보존과 발전을 위해 애써서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이 우리말 지키기에 발목을 잡는 역설이 펼쳐질 뻔했던 것이다. 물론, 표준국어대사전에 오른 말일지라도 여러 가지 선택지 중에서 굳이 그런 말을 골라 공공언어에 쓸 필요가 있느냐는 각도로 예전의 행자부나 지금의 강서구청을 비판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외래어 판별의 기준을 표준국어대사전으로 잡는 한 이런 입씨름은 불가피하다.
개인의 언어생활이야 남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간섭할 이유가 없다. ‘표현의 자유’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공공언어 분야에서는 이런 문제가 외국어 남용으로 이어져 자칫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한다. 이런 상황 또한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위험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외래어’라는 용어를 엄격하게 사용해야 하고, 그 목록도 체계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그런데 ‘외래어’ 개념의 혼란스러운 사용은 부산시 공무원이나 기자 등 일반 국민에게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다. 우리 국어학계에서도 이 개념은 혼란스럽게 사용되고 있고, 그 영향으로 일반 국민의 용어 사용에서도 혼동이 일어나는 것이리라. 이런 이유로 부산시청 담당자와 면담하기 전에 나는 한글학회장, 외솔회장 두 분께 문제의식을 밝혔고, 함께 토론 자리를 만들어보자고 뜻을 모았었다. 그리고 2024년 4월 말에 문체부 국어정책과와 국어문화원연합회, 국립국어원 책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이런 문제의식을 제기했었다. 어떤 개념 사용이 옳으냐 이전에 우리가 ‘외래어’라는 용어를 혼란스럽게 사용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매우 절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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