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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미디어에 비친 우리말 파괴 - 김채원, 이한슬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17. 5. 25.

미디어에 비친 우리말 파괴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4기 김채원 기자

chaewon11@naver.com

이한슬 기자
lhs2735@naver.com

 

     예능 (藝能) [예ː-]
     [명사]
     1. 재주와 기능을 아울러 이르는 말. 
     2. 연극, 영화, 음악, 미술 따위의 예술과 관련된 능력을 통틀어 이르는 말.


                                                                                    -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사전에 정의된 뜻과는 달리 현재 ‘예능’은 다른 뜻으로 사용된다. 예능이란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한 범주로 다른 방송 분야와 달리 웃음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오락성 방송이다. 오락의 목적으로, 웃으며 볼 수 있어 다른 방송들보다 폭넓은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여, 영향력이 매우 큰 방송이기도 하다. 이러한 예능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연예인들이 나와 자신들의 마음을 솔직하게 얘기하는 ‘토크쇼’와 몇몇 ‘MC’들이 ‘게임’을 진행하는 ‘버라이어티 쇼’이다. 한 문장으로 예능을 설명하는데도 외국어를 무려 4개나 쓴 것이 눈에 띈다. 그것도 우리말 대체어가 있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예능 프로그램 속 제작진들과 출연진들의 외국어 사용과 우리말 파괴 상황은 어떠할까? 문화방송(MBC)의 〈라디오스타〉(수 11시), 제이티비씨(JTBC)의 〈아는 형님〉(토 8시 50분), 문화방송 에브리1(MBC every1)의  〈주간 아이돌〉(수 6시), 한국방송(KBS)의 〈뮤직뱅크〉(금 5시) 방송의 최근 16편(2017.4.19.-5.13)을 지켜보며 제작진의 자막과 출연진의 대사를 문법, 비속어, 외국어 남용, 과도한 줄임말의 총 4가지 기준으로 분석해 보았다.

 

시청자를 고려한 재미, 우리말 파괴로 일궈낸 재미

▲ ‘쿠크’가 자막으로 사용된 모습-<주간 아이돌> 중에서.

주시청자의 연령이 젊은 〈아는 형님〉과 출연진 연령도 젊은 <주간아이돌>은 과도한 줄임말, 비속어, 문법 파괴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먼저 <주간아이돌>의 자막을 보면 주 시청연령층인 10대에 맞춰 신조어, 줄임말을 빈번하게 나타냄을 알 수 있다. 자막을 입히는 작업을 하는 제작진이 그렇게 사용한다고 볼 수 있다. 4월 19일 방영된 299화에서는 쿠크(정신상태가 과자처럼 약하다는 뜻)가 5회 사용되었다. 5월 3일 방영된 301화에서는 낄끼빠빠(낄 땐 끼고 빠질 땐 빠져라),여덕(여자 덕후), 남덕(남자 덕후)등이 1분에 세번 꼴로 등장했다.

 

<주간 아이돌>


<주간아이돌>은 두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첫째, 10대의 신조어 사용을 부추긴다. 신조어는 맞춤법 파괴뿐 아니라, 주로 줄임말을 사용해 올바른 우리말을 인식할 수 없게끔 한다. 신조어를 활용한 일부 자막은 프로그램의 흥미와 집중도를 높이기도 한다. 그러나 빈번한 사용은 우리말 파괴를 앞장서 실천하는 것과 다름없다. 더군다나 10대인 청소년의 미디어 의존도는 상당히 높다. 방송의 재미와 시청률을 위해 10대들을 겨냥하여 일부러 그러는 면이 있다. 하지만, 우리말 사용을 제대로 익혀나가야 할 10대에게 맞춤법이 파괴된 채 왜곡된 말과 표현이 사용되는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면 장차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뿐더러 잘못된 말과 표현을 바른 것인 양 거리낌 없이 사용하게 된다.

