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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우리 나라 좋은 나라(김영명)

사대주의에 대하여(1)

by 한글문화연대 2017. 2. 16.

[우리 나라 좋은 나라-67] 김영명 공동대표


사대주의에 대하여(1)

 

많은 사람들이 한국 민족주의가 너무 강하다고 말을 하지만, 하지만 사실 우리에게 가장 강한 사조는 민족주의가 아니라 그 반대인 사대주의일지 모른다. 이제부터 몇 회에 걸쳐 한국의 사대주의가 어떻게 나타나고 어떤 문제를 보이는지를 얘기하도록 한다. 우선 사대주의가 무엇인지부터 생각해 보자. 

 

사대주의라는 말은 다른 나라 말에서는 보기 어려운 한국의 특유한 언어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사대주의는 한자말이라 중국에 존재할 뿐 아니라 그 낱말의 기원도 중국일 것이다. 그것은 고대 이래 근대 이전까지의 중국과 변방의 관계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중국어를 모르는 나로서는 현대 중국에서 그 말이 얼마나 통용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대주의는 공식적으로는 근대 국가체제에 해당하는 용어가 아니라서 현대 중국에서 흔히 사용되지는 않으리라 짐작한다. 영어권은 어떨까? 한영사전을 보면 사대주의에 해당하는 영어 낱말로 flunkyism이 나와 있는데, 이 말은 흔히 통용되는 말이 아니다. 영어권 사람들이 이 말을 사용할 상황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억지로 번역한 듯한 인상이 짙다. 사대주의 현상은 한국 뿐 아니라 다른 약소국들에도 있을 수 있지만 이렇게 확립된 용어까지 있는 경우를 나는 한국밖에 알지 못한다. 한국의 역사와 비슷한 점이 많은 베트남의 경우에도 사대주의에 해당하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는지 궁금하다. 


한국에서는 사대주의가 일상적인 용어로 흔히 사용된다. 그만큼 우리 역사와 생활 속에 사대주의가 뿌리 깊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중심이었던 강대국 옆에 붙은 조그만 나라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한국의 사대주의는 과거에는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정책으로 나타나기도 했지만, 개별 국가들이 적어도 명분상으로는 평등한 주권을 누린다고 하는 현대에 와서는 비공식적이고 덜 명시적인 사상이나 행동 양식으로 나타난다. 어떤 형태이든 사대주의는 민족주의와 반대되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민족주의와 반대되는 사조나 이념은 민족 또는 나라 안에서는 지역주의, 개인주의, 자유주의 같은 것들이고, 나라 밖으로는 국제주의나 세계주의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사대주의에 주목하는 까닭은 그것이 한국에서 민족주의에 대비되는 특유한 현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국제주의나 세계주의가 대외 의존주의, 곧 사대주의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말이다.  

 

사대라는 용어는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에 이미 사용되었지만, 그것은 여기서 다루는 사대주의의 용법과는 다르다. 사대라는 용어는 중국의 제자 백가 저술들에서 사용했고 사대주의 용어는 근대부터 사용했다고 한다. 과거의 사대주의가 명시적인 국가 정책이었다면, 그와는 달리 현대 한국의 사대주의는 명시적인 국가 정책도 아니고 체계적인 이념이나 사상도 아닌 이 일종의 ‘정신 상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대주의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연구가 없을 뿐 아니라 한국 지성계에서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과거의 사대 이념이나 정책에 대해서는 간간이 연구 결과가 나왔으나 아직 미흡하다. 조선 시대의 사대 정책 또는 사대주의에 대한 연구가 있으며, 개화기의 사대당에 대한 연구가 조금 나온 정도이다. 1880년대 중반 갑신정변을 계기로 일본인들이 독립당을 치켜세우기 위해 사대당, 사대주의 등의 용어들을 사용하였다. 이런 비교적 공식적인 과거의 사대나 사대주의에 대해서는 간간히 연구 결과가 나왔지만, 개화기 이후 현대 시기의 사대나 사대주의에 대해서는 학술적인 논의 자체가 없다. 

 

그러면 왜 현대 한국에 사대주의가 만연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연구가 없을까? 몇 가지 까닭을 짐작해 볼 수 있겠다. 첫째, 사대주의가 중요한 현상이라는 사실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인정하지 않기보다는 그런 문제 의식 자체가 없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그러면 왜 그런 문제의식이 없을까? 우선 사대주의가 만연하고 일상화되고 당연하여 문젯거리가 안 되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런 까닭이 상당하다고 나는 판단한다. 둘째, 이와 관련하여, 한국 학자나 지식인들이 의존하는 서양 지성계에서 사대주의가 전혀 논의 대상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한국 지식인들이 수입할 외국의 논의가 없으니 한국에서도 논의가 안 되는 것이다. 셋째, 사대주의를 문제로 인식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우리에게 별로 자랑스러운 역사나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연구의 흥미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나도 사실 마찬가지이다. 지금 필요에 따라 사대주의를 논하고 있지만 별로 흥이 나지는 않는다. 넷째, 현대의 사대주의는 위에서 말했듯이 정책이나 이념으로서 뚜렷한 실체가 없는 막연한 정신 상태에 해당하는 것이라 학술 연구의 대상으로 삼기 어려워서 그럴 수도 있다. 어떤 까닭이 가장 중요한지는 가늠하기 어렵고 어쨌든 이런저런 까닭들 때문에 현대 사대주의에 관한 연구가 전혀 없는 실정이지만, 앞으로는 조금씩이라도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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