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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커피 나오셨습니다.’ 잘못된 문장 왜 쓰는가?-최지혜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18. 9. 3.

‘커피 나오셨습니다.’ 잘못된 문장 왜 쓰는가?
- ‘현대 경어법의 변화 방향’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5기 최지혜 기자
jihye0852@naver.com


 2018년 7월 19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한글문화연대 활짝에서 ‘현대 경어법의 변화 방향’이라는 주제로 대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이정복 교수가 강연을 진행하였다. 우리말은 ‘경어법’이 발달한 언어이다. 영어로는 인사를 할 때 한참 어른께도, 한참 어린아이에게도 똑같이 ‘Hi’라고 인사할 수 있지만, 국어에서는 상대에 따라 ‘안녕하세요.’, ‘안녕.’ 등 다른 방식으로 인사해야 한다. 이게 바로 경어법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경어법의 정확한 정의는 ‘남을 높여서 말하는 법’이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은 경어법을 사용해 왔다. 말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기 마련이다. 경어법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화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변해갈 것이다.

 

 이번 강연을 통해 현대 경어법이 지금까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 나갈지 그 전망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정복 교수(이하 이 교수)는 강연에서 현대 경어법의 변화를 ‘님’의 확산과 기능의 다양화, ‘-시-’의 기능 확대, 객체 높임 ‘드리다’의 문법화 가능성, 청자 중심의 경어법 사용 등의 네 측면에서 분석하여 설명하였다.

 

  경어법은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구분을 명확히 드러내기 때문에, 경어법 대신에 영어와 같은 평등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일부 기업에서는 직급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서로에게 높임말을 쓰기도 한다. 그렇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 경어법은 오히려 확대되어 쓰이고 있다. 현재의 한국어 경어법에서 보이는 흐름 또는 앞으로의 변화 방향을 살펴보겠다.

출처 한글문화연대 새 누리집 (http://www.urimal.org/)

 

 ◆ 더 많이, 더 다양한 방식으로 쓰이게 된 ‘님’

 

  본래 ‘님’은 명사로 쓰였지만, 최근 쓰이는 ‘-님’은 사람을 가리키는 거의 모든 명사에 붙게 되었다. ‘부모님’처럼 예전부터 쓰이던 표현도 있고, ‘애인님’과 같이 인터넷이 발달하며 인터넷상에서 쓰이기 시작한 예도 있다. ‘기사님’의 경우에는 조직 내 직위와 관련된 말과 ‘-님’이 결합한 예시이다. ‘공자님, 부처님’과 같이 종교 관련 인물에 붙이는 때도 있고 ‘대통령님’의 경우에는 ‘-님’이 붙이지 않아도 되었던 말에까지 붙은 경우이다. 토박이말이나 한자 말이 아닌 ‘매니저님’과 같이 서양 외래말에도 ‘-님’이 잘 결합하게 되었다. 이제 '-님'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에는 무리 없이 붙일 수 있을 정도로 쓰임이 확대되었다. 예전에는 높이는 대상에게만 존경을 담아 사용했다면, 지금은 인터넷 통신 언어에서 ‘00님’이라고 칭하는 문화 속에서 그 제약이 거의 다 해소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님’은 의존명사와 2인칭 대명사로도 잘 쓰인다. 특히 인터넷 통신 공간에서 이런 용법이 잘 드러난다. ‘(이름 혹은 별명) 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님’을 의존명사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방을 그냥 ‘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2인칭 대명사로 쓰는 경우이다.

 

  ‘님’을 사람이나 직위를 나타내는 말에 붙여 쓰는 것을 비판적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본래의 용법과 규범을 지켜야 한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언어는 언제나 바뀌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교수는 ‘님’의 쓰임이 확대되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이 교수는 곧 일상어에서도 ‘님’이 접미사로서뿐 아니라, 의존명사와 대명사로써 쓰일 것으로 예상했다.


 ◆ 더 많은 기능을 하게 된 ‘-시-’

 

 주체를 높이는 ‘-시-’는, 청자가 문장의 주체가 아님에도 청자를 높이는 기능을 하는 것처럼 생각하여 쓰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간접 높임과 사물을 존대하는 경우를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손님, 커피 나오셨어요.’와 같은 문장은 사물인 커피를 높이는 표현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최근 젊은 세대는 ‘하십시오체’보다는 ‘해요체’를 쓰는데, 해요체로 말하면 왠지 모르게 예의 없다는 느낌을 준다는 생각에 해요체를 씀과 동시에 ‘-시-’를 넣어 상대를 높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손님, 커피 나오셨어요.’와 같은 문장을 사용하게 된 것이라고 이 교수는 설명하였다. 화자들이 문장의 주체를 높이는 본래의 기능에서 벗어나 대화 상대를 높이기 위해 서술어에 ‘-시-’를 붙이게 된 것이다.

