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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아, 그 말이 그렇구나(성기지)

떨거지와 떼거지

by 한글문화연대 2014. 1. 23.

[아, 그 말이 그렇구나-26] 성기지 운영위원

 

설 연휴가 눈앞에 다가왔다. 자손이 많은 집에는 명절마다 온 나라 곳곳에서 아들딸과 손주들이 몰려들게 마련이다. 주름 깊게 팬 할머니는 싫지 않게 웃으며 “어이구, 이게 웬 떨거지들이냐!” 하신다. 일가친척 붙이를 ‘떨거지’라고 한다. “그 집도 떨거지가 많다.”처럼 쓴다. 또, 일가친척 붙이는 아니지만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을 한데 아우를 때도 떨거지라고 하였다. 본디는 낮은말이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오늘날에는 한통속으로 지내는 사람들을 낮추어 부르는 말로 변하여 쓰이고 있다.

 

‘떨거지’와 형태가 비슷한 ‘떼거지’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떼를 지어 다니는 거지’가 줄어들어 만들어진 말이다. 흔히 ‘졸지에 거지처럼 되어 버린 사람들’을 비유하는 낱말로 쓰여서, “지난 수해로 그 마을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떼거지가 되었다.”와 같이 표현된다. 그런데 가끔, “한 번만 만나 달라고 떼거지를 썼다.” 또는 “떼거지를 부렸다.”라는 말을 주위에서 들을 수 있다. 이것은 올바른 말이 아니다. 이때에는 ‘떼거지’가 아니라 ‘떼거리’로 써야 한다. 무리한 요구를 들어 달라고 고집 부리는 짓을 ‘떼’라고 하는데, 이 ‘떼’를 속되게 이르는 낱말이 ‘떼거리’이다. ‘떼거리’와 ‘떼거지’는 뜻과 쓰임이 서로 다를 뿐 아니라, ‘떼’와 ‘떼거지’는 표준말이지만, ‘떼거리’는 속어이다.

 

졸지에 거지처럼 되어 버린 사람들을 떼거지라고 하니까, 반대로 졸지에 부자가 된 사람 곧 졸부를 ‘떼부자’라고 부르는 일이 많다. 그러나 우리말에 ‘떼부자’라는 말은 없다. 이때에는 ‘벼락부자’라고 한다. 또, 겉으로는 거지꼴을 하고 다니지만, 집에 가보면 살림이 부유한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을 ‘난거지든부자’라고 한다.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면, 주변에 난거지든부자들이 뜻밖에 많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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