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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우리 나라 좋은 나라(김영명)

조르바 영감

by 한글문화연대 2013. 10. 24.

[우리 나라 좋은 나라-5] 김영명 공동대표

 

나는 소설을 읽기는 읽지만 그렇게 탐독하는 편은 아니다. 마음에 드는 소설들이 가끔 있기도 하지만 여러 번 읽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런데 여러 번 읽고 심심하면 한 번씩 들추어 보는 소설 책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그리스인 조르바>이다. 종교 경전도 아닌 걸 심심하면 한 번씩 들추어 보다니, 아마 무언가 통하고 마음에 드는 점이 있는 가보다.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서술하기도 쉽지 않고 해서 그냥 조르바 영감의 어록을 한 번 적어 보련다.

 

지난 토요일 밤에 공연히 한 번 그래 보고 싶어서 그날 시찰 나온 우두머리를 붙잡아 팼지 뭡니까?

 

두목, 인간이란 짐승이에요. 짐승이라도 엄청난 짐승이에요. 이 짐승을 사납게 대하면 당신을 존경하고 두려워해요. 친절하게 대하면 눈이라도 뽑아갈 거요.

 

두목, 나를 용서해 주셔야겠소. 아무래도 나는 우리 알렉시스 할아버지와 비슷하단 말이오. <할아버지, 왜 우세요?> 내가 언제 할아버지께 여쭈어 봤지요. <얘야, 내가 저렇게 많은 계집아이들을 남겨 놓고 죽어 가는데 울지 않게 생겼니?>

 

지옥이 있다면 나는 아마 지옥에 갈 겁니다. 이유는 그것뿐입지요. 내가 도둑질 했거나 사람을 죽였거나 간통을 해서가 아닙니다. 이런 건 아무 것도 아니지요. 어느 날 살로니카에서 여자가 같이 자겠다고 기다리는데 안 갔다는 죄목으로 나는 지옥에 떨어질 겁니다.

 

두목, 나 지금 농담하고 있는 게 아니외다. 나는 하느님이 나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좀 더 크고 힘이 세고, 나보다는 돌아도 좀 더 돌았겠지만요...

 

여보쇼 두목, 책은 책대로 놔둬요. 창피하지도 않소? 인간은 짐승이요. 짐승은 책 같은 걸 읽지 않소.

 

그래요, 당신은 나를 그 잘난 머리로 이해합니다. 당신을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 이건 진실이고 저건 아니다. 그 사람은 옳고 딴 놈은 틀렸다 …>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당신 팔과 가슴을 봅니다. 팔과 가슴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침묵한다 이겁니다. 한 마디도 하지 않아요. 흡사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것 같다 이겁니다. 그래 무엇으로 이해한다는 건가요? 머리로? 웃기지 맙시다.

 

내게는 저건 터키 놈, 저건 불가리아 놈, 이건 그리스 놈,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 요새 와서는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쁜 놈, 이런 식입니다. 그리스인이든 불가리아인이든 터키인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 나이를 더 먹으면서(마지막으로 입에 들어갈 빵 덩어리에다 놓고 맹세합니다만) 이것도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놈이든 나는 그것들이 불쌍해요. 모두가 한 가지입니다. … 불쌍한 것! 우리는 모두 한 형제간이지. 모두가 구더기 밥이니까.

 

바다, 여자, 술, 그리고 힘든 노동! 일과 술과 사랑에 자신을 던져 넣고, 하느님과 악마를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 그것이 젊음이란 것이다.

 

내가 뭘 먹고 싶고 갖고 싶으면 어떻게 하는 줄 아십니까? 목구멍이 미어지도록 처넣어 다시는 그놈의 생각이 안 나도록 해버려요.… 터질 만큼 처넣는 방법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금욕주의 같은 걸로는 안 돼요. 생각해 봐요. 두목, 반쯤 악마가 되지 않고 어떻게 악마를 다룰 수 있겠어요?

 

두목, 이런 말을 해서 어떨지는 모르지만 당신은 가망 없는 펜대 운전사올시다. 평생에 한 번이라도 그 아름다운 녹석을 봐야 하는 건데, 당신은 보지 않았지요. 젠장, 일이 없을 때 나는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봅니다. 지옥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고. 그러나 어제 당신의 편지를 받고 나는 두목 같은 펜대 운전사에게는 지옥이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조르바 영감과 그에게 탄광 일을 시키는 책상물림, 도합 둘이다. 책상물림이 주절대는 대화와 해설이 그럴 듯한 것이 많다. 조르바 영감의 말과 대조된다. 책상물림 ‘두목’의 조르바에 대한 언급이 조르바란 인물의 핵심을 찌른다.

 

나는 달빛을 받고 있는 조르바를 바라보면 주위 세계에 함몰된 그 소박하고 단순한 모습, 모든 것(여자, 빵, 물고기, 잠)이 유쾌하게 육화되어 조르바가 된 데 탄복했다. 나는 우주와 인간이 그처럼 다정하게 맺어진 예를 일찍이 본적이 없었다.
 
나는 조르바란 사내가 부러웠다.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을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었다. 내가 고독 속에서 의자에 눌어붙어 풀어보려고 하던 문제를 이 사나이는 칼 한 자루로 산 속의 맑은 대기를 마시며 풀어 버린 것이었다.

 

나는 조르바 영감을 형님 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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