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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우리 나라 좋은 나라(김영명)

용돈 좀 줘!

by 한글문화연대 2013. 11. 7.

[우리 나라 좋은 나라-8] 김영명 공동대표

 

어느 날 아내에게 용돈 좀 달라고 말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란다. 나는 월급을 모두 아내에게 바치고 쥐꼬리 용돈이나 얻어 쓰는 졸장부가 아니다. 그런 남자들이 많은 것으로 알지만, 그들은 그런 형편에 따라 그런 것이라 이해하고 업신여기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다. 그저 내가 잘 난 척을 좀 하고 싶어서 졸장부 운운했음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말을 조금 빗나가게 하자. 뉴스에는 심심찮게 세계 각국의 여성 지위 순위가 발표된다. 그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언제나 꼴찌 수준이다. 한국 여자들의 사회적 지위가 세계에서 꼴찌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남자들이여, 아니 여자들도 들어라, 정말로 한국 여자들의 지위가 세계에서 꼴찌 수준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러면 요즈음 우리가 바야흐로 목도하고 있는 이 모계 사회화는 어찌된 일인가요? 자기가 번 돈을 통째로 아내에게 갖다 바치고 구경도 못해보는 뭇 남성들은 어찌된 종자들인가요?

 

그런 발표들이 말하는 여성 지위의 지표들은 국회의원 비율, 대기업 임원 비율, 고위 공직자들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 등등이다. 그런 ‘사회적 지위’의 면에서 대한민국이 많이 뒤처져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가정에서의 지위는 또 다른 문제다. 어느 식당엘 가도 아줌마를 이모라고 부르지 고모나 숙모라고 부르지 않는다. 자주 보는 친척 아줌마도 당연히 이모지 고모나 숙모가 아니다. 아직도 가부장적 전통이 남아있는 집들이 많기는 하나, 실제 가정  생활이 돌아가는 것은 여자들 중심으로 점점 바뀌어가고 있다.

 

남자들은 꽃다운 청춘에 2년 이상을 군대에서 썩고 오고 그동안 열심히 공부한 여학생들이 온갖 시험에서 남자들을 제친다. 썩고 온 남학생들이 취직 걱정으로 밤을 새우고, 겨우 취직한 졸업생도 결혼하고 가정생활을 꾸리기 위해 제 하고 싶은 짓도 제대로 못하는 동안, ‘골드 미스’ 여자 졸업생들은 해외 여행을 즐기며 다닌다. 불쌍한 청년들이여. 남자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발끈하고 일어나는 여자들이 많을 줄 안다. 시원찮은 남자들도 물론 가세한다. 이렇게 발끈하는 까닭을 다 이해한다. 그래도 아직 대한민국은 남자 위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받는 차별이 여전히 강고하다는 사실도 안다. 그러나 이런 차별을 타파하자는 이른바 양성평등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이 말하고 있으면서, 남자들이 겪는 서러움이나 어려움에 대해서는 너무나 적게 말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한 마디 거든 것뿐이다. 남성 운동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 진정한 남녀 평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마 견해 차이가 많을 것이다.

 

그런데 남성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들이라 공감을 못 얻는다. 왜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려서 죽나? 이런 돌출행동은 남성 운동이든 여성 운동이든 역효과만 얻을 뿐이다.     말이 조금만 빗나갔으면 좋은데 너무 많이 빗나가버렸다. 아내에게 용돈 좀 달라고 한 까닭은 내가 스물네 살 이후로 용돈다운 용돈을 못 받아보았기 때문이었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연구소 조교로 취직하면서 내 돈을 벌기 시작했고, 미국 유학도 장학금으로 갔고, 와서는 바로 취직하여 또 돈을 벌었다. 그 뒤 결혼하고 부모님과 잠깐 같이 살면서 생활비 조로 달마다 조금씩 드렸는데, 그것이 분가하고서도 아버지 돌아가실 때까지 30년 가까이 계속되었다.

 

아이들 키우면서 들어가는 돈이야 당연히 내 몫이지만, 결혼을 좀 늦게 하여 환갑이 다 되어 가는데도 대학 등록금을 대려니 문득 짜증이 돋기도 했다. 이젠 겨우 끝난 일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애들에게 말했다. 돈 벌어라. 대학원 가고 싶으면 네가 벌어서 가든가 벌면서 다녀라. 다행히(?) 애들은 공부에 대한 욕심이 그다지 크지 않다. 전혀 없는 것은 아니로되.

 

그런 생활을 당연히 여기고 살아왔다. 여기저기 많지는 않으나 돈도 좀 내 가면서. 한글문화연대에도 간간이 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좀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왜 난 남에게 주기만 하고 얻지는 못할까? 내게 용돈 좀 챙겨주는 사람은 없나? 밥 먹으라고 돈 좀 주는 사람 없나? 일한 대가로 말고 그냥 말이다. 

 

나는 독립심이 강한 사람이다. 간섭 받는 것도 싫고 의지하는 것도 싫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어른이 되면서 나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점점 깨달았다. 그런 성격이라 말글 독립을 꿈꾸는 한글 운동을 시작했겠지.

 

그런 내가 용돈 좀 줘 하는 소리를 하는 건, 두 가지 이유를 때문일 것이다, 하나는 원체 내가 돈을 좋아해서일 것이고, 둘은 아 나도 내게 돈 좀 주는 사람 있으면 좋겠다 하는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이 드니 옆구리가 좀 시린가? 뭐 꼭 그렇다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누구든 나 용돈 좀 줘!

 

아내가 어떤 반응이었을 것 같은가? 참고로 아내는 나보다 돈을 훨씬 더 많이 꼬불치고 있다. 그 여자는 내 말에 뭔 시답잖은 말인가 하는 표정을 짓고는 금방 다른 업무로 복귀하였다. 그리고는 나의 그 말을 영원히 잊어버렸다. 그렇다고 내가 정색을 하고 옆구리가 시리니 어쩌니 하면서 마누라 옆구리를 콕콕 찌를 순 없지 않은가? 그리하여 나는 마누라에게 용돈을 못 받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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