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랑방/우리 나라 좋은 나라(김영명)

박유하 교수와 친일 문제

by 한글문화연대 2017. 2. 2.

[우리 나라 좋은 나라-65] 김영명 공동대표

 

세종대학교의 박유하 교수가 명예훼손 형사 소송 1심 판결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2017. 1.25). 그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을 써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형사고소를 당하였는데, 재판부가 이를 무죄라고 본 것이다. 책의 내용이 학문과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던 듯하다. 고백하거니와 나는 그 책을 읽은 적도 없고 읽고 싶지도 않다. 유쾌하지 않을 것이 분명한 내 전공 분야도 아닌 책을 굳이 읽고 싶지 않다. 다만 간간이 보도를 통해 본 바에 따르면 그 책은 종군 위안부가 일본 제국의 일부로서 전쟁 수행에 가담했다고 보는 같다. 그런 시각이든 저런 시각이든 얼마든지 자유이다. 그것이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명예를 직접 훼손했는지 아닌지도 나로서는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진정한 문제는 이제부터 생겨난다. 박유하 교수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일본 선생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일본 문화의 충만한 세례 속에서 자신을 키워왔다. 그 전에도 그녀는 친일로 보일만한 주장들을 하여 논란을 일으킨 바 있고, 그 뒤 한국과 일본 양국 모두의 언론이 주목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자기 주장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감정적인’ 한국인에게 객관적인 논지를 제공하며 이에 대한 공정한 판단이 문제 해결에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런 주장은 문제를 더 꼬이게 할 뿐 아니라 책임을 부정하는 일본 정부와 우익 인사들을 크게 도와주고 있다.


무죄 판결이 나자 일본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 법원이 <제국의 위안부> 내용의 정당성을 인정하였다고 사실을 왜곡하고 나왔다. 주장의 정당성이 아니라 명예훼손 여부가 쟁점이었다는 사실을 깡그리 무시하고 말이다. 일본인들은 이런 왜곡에 아주 능하다. 내가 1994년에 <일본의 빈곤>이라는 책을 내면서 대부분의 분량을 일본 비판으로 채우고 일본을 대하는 한국의 태도도 개선해야 한다는 말을 일부 덧붙였는데, 일본어 번역판은 일본 비판을 대폭 줄이고 오히려 한국 비판을 늘리는 식으로 왜곡하였던 적이 있다. 그때 일본어를 모르기도 했지만 번역본을 미리 검토하지 않은 것이 불찰이었다.


내 책이 그랬을진대 <제국의 위안부>와 박유하 같은 사람이야 그들이 이용하기 오죽 좋으랴? 그들로서는 백만 원군을 만난 셈이다. 나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알 것 같다. 그녀는 아마 ‘감정적’인 한국인임이 창피하고 ‘객관적’인 증거로만 말해야 하는 학자로서의 긍지가 대단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상 모든 친일파들이 모두 조선인의 무지몽매를 한탄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광수는 민족을 개조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였고, 윤치호는 영어로 일기를 썼다. 
 

1993년에 <근대 조선 공업화의 연구>라는 책이 나와서 악명 높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한국에 퍼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안병직 전 서울대 교수가 일본 교수와  손잡고 또는 그 밑에서 토요타 재단의 돈을 받고 조선 공업화가 언제 시작되었는지를 ‘객관적으로’ 공동 연구한 것이다. 결론은 조선 공업화는 일제 시대에 일본인에 의해 본격화되었고 그것이 이후 한국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때 진보파였던 그는 이후 전향하여 뉴 라이트의 스승 격이 되었고, 제자인 서울대 경제학과 이영훈 교수가 뒤를 이어 활약하고 있다. 일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박정희 독재도 옹호 하는데, 그것은 원래 그렇게 되어 있다. 일제와 박정희는 둘 다 ‘강자’였기 때문이다. 박유하 교수도 한일관계의 강자인 일본의 ‘선진적’인 문화 세례를 잔뜩 받고 그것을 추종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윤치호와 이광수는 친일파라고 후세 사람들의 욕을 먹고 있는데, 안병직, 이영훈, 박유하 같은 사람들을 대놓고 친일파라고 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만큼 그들은 교묘하기 때문이다. 더 큰 이유는 만약 그랬다가는 명예훼손이라고 고소가 들어올까봐서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친일파에는 ‘대놓고 친일파’와 ‘뒤에서 친일파’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본다. 이완용이 전자라면 안병직 등은 후자의 경우가 아닐까? 이광수는? 글쎄 아마 전자였다가 후자로 변신? 아, 근데 요 2-30년 사이에 맹활약을 펼친 바 있는 대놓고 친일파 제곱이 하나 있다. 오선화라는 여자인데, 일본으로 건너가 술집 여급 생활을 하다 좋은 일본인 후원자를 만났는지 한국을 대놓고 그리고 말도 안 되게 씹어대는 책을 여러 권 쓴 사람이다. 일본인들에게 얼마나 예뻐 보일까? 내가 이미 20년 이상 전에 <일본의 빈곤>에서 곧 용도 폐기되지 않을까 염려 아닌 염려를 했는데,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제국의 위안부> 유의 주장은 아무리 저자가 학문적 객관성을 주장하고 또 설사 그것이 학문적 성과를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나오는 즉시 바로 정치화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들은 ‘무지하고 감정적이어서’ 바로 고소나 시위로 대응할 것이고, 일본인들은 한국인의 정서를 배반한다는 그 사실 하나로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왜곡할 것이기 때문이다. 박유하 교수는 그런 점을 모르는 것 같다. 아니면 일본에서 받는 혜택과 은총이 너무 커서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어쨌든 그녀는 한국보다는 일본을 선택한 셈이 되었다. 오선화처럼 말이다.      

'사랑방 > 우리 나라 좋은 나라(김영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대주의에 대하여(1)  (0) 2017.02.16
소녀상이 불편하다고?  (1) 2017.02.08
근혜 순실 올랭피아 대소동  (0) 2017.01.25
사대주의가 문제다.  (2) 2016.08.10
스포츠 콤플렉스  (0) 2016.06.1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