 

둘째, 연령층 사이의 괴리감을 강화한다. <주간아이돌>은 10대를 겨냥한 방송이기에 그들의 언어습관을 본떠 방송을 만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방송을 시청하는 다른 연령층은 대부분 이러한 단어는 알지 못한다. 변화를 쉽게 따라갈 수 없는 직장인, 자녀와 친해지기 위해 방송을 시청하는 여러 사람들은 이러한 신조어를 보면서 괴리감을 더 크게 느낄 수 있다.

 

<아는 형님>


다음으로 〈아는 형님〉에서는 문법 파괴와 비속어 사용이 두드러졌다. 출연진의 나이가 평균 42세로, 신조어 사용은 크게 드러 나지 않았다.

▲ 자막의 잘못된 맞춤법 -<아는 형님> 중에서.

70~74회 방송에서 신조어는 초대손님이 ‘입덕’(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뜻) 정도를 언급하는 것에 그쳤다. 그러나 방송마다 평균 4~5번의 비속어가 등장하여 ‘삐’ 소리로 처리한다. ‘새X, 개XX’의 비속어를 말하는데, 제작진은 음 소거와 엑스(X)로 처리하면서도 자막에 새 그림과 강아지 그림을 넣어 시청자가 비속어임을 쉽게 인지하도록 한다. 또한, 진행자 강호동의 유행어 ‘싸우고 시펑, 피나고 시펑?’의 원래 말은  ‘싸우고 싶어, 피 나고 싶어?’인데, 이 말을 표기할 때 ‘싶어’를 연음시켜 ‘시펑’이라고 했다. 게다가 말을 짧게 줄여 ‘싸펑피펑’이라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 74회에는 이 유행어가 ‘초등학생도 아는 〈아는 형님〉 유행어’로 등장했다. 이는 〈아는 형님〉 유행어가 그만큼 파급력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는데, 초등학생에게 잘못된 맞춤법을 전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드러낸 것과 다름없다. 이뿐만 아니라 74회(비투비 편)에서는 제작진의 맞춤법 실수까지 고스란히 방송되었다. 출연진의 상태를 ‘머리 과부하’라고 써야할 것을 ‘머리 과부화’라고 표기했다. 이는 맞춤법 파괴가 만연함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라디오스타>

 

〈라디오스타〉에서는 4가지 분야 중 외국어 남용이 가장 두드러졌다. 〈라디오스타〉는 특별 출연자와 진행자 간의 대화와 사연을 중시해 평소의 말투를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형태로 방송이 진행되기 때문에 현실에서 사용하는 외국어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아래는 2017년 4월 19일에 방영된 〈라디오스타〉에서 사용된 우리말 파괴(외국어 남용과 문법 파괴) 빈도를 나타낸 그래프이다.

 

분석 대상인 4편의 〈라디오스타〉에서 제작진의 자막과 출연진의 대사 중 외국어 사용은 각각 44번, 23번, 30번, 31번으로 매회 최소 23번 이상 외국어를 사용했다. 특히 제작진이 쓴 자막에서 등장하는 외국어는 전체 사용된 외국어의 절반이 넘을 정도로 많았다. 제작진은 주로 출연자의 긴 대사를 짧게 줄이거나 또는 재미를 주고자 할 때 외국어로 의도적으로 바꿔 사용했다.

▲ 출연자의 외국어 사용을 그대로 자막으로 내보냄과 동시에 재미를 위한 외국어 자막까지 방송에 사용했다.-<라디오스타> 중에서

또한 진행자 중 한 명인 김구라는 매회 5번 정도의 외국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라디오스타〉의 구성이 대부분 특별 출연자의 사연을 주로 듣는 형식이기에 몇 안 되는 대사에서도 상당히 많은 외국어를 사용함을 알 수 있다. 반면 다른 진행자 김국진은 4회 방송 중 2회 정도는 외국어를 아예 사용하지도 않았으며, 나머지 2회에서도 한 번 정도 외국어를 썼다.

