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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우리 나라 좋은 나라(김영명)

근혜 순실 올랭피아 대소동

by 한글문화연대 2017. 1. 25.

[우리 나라 좋은 나라-64] 김영명 공동대표

 

▲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출처: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한 그림 전시회 때문에 소동이 벌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나체로 누워있고 최순실이 옆에 서 있는 그림이다. 일국의 대통령을 그렇게 능멸할 수 있냐고 보수 인사들이 발끈하고 나섰고, 새누리당 여성 국회의원들은 여성 모독이라고 공개 비판하는가 하면,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씨조차 크게 잘못된 일이라고 사과 아닌 사과를 한다. 
 

나도 이 그림을 보고 혐오감이 약간 들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 혐오감이 어디서 왔을까 하고 다시 보니 그것은 바로 박근혜와 최순실의 얼굴 때문에 온 것이었다. 그들이 아니라 아름다운 연예인들의 얼굴이었어도 혐오감이 들었을까? 

 

여기서 잠깐. 요샌 하도 여혐, 여성의 상품화 어쩌고 하니 원래 ‘어여쁜 여인’이라고 쓰려다가 ‘아름다운 연예인’으로 자체 검열하였다. 내가 지레 겁먹은 건가 아니면 우리 사회의 검열이 그만큼 다양한 건가? 근데 바꾸니 역시 맛이 덜 난다. 어여쁜 여인은 ‘잘 생긴 남자’와 같은 것인데... 그것도 남성의 상품화일 수 있지. 그런데 요새 상품화 아닌 게 어디 있나? 메시가 수천 억 원씩 버는 건 왜 욕 안 하나? 몸 상품화의 극대화인데. 난 그게 더 문제인 것 같은데.... 상상 초월의 소득 격차... 여기서 잠깐 끝.


그 그림은 마네의 올랭피아와 내가 모르는 어떤 화가의 1502년 그림(신문 기사에서 봤는데 연도만 생각난다.)을 합성하여 모사한 그림이라고 한다. 올랭피아는 그 이름을 가진 고급 창녀의 나체 그림으로 19세기 후반 당시 프랑스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요사이는 대표적인 고전 명작으로 꼽힌다. 요새 그 그림을 보고 여성 모독이니 인격 살인이니 운운했으면 아마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것이다.


전시회의 그 그림은 훌륭한 그림이 아니고 불쾌감을 줄 수 있지만 정치 풍자로서 얼마든지 전시할 수 있는 그림이다. 이를 두고 인격 살인이니 여성 모독이니 하는 것은 과도한 정치적 반응일 뿐이다. 문재인이 ‘크게 잘못된 일’이라고 한 것은 표를 의식한 발언일 테지만, 그것을 두고 국회 전시를 주선한 표창원 의원을 징계하겠다고 하는 것은 한국의 정치와 문화 수준을 드러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지금 한국의 민도가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민도 정도인가?

 

그런데 이쯤에서 내 특기인 양비론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내 출세의 길을 원천적으로 가로막고 내 마누라로 하여금 ‘당신은 그래서 안 돼!’라는 누구나 할 수 있을 말을 하게 만드는 그 양비론 말이다. 1980년대 후반에 통일민주당인가의, 정확한 날짜와 정확한 당은 중요하지 않고 이름은 용케 기억나는 유성환이라는 국회의원이 통일이 다른 가치보다 우선한다는 비슷한 말을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하여 국가보안법인가 위배 된다고 구속되고 난리법석을 떤 적이 있다. 그 말 자체는 지당한 말이었지만 당시 독재 정부가 야당과 민주화 운동을 억압하는 좋은 빌미를 주고 말았다. 민주화에 타격을 주었다는 말이다.

 

몇 년 전에는 총선인가 대선인가가 벌어지고 있을 때 진보 인사들이(정확한 정보를 위하여 인터넷 검색하기를 저에게 기대하지 마십시오) 미국 관리를 강간해야 한다는 둥 돼먹지 않은 소리를 하여 야당 표가 우수수 떨어지게 만든 일도 있었다. 이렇게 꼭 뭔가 될 만하면 나타나서 찬물을 끼얹고 다 된 밥에 재를 떨어뜨리는 인간들이야 어디에나 있겠지만, 한국 정치판에도 이런 인간들은 가만히 숨어 있다가 어느새 이때다 하고 나타나고는 한다. 마치 엑스맨들처럼 말이다. 

 

표창원은 그 그림을 보지 못했다고 하고 그 말을 믿지 않을 까닭도 나로서는 없지만, 애당초 그런 정치적 성격의 전시회를 그것도 국회 회관 안에 주선한 것은 생각이 모자라는 일이었다.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겠지만, 정파적인 행사를 국회에서 하는 것 자체가 사고를 불러올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 일로 더불어민주당 표가 100만 표 이상은 날아갔겠다. 
 

보수 인사와 보수 언론들은 이때다 하고 벌떼처럼 달려들고 그런 정치 공세 자체야 지금의 한국 현실에서 피할 수 없는 일상사라 욕할 수만도 없지만, 이 소동은 대통령에 대해 나체뿐 아니라 온갖 풍자를 해대는 선진국에 여전히 못 미치는 한국의 민도를 드러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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