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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우리 나라 좋은 나라(김영명)

염통 전문의와 알몸 크로키

by 한글문화연대 2013. 10. 25.

[우리 나라 좋은 나라-6] 김영명 공동대표

 

고기 파는 음식점 가운데에는 소나 돼지의 각종 부위들을 파는 곳이 있다. 폐, 심장 이런 것들을 판다. 나는 비위가 약한 편이라 그런 부위들은 잘 못 먹는다. 그래도 음식은 별로 가리지 않고 다 잘 먹는 편이다. 몇 년 전에 운동하다 갑자기 죽은 코미디언 김형곤은 맛집 찾아 두세 시간씩 다니는 짓이 제일 바보 같다면서 “다 맛있지 않냐?”라고 했다는데, 나는 그 정도는 아니라도 특별히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는 않는다. 맛없어도 잘 먹는 편이다(마누라여, 복 받을진저!). 맛보다는 오히려 편안한 분위기를 더 좋아한다. 아무리 둘이 먹다 하나 죽을 듯이 맛있어도 사람들 버글거리는 데서 한 시간 기다려 부딪혀가며 주문하느라 소리 질러가며 먹는 것보다는 차라리 굶는 것을 택한다. 그런 데서는 혈압이 올라 힘들다. 가벼운 공황장애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소나 돼지의 폐나 심장, 간, 신장 이런 것을 잘 먹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의사들도 많으리라 본다. 염통 전문의, 창자 전문의, 콩팥 전문의 이런 사람들은, 특히 외과의들은 비교적 위험 부담 없고 수익이 높은 피부과나 성형외과 의사들보다는 힘들고 고달픈 직업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외과 지망 의사들이 적어서 문제가 많다고 한다. 특히 몇 해 전 소말리아 해적들과 대적하다 여러 군데 총상을 입은, 이름이 갑자기 생각 안 나는 석 선장 같은 이를 살리는 전문 의사들은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한다. 너무 힘들고 병원에 수익도 올려주지 못하여 그렇단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이 어디 의사들 세계에서 뿐이겠는가?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다 그렇다. 낄낄대는 우스개는 잘 팔려도 심각한 얘기는 잘 안 팔리는 법이다. 인간이 원래 그렇게 유치하고 조잡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일에 특별히 혈관을 세울 일도 아니다.

 

요즘은 잘 못 듣는 얘기지만 공중목욕탕에 불이 난 일이 종종 있었다. 목욕탕에 불 난 장면을 한 번 상상해 보라.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을 것이다. 여탕에 불이 나서 여자들이 누드로 뛰쳐나왔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는 것 같다. 괜히 성차별이니 성희롱이니 하는 시비에 걸리지 않기 위해 이를 다음과 같이 고친다. 남탕에서 불이 나서 남자들이 누드로 우르르 뛰쳐나왔다고 한다. 그것을 관람하는 다른 남자들은 좀 괴로웠겠다.

 

미술관에 오랜만에 그림을 구경하러 갔다. 이름을 잘 모르는, 화가가 안 유명해서가 아니라 내가 무식해서 그 이름을 모르는 화가가 그린 알몸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건 여자들 알몸이다. 알몸 그림 중에서도 알몸 크로키가 가장 역동적이고 내 맘에 쏙 든다. 나도 저런 그림을, 저것보다는 훨씬 못 그리겠지만, 앞으로 그릴 기회가 있을까? 알몸 얘기를 하다 보니 내가 재직하는 학교 앞의 김밥집에서 파는 알몸 김밥이 생각난다. 김을 밖으로 싸지 않아서 알몸이라고 하나보다. 재미있는 이름이다. 그래도 안알몸 김밥보다는 맛이 덜하다.

 

요즘은 알몸 전성시대인지 이름이 안 알려진 연예인들이 제 이름을 알리기 위해 일부러 노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고 한다. 빨간 양탄자 위를 걷다가 아이쿠 하면서 젖싸개가 흘러내리는 것을 막는 자세를 취한다. 그러면 언론에서 다루어준다는 것이다. 아이쿠 참 기발한 생각이다. 그리고 애처로운 생존 전략이다. 그러다가 알몸 화보가 하나 터져주면 한동안 먹고 살 걱정은 없어진다.

며칠 전에 아내와 함께 종합 검진을 했다. 기본 검사에 더하여 나는 밥통 내시경을, 아내는 큰창자 내시경을 했다. 수면 내시경이라 정신을 번쩍 뜨니 다 끝나 있었다. 조금 몽롱하게 걸어 나왔다. 밥통이니 큰창자니 염통이니 콩팥, 허파 같은 데가 모두 이상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야 앞으로 소나 돼지의 특수 부위들, 곧 폐니 간이니 신장이니 먹기를 시도해 볼 것 아닌가? 알몸 크로키도 원 없이 그려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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