 

다만 〈라디오스타〉 진행자들이 연령이 가장 젊은 규현(30세)을 제외하고는 40대 후반, 50대 초반이고, 평소 대화체를 사용했기 때문인지 문법 파괴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특별 출연자 또한 평소의 말투를 사용하고, 어느 정도 연령대가 있는 인물들이 나왔기에 문법 파괴 현상이나 과도한 줄임말 또는 신조어는 많이 사용되지 않았다. 제작진들이 임의적으로 상황을 규정하기 위해 쓴 ‘-부심(자부심을 가졌다는 뜻)'이나 '사료 먹방'등 과도한 줄임말만이 존재했을 뿐이다.

 

〈뮤직뱅크〉

 

〈뮤직뱅크〉는 새로운 음악을 소개하는 목적을 가진 예능이기 때문에 외국어 사용이 가장 두드러졌다. 〈뮤직뱅크〉 또한 〈아는 형님〉처럼 우리말 정립이 완벽히 되지 않은 10대 청소년들을 겨냥하여 만든다. 따라서 방송 언어에서 외국어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은 청소년들의 언어 사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 과도한 외국어 자막 처리-<라디오스타> 중에서

아래는 4월 21일 방영된 〈뮤직뱅크〉의 외국어와 문법 파괴 현상에 대한 분석 자료이다. 다만, 예능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분석하는 것이기에 노래 가사에 대해서는 분석하지 않았다. 또한 진행자의 대사 또한 제작진에서 적어준 것이기에 제작진으로 처리했다.

▲ <뮤직뱅크> 4월 21일 방영분의 외국어 사용 횟수

노래를 주로 소개하는 만큼 말이 상대적으로 짧을 수밖에 없음에도 진행자, 가수뿐만 아니라 제작진 또한 외국어를 상당히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총 한 시간 30분 정도 진행되는 프로그램 구성에서 노래를 들려주는 1시간 10분 정도를 제외하면 실제 말을 하는 20분 정도이다. 그럼에도 매회 15번, 11번, 12번씩 외국어를 사용한다. 거의 2분에 1번꼴로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특히 일상생활에서 한국어 단어가 쓰이고 있음에도 굳이 외국어로 써놓은 자막이 상당수 차지한다.

▲ 엄연히 한국어가 있음에도 외국어 사용을 볼 수 있다 - <뮤직뱅크> 중에서.

우리말이 소중하고 지켜나가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은 전 국민이 안다. 그런데 왜 접근성이 가장 높은 오락 방송에서 우리말 파괴 사례들이 버젓이 등장하는가? 간단하다. 시청자들이 재미있어하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적절한 맥락에 사용하는 신조어와 줄임말은 재미와 함께 시대를 따라가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외국어 사용은 전문적임에도 재미난 느낌을 준다고 제작자들은 판단한다. 그러나 재미를 추구하기 전에, 미디어가 해야 할 사회적 역할에 대해 먼저 생각해야 한다.

 

미디어는 대중에게 끼치는 파급력이 큰, 영향력 있는 존재다. 특히 오락 방송은 휴식의 용도로 많이 시청하기 때문에 별다른 판단 없이 그대로 수용되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문법 및 맞춤법 파괴, 외국어·신조어 남용이 그대로 시청자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심지어 20대의 90.8%는 이해하지 못하던 신조어를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다고 한다. 뜻도 모르는 단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순우리말 사용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전달할 수 있다. 적절한 우리말 사용으로 특정 소수 세대만을 겨냥하는 것이 아닌 더 폭넓은 계층을 겨냥하기 위한 발판으로 활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참고 자료

[이거레알] Chat : 20대도 모르는 인터넷 신조어를 맞춰보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lyevYNfabwU&feature=youtu.be

 

김봉철, 〈성인남녀 10명 중 8명 "신조어 소통 어렵다"〉, 《제민일보》, 2017.02.16,
http://m.je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32445, 2017.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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