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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훈맹정음을 아시나요? - 지승현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16. 12. 29.

훈맹정음을 아시나요?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3기 지승현 기자

jsh1679@hanmail.net

 
이 세상에는 많은 문자가 존재한다. 그 중에서 가장 특별한 문자를 꼽는다면 ‘점자’일지도 모른다. 점자란 시각 장애인들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로 문자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숫자부터 많은 문자에 점자가 존재하는 만큼, 한글 점자도 존재한다. 지금부터 다룰 내용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훈맹정음’이다.

[사진=지식채널e]

지난 11월 4일은 한글 점자에 있어서 역사적인 날이기도 했다. 1926년 11월 4일 반포된 후 정확히 90주년이 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1월 4일과 5일, 한국방송(KBS)을 비롯한 지상파3사 뉴스에서는 단 한차례도 다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점자가 보편화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안타깝고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래서 이번 기사를 통해서라도 한글 점자를 소개하고 싶어졌다.

 

한글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길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세종대왕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한글 점자를 만든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끄럽지만 기사를 쓰기 기자도 기사를 위해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한글 점자를 만드신 분은 송암(松庵) 박두성 선생입니다.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

[사진=지식채널e]

송암 선생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만큼 간략하게 소개하겠다. 1888년 4월 26일(양력)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상용리에서 9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1895년부터 신교육을 받은 송암 선생은 한성사범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한 후 어의동 보통학교 훈도(일제강점기, 초등학교 교원을 이르던 말)로 취임하면서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일제가 유화정책으로 설립한 조선총독부 제생원 내 맹아부에 교사로 발령이 나게 됩니다. 당시 청각교육, 주입식 교육뿐이던 맹아교육에 ‘이건 아니다’라고 느낀 선생은 점자교과서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1913년 한국 최초의 점자교과서를 냈다.


1919년 3.1 운동의 여파로 일제가 강제로 조선어 과목을 없애려 하자 송암은, “눈이 없다고 사람을 통째로 버릴 수 있겠어요? 앞 못 보는 사람에게 모국어를 안 가르치면 이중의 불구가 되어 생활을 못하는 것이외다. 눈 밝은 사람들은 자기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읽고 쓸 수 있지만 실명한 이들에게 조선말까지 빼앗는다면 눈 먼데다 벙어리까지 되란 말인가요?” 라며 강하게 항의하자 일본인들의 목이 자라목처럼 쏙 들어갔다고 한다.


부임 7년이 지난 1920년, 한글 점자가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송암은 한글 점자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합니다. 제자들과 함께 ‘조선어 점자 연구위원회’를 조직 후 비밀리에 수많은 연구를 한 끝에 마침내 1926년 11월 4일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480년 만에 한글 점자가 반포되고, 전국의 맹인들에게 취지문을 발송했다.

[사진=지식채널e]

송암은 한글 점자만 가르친 것이 아니었다. 최소한 주머니에 있는 것이라도 간직해야 한다며 주판도 가르쳤다. 그는 76세가 되던 1963년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점자 책은 쌓지 말고 꽂아둬라”(손 끝으로 읽는 점자의 특성상 책 무게에 짓눌려 못 읽게 될 수 있다)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송암 박두성 선생은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이자 한국 맹인 교육의 선구자였다. 지금도 그의 제자들이 시각장애인의 교육 발전을 위해 애쓰고 있다.


한글 점자의 원리

[사진=송암 박두성 기념관]

점자는 한글을 가로로 풀어 쓰는 거라고 볼 수 있다(예 : 한글 → ㅎ, ㅏ, ㄴ, ㄱ, ㅡ, ㄹ). 점자는 6개의 점을 하나의 단위로 6개 가운데 2개 또는 3개를 도드라지게 하여 자음 또는 모음을 표시한다. 이 도드라지는 점을 기점이라 하는데, 점자의 기점이 적으면 구별이 쉬워진다는 점에 착안하여 초성(자음)과 종성(받침)에는 기점을 주로 2개로 하고(2점) 중성(모음)은 3개로 했다. 여기서 한 점이라도 더 적게 표시하기 위해 점자체계에 큰 지장이 없는 초성의 'ㆁ'자는 빼기로 했다.


사실 초성은 'ㆁ'자로 풀어 쓸 경우 빼도 무방하다. 다음으로 문장 중에서 사용 빈도가 가장 많은 토씨(가, 을, 은, 의, 에 등)와 글자 구성이 복잡한 '예', '와', '워' 등의 복모음 글자를 모아 약자를 만들었다.

 


그런데 초성 'ㆁ'을 뺄 경우, '아이'를 점자로 표시할 때 뒤글자 '이'에서 'ㆁ'을 빼면 'ㅐ'로 오독할 우려가 있어 '애' 또한 독립된 약자로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문음 부호, 숫자를 만들었다. 이렇게 3년 4개월여의 창안 노력 끝에, 마침내 1926년 8월 한글점자를 완성하게 되었다.


송암은 우리가 모른다는 것이 무례할 정도로 위대한 인물이다. 하지만 흔한 위인전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인천시에서 기념관도 짓고, 매년 행사를 열면서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제는 인천시가 아닌 국가가 나서서 선생을 기념해야 한다고 본다. 그는 한글만큼이나 소통을 위하여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위대한 학자였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을 세상 밖으로 꺼내준 한 줄기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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