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을 쉬운 말로 써주세요

- ‘매수’ 대신 ‘물건을 샀다’는 어떤가요?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5기 박찬미 기자 
misongjong@naver.com

 

[각주:1]'선의의 매수인은 매도인에게 담보책임을 물어 그 부분의 비율로 대금의 감액을 청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문장은 상속세 부과처분 취소에 관한 대법원 판결 내용 가운데 일부다.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는가? 아마 대부분 단숨에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선의, 매수인, 매도인, 담보, 대금, 감액, 청구 모두 한자로 이뤄진 낱말로,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판결문에서는 우리말보다 한자로 이뤄진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헌법을, 쉬운 말로 바꾸는 ‘알기 쉬운 헌법 만들기 운동’처럼 판결문도 쉬운 말로 쓰도록 하면 어떨까?

 

 먼저 ‘선의’란 사법상에서 ‘어떤 사실을 모르는 것’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보통 선의라고 하면 착한 마음을 떠올리기 쉽지만 법에서는 전혀 다른 뜻이다. 선의의 반대말은 ‘악의’다. 이 역시 사법에서는 ‘어떤 사실을 아는 것’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즉 ‘선의의 매수인’이라 하면 ‘어떤 사실을 모르는 매수인’이라는 말이다.

 반면 매수와 매도는 다른 법률 용어보다 평소 많이 쓴다. 그러나 이 말이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도 꽤 될 것이라 짐작한다. 여기서 매수인은 ‘물건을 사서 넘겨받은 사람’, 그리고 매도인은 ‘물건을 팔아 넘겨주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다.
 그렇다면 담보는 무슨 뜻일까? 담보란 맡아서 책임지고 증명한다는 뜻이다. 쉽게 말하자면 ‘사고파는 계약을 한 사람들이 권리나 물건에 하자가 있을 경우 지는 책임’이 담보책임이다. 앞서 언급한 문장 일부를 쉽게 바꿔보면 ‘물건을 산 사람은 판 사람에게 권리(또는 물건)에 흠이 있다며 책임을 물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다음은 대금, 감액, 청구라는 단어다. 이들은 각각 ‘물건을 살 때 내는 돈’, ‘값을 줄임’, ‘돈이나 물건을 달라고 요구함’이라는 뜻이다.

 위 문장 전체를 쉬운 말로 바꿔봤다.

  원래 문장 : ‘선의의 매수인은 매도인에게 담보책임을 물어 그 부분의 비율로 대금의 감액을 청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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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꾼 문장 : ‘어떤 사실을 모르고 물건을 산 사람이 물건을 판 사람에게 권리(또는 물건)에 하자가 있다고 책임을 물었기 때문에, 그 하자만큼 물건 값을 줄여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장이 길어지긴 했지만 해석하는데 훨씬 쉬워졌음을 느낄 수 있다.

 

 이들 단어뿐 아니라 ‘해태’, ‘위법’ 등도 판결문에 자주 쓰이곤 한다. 해태란 ‘법률 행위를 할 기일을 넘겨 책임을 다하지 않는 일’을 말하며 위법은 ‘법률을 어김’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예를 들어, [각주:2]‘절차에 명백한 위법이 있음에도 거주지 변경 신고의무의 해태라는 본인의 잘못...’이라는 대법원 결정문의 내용을 ‘절차가 법을 명백히 어겼음에도 거주지 변경 신고 기일을 넘긴 본인의 잘못...’이라고 바꿀 수 있다.

▲ 법률 용어 일부와 뜻

 

 판결문에 쓰이는 법률 용어들은 한자어로 이뤄진 게 대부분이다. 그래서 해석할 때 어려울 수밖에 없다. 알기 쉽게 쉬운 말로 바꿔서 판결문을 쓴다면 문장이 조금 길어질 수는 있겠지만 누구나 판결문을 읽고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살면서 판결문을 볼 일이 뭐가 있다고 굳이 판결문을 쉬운 말로 쓸 필요가 있을까?’하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판결문을 굳이 어려운 한자어로 쓸 필요 역시 없다.
 법은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돼있다. 물건을 계산하는 것, 아르바이트하며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것 등 사소한 것들도 모두 법에서 규정한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문제가 생겨도 관련된 법과 판결을 직접 찾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법에 대한 접근성이 완화돼야 한다.
 판결문을 우리말로 쉽게 쓰는 일, 이제부터 시작해야 한다.

  1. 대법원 2002. 12. 6. 선고 2000두2976 판결 [상속세부과처분취소] [본문으로]
  2. 대법원 2006. 2. 8. 자 2005모507 결정 [상소권회복기각결정에대한재항고] [본문으로]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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