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 말이 그렇구나-19] 성기지 운영위원
‘사리’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에서 “가느다란 실이나 줄을 동그랗게 포개어 감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 ‘사리다’인데, ‘사리’는 바로 이 ‘사리다’의 명사형이다. ‘사리’는 이렇게 실이나 줄을 사려서 감은 뭉치를 가리키기도 하고, 또 이 뭉치들을 세는 단위명사이기도 하다. 가령 철사나 새끼줄 따위는 둘둘 감아서 보관하는데 이렇게 감아놓은 뭉치를 셀 때 “철사 한 사리, 두 사리”, “새끼줄 한 사리, 두 사리”처럼 말한다.
철사나 새끼줄과 마찬가지로, 가늘고 긴 면발을 둘둘 감아놓은 뭉치도 사리로 센다. 음식점에서 국수를 먹을 때, 국물은 남았는데 양이 덜 차게 되면 면을 추가로 주문한다. 이때 면을(정확히는 면을 둘둘 감아놓은 뭉치를) 따로 시키려면 “면 한 사리 더 주세요.”라고 말하면 된다. 물론 ‘사리’는 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면을 세는 단위로 쓰는 말이다.
그런데 이 ‘사리’가 면이나 덤인 것으로 오해하게 되면, 면은 사라지고 그냥 단위만 써서 “사리 주세요.”라고 말하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나아가서 밥 한 공기를 추가로 주문할 때도 “사리 주세요.” 하는 엉뚱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마치 문구점에 가서 연필을 산 뒤에 추가로 주문하면서 그냥 “자루 주세요.” 하는 것과 한가지이다.
‘자루’라는 말도 가끔 ‘개비’와 혼동된다. ‘자루’와 ‘개비’는 둘 다 길고 곧은 물건을 셀 때에 쓰는 단위명사인데, 손잡이가 있거나 그 안에 심이 들어 있는 것일 때에는 ‘자루’를 쓴다. 그래서 손잡이가 있는 삽이나 지팡이 같은 물건을 셀 때에도 ‘자루’고, 심이 들어 있는 연필을 셀 때에도 ‘자루’이다.
하지만 길고 곧은 물건 가운데 손잡이도 없고 심도 들어 있지 않은 것은 주로 ‘개비’라는 단위를 사용한다. 그래서 장작을 쪼갠 것도 ‘장작 한 개비’처럼 ‘개비’를 쓰고, 담배를 낱개로 셀 때에도 ‘담배 한 개비’라고 말한다. (이때, ‘개피’나 ‘가치’는 모두 비표준말이다.) 제사상에 피우는 향을 셀 때에도 ‘향 한 자루, 두 자루, …’가 아니라 ‘향 한 개비, 두 개비, …’라고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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