 

 이렇듯 주체 높임 형식이 문장의 주체를 높이던 것에서 대화 상황 속 화자가 주목하는 ‘상황 주체’, 특히 청자를 높이기 위한 기능으로까지 영역을 넓히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사회 전반적인 대우 수준이 강화되어 종결어미를 통한 청자 높임만으로는 충분히 대우하지 못한다는 무의식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청자와 주체가 겹치는 상황에서 청자 경어법과 주체 경어법을 함께 사용하던 습관 때문에 그렇지 않은 문장에까지 주체 높임 형식을 붙이게 된 것이 원인일 수도 있다. 또한 ‘간접 높임’이 확대된 결과로 볼 수도 있다. 그 자체로는 높임 대상이 될 수 없지만 높여 대우하려는 청자와 직접 관련이 있는 사물을 높이는 것이다.

 

 ‘커피 나오셨습니다.’라는 문장에서 화자는 과연 사물에 존대한 것일까? 그동안 이 문장이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꽤 많이 들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교수에 의하면 여기에서는 ‘-시-’가 커피의 주인이 되는 고객과 연결이 되는 것이지, 화자가 커피라는 사물 자체를 높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문장에서는 사물 자체를 높인다기보다는 사물이 간접적으로 사람을 높이는 데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체 높임 형식인 ‘-시-’는 청자를 공손하고 정중하게 대우하여 높이는 데 사용되었다.


 ◆ 객체를 높이는 ‘드리다’, 문법 요소로?

 

 ‘감사드리다’, ‘사과드리다’ 등 ‘드리다’는 마치 접미사처럼 쓰여 객체 높임 동사를 만들어낸다. 하나의 문법 형태소로서 자리매김해 나가고 있다. 중세 국어에서는 객체를 높이는 것을 중시하여 ‘ᄉᆞᆸ’이라는 객체 높임 형식이 있었지만, 현대로 오며 청자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생기면서 ‘ᄉᆞᆸ’은 사라지고 그 빈 부분을 ‘드리다’가 보충하게 된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 교수는 앞으로 이러한 ‘드리다’를 더 많이 쓰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 청자를 높이는 경어법이 힘을 얻는다

 

 우리 사회에서는 갈수록 청자 중심의 경어법 사용이 주를 이루게 될 것이다. ‘-시-’도 청자 경어법 형식으로 인식되고 실제로도 이러한 방식으로 많이 쓰이는 추세이다. 원래 우리말에는 ‘압존법’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압존법이란, ‘높여야 할 대상이지만 듣는 이가 더 높을 때 그 공대를 줄이는 어법’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교수 앞에서 한 학생이 ‘4학년 선배님이 말씀해주셨어요.’와 같이 말하는 것은 압존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4학년 선배보다 나이가 많고 지위가 높은 교수 앞에서 선배를 ‘님’과 ‘-시-’를 통해 높였기 때문이다. 청자 중심의 경어법을 사용하는 흐름이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제삼자에 대해서는 ‘님’, ‘께서’, ‘-시-’등으로 높이는 말하기는 점점 힘을 잃게 될 것이다.


 이 교수는 ‘상호 높임’과 ‘상호 존중’의 정신을 강조하였다.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반말을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서로 인격을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는 도구로써 상호존중의 경어법을 유용하게 사용하고, 일방적인 높임은 사회 속 지위나 나이에 따른 서열을 강요하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


 강연을 마치고, 30분가량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질의응답의 내용이다.

 

 Q. 병원에서 ‘여기 앉으실게요.’라고 많이들 하는데, 이런 것을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A. 언어 사용에 있어서 국가가 나서서 써도 되는 것과 쓰지 말아야 할 것을 정해서 강요할 수는 없다. ‘앉으실게요.’와 같은 문장은 딱딱하지 않은 해요체를 씀과 동시에 명령처럼 들리지 않도록 해주는 ‘-시-’를 사용한 것이다. 이는 고객에게 절대적인 친절과 봉사 정신을 강요하는 사회적 구조 때문에 나오게 된 문장이 아닌가 생각한다.

 

Q. 잘못된 문장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 불편함에 익숙해져야만 하는 것인가. 원래부터 ‘앉으세요.’라는 문장이 부담스러웠다기보다 ‘앉으실게요.’라는 문장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부담스러워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언어 규범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을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닌가.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A. 타인에게 명령문을 쓰는 것은 부담스럽기 때문에 다른 문장 종결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실제로 꽤 많다. 요즘 ‘낚시하지 마세요.’와 같은 명령문보다는 ‘낚시를 할 수 없습니다.’ 와 같은 평서문을 많이 쓴다. 명령문은 상대에 강한 힘을 행사하는 문장이기 때문에, 공공기관이나 병원과 같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에게 친절하게 응대할 것을 요구받는 곳에서 ‘앉으세요.’라는 문장을 쓰기는 실질적으로 어렵다.


 이날 강연에 참가한 관계자와 시민들은 강의 내용에 이의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기도 하고, 보충 설명을 요구하기도, 직접 보충 설명을 하기도 하였다. 기사에 모두 다 담지는 못하였지만, 다양한 의견이 오고 가며 활발하게 토론이 이루어진 덕에 강연의 내용이 더욱더 풍성해질 수 있었다. 우리 사회 속 경어법 사용 실황과 그 전망을 살펴보는 시간이었는데, 경어법을 통해서 ‘이상한’ 경어법을 사용하도록 강요해온 사회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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