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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교사들도 반대하는 초등교과서 한자병기-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by 한글문화연대 2015. 3. 4.

교사들도 반대하는 초등교과서 한자병기/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교육부가 2018년부터 초등학교 모든 교과서에 한자를 함께 적겠다는 방침을 검토 중이나, 초등학교 현장의 반대는 거세다. 한국초등국어교육학회가 초등교사 1000명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초등교사들의 65.9%가 교과서 한자병기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이 결과를 두고 젊은 교사와 나이 든 교사 사이의 의식 차이를 점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젊은 일반교사는 64.0%, 교장선생님들은 64.1%가 교과서 한자병기에 반대하여 세대간 차이가 전혀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초등학생들을 오랫동안 가르치면서 현장 교육을 주도하고 있는 부장교사들은 69.5%나 한자병기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에 책임을 가장 많이 느끼는 분들의 반응이다.


교사들의 의견을 요약하면 교육 내적으로는 실익이 없고 오히려 부작용만 커진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학습부담이나 사교육, 선행학습이 극도로 높아져 결국 아이들에게는 좋지 않다는 결론이다. 우선, 한자를 병기하면 아이들이 교과서를 읽는 속도가 느려질 것이라는 응답이 84%를 넘는다. 가장 큰 문제다. 교과서에 대한 아이들의 흥미가 두루 떨어지겠지만, 특히 한자 사교육이나 선행학습을 통해 한자를 이미 익힌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 교과서 읽기 흥미도의 격차를 부를 것이다. 한자교육을 강조하는 쪽에서는 인성교육에 한자가 좋다고 주장하지만, 초등교사 58%는 한자교육이 인성과는 관계없다고 답했다. 교육 속 문제도 문제지만 우리 아이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악폐는 장기적인 골칫거리로 떠오른다. 한자병기가 실시되면 아이들의 학습 부담이 늘어날 거라는 응답이 94%, 한자 사교육이 늘 거라는 응답이 91%, 한자 급수시험 응시가 높아지리라는 응답은 96%, 유치원부터 선행학습이 일어날 거라는 응답은 94%였다. 어떤 이는 어린 시절에 영어를 배우면 좋다고 하여 영어를 많이 가르치자고 하고, 어떤 이는 한자를, 어떤 이는 또 무엇무엇을 가르치자고 한다. 그 아이들이 도대체 이 모든 요구를 다 받아들일 수 있는가? 아니, 그렇게 강요해야 하는가?


우리나라 아이들이 학습에 쏟는 시간은 상상을 초월한다. 통계청이 5년마다 벌이는 국민생활시간 조사에 따르면 2009년 초등학생들의 주당 평균 학습 시간은 44시간, 중학생은 52시간, 고등학생은 64시간이다. 이 수치는 그 10년 전인 1999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성인들은 어떤가? 대학생의 주당 평균 학습시간은 중학생의 절반 수준인 26시간이며, 고용노동부가 조사한 근로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주당 40시간 남짓이다. 그저 아이들이 봉이다.


15세 학생들을 상대로 실시하는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우리나라 아이들이 세계 1, 2위를 다투고, 국제성인역량평가의 독해력 부문에서도 우리나라 16~24세 젊은이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3위 수준이다. 그런데 취업을 하고 나이가 들면 그 능력은 뚝뚝 떨어져 노년 세대에 이르면 꼴찌에서 3위 수준으로 처진다.


어린 시절의 대입 성적으로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우리나라 교육, 사회 구조가 아이들에게 이런 해괴한 부담을 계속 짐 지우는 것이다. 성인의 독서량을 비교해보면 미국과 일본은 월 6권 넘게, 중국은 문맹이 많음에도 월 3권 가까이 책을 읽는데, 우리나라 성인들은 겨우 월 0.8권의 책을 읽는단다. 어른들은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경제 지식이 중요하다고 초등학생에게 회계 과목을 가르칠 수는 없다. 용돈 출납부만 제대로 적어도 될 일이다. 아니, 그것도 하찮은 일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생활 속에서 경제관념을 키워주는 중요한 공부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교육이 뭔가 부족하다고 자꾸 욕심을 내면 배탈이 난다. 초등학생 시절에 아이들이 낱말의 뜻을 익혀가는 방식과 아이들의 생활, 그리고 그들에게 지워질 짐의 무게 등을 적절하게 고려해야 한다.

 

# 이 글은 2015년 3월 3일, 경향신문에 실린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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