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 ‘아시안 팝 부문’ 신설, 케이팝에서 영어 가사 지워낼까?
한글문화연대 기자단 13기 정우리별
woori31kju@gmail.com
그래미 상 후보에 그치던 케이팝,
‘아시안 팝’ 신설로 한국어 가사에 집중할까

지난 6월, 미국 음반 최고 권위 시상식 그래미 상을 주관하는 레코딩 아카데미는 케이팝을 비롯한 아시아 대중음악을 조명하는 새로운 시상 부문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내년 시상식에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베스트 라틴 송’, ‘베스트 트래디셔널 팝 보컬 퍼포먼스’, ‘베스트 R&B 컬래버레이션 또는 듀오·그룹 퍼포먼스’, ‘베스트 트래디셔널 포크 앨범’ 등 5개의 부문을 신설하기로 한 것이다.
단연 국내 케이팝 팬들의 주목을 받는 부문은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이다. 레코딩 아카데미가 공식 규정집을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은 케이팝, 제이팝(J-POP), 씨팝(C-POP)을 포함하되 이에 국한되지 않고 아시아 시장에서 유래했거나 널리 알려진 아시아 팝 음악 퍼포먼스의 예술적 우수성을 인정하는 부문이다. 해당 부문은 하나 이상의 아시아 언어를 의미 있게 사용하는 경우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예를 들면, 케이팝이라 하더라도 영어가 아닌 한국어를 활용해야만 후보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이 부문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줄곧 케이팝이 그래미 시상식의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은 ‘다이너마이트(Dynamite)’, ‘버터(Butter)’ 등으로 후보에 올랐지만 연달아 수상에는 실패했고, 블랙핑크 로제 역시 ‘아파트(APT.)’의 세계적인 흥행에도 불구하고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다. 역대 그래미 시상식에서 수상을 받은 케이팝 장르는 단 하나였다. 올해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삽입곡(OST) ‘골든(Golden)’이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 부문에서 케이팝 장르 최초 그래미 수상작이란 명예를 거머쥔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일각에서는 반쪽짜리 수상에 불과하단 의견도 나오고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콘텐츠가 한국 자본으로 만든 콘텐츠가 아니며, 그래미 상 또한 본상이 아닌 특정 부문에 대한 상이기에 아쉬움이 남는다는 지적이다.
케이팝(K-POP)이란 무엇인가

지금 케이팝은 ‘K’를 의미하는 KOREA(한국)의 음악이 맞을까? 이와 관련해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이 일으킬 반향을 눈여겨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후보 선정 조건이 아시아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기에, 이를 바탕으로 영어 가사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는 케이팝 시장에서 한국어 가사의 재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올해 3월 방탄소년단이 3년 9개월 만에 아리랑(ARIRANG)이라는 한국의 민족적 상징을 담은 앨범 제목으로 컴백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누리소통망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한국적 정서인 ‘한’을 내세우는 제목을 선정했으면서 정작 가사에는 한국어가 아닌 영어가 대부분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아리랑’을 보고 한국적인 느낌을 얼마나 잘 살렸을지 기대하던 일부 대중에게는 한글로 된 곡 제목조차 없는 앨범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와 관련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BTS: 더 리턴’에서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한국어 가사를 원했지만,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선 영어 가사를 넣어야 한다는 회사와의 갈등 상황이 가감 없이 드러나기도 했다. 정말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영어 가사를 써야만 할까?
살폿 뮤직 그룹 대표 앤드뉴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저는 무조건 한국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며 케이팝의 색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앤드뉴는 “한국어를 쓰지 않는 현지화 그룹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케이팝 아티스트는 영어를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영어로만 노래를 만드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청취자도 그것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루미네이트의 '2023년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음악 청취자의 약 40%가 비영어권 음악을 소비하고 있으며, 약 69%가 미국 외 지역 아티스트의 음악을 즐기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반드시 영어 가사가 해외 진출의 정답은 아니란 것을 보여준다.
본상이 아닌 하위 부문으로 그칠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일각에서는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이 주요 부문 후보군에서 케이팝을 자연스레 배제하기 위해 만든 ‘위로상’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포브스는 "만약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등이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 상을 수상했음에도 올해의 레코드나 올해의 앨범 후보에 오르지 못한다면 이는 레코딩 아카데미가 아시안 팝의 상업적 지배력은 인정하면서도 주요 경쟁 부문에 통합시키지 않으려는 수단으로 비칠 수 있다"라고도 전했다.
계속해서 후보에 그쳤던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 등 대부분의 케이팝 노래가 현재 영어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에 '하나 이상의 아시아 언어를 의미 있게 사용한 경우'라는 조건은 이들에게 불리한 조건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해외 시장 진출이라는 명목하에 사라져 가던 케이팝의 고유성, 한국어 가사의 정수가 이를 계기로 되살아날 수도 있다. 케이팝에 득이 될지 독이 될지 귀추가 주목되는 지점이다.
한편, 내년 제69회 그래미 상은 2월 7일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열리며, 후보 자격은 2025년 8월 31일부터 2026년 8월 28일 사이에 발매된 음반을 대상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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