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새해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혁신 성장의 방안 가운데 하나로 ‘규제 샌드 박스’를 언급했을 때 나는 화들짝 놀랐다. 작년 3월에 정부혁신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어려운 행정용어 쓰지 말자셨던 분이 왜 이러시나....
‘샌드 박스’는 말 그대로 모래 상자인데, 불 났을 때 불 끄라고 또는 눈 많이 왔을 때 길에 뿌리라고 모래 담아둔 상자가 아니다.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노는 모래 놀이터에서 따온 말이란다. ‘규제 샌드 박스’는 ‘Regulatory sand box’의 머리만 번역한 말로, , 신산업ㆍ신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을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해주어 자유로운 시도를 북돋는 제도란다.
나도 모르는 말인지라 여기저기서 얻어듣고야 이 말의 의미를 겨우 알아챘다. 관료들은 마땅한 우리말이 없어서 샌드 박스를 그대로 쓸 수밖에 없다고 변명하겠지만, 그럼 그냥 ‘모래 상자, 모래판’이라고 하면 안 될 까닭이 있을까? 어차피 놀이터 상황에 비유하여 나온 말이므로 그런 맥락을 설명해주지 않는 한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다. 기왕 설명할 거라면 우리말로 이름 붙이는 게 옳고, 좀 더 잘 다가오는 새말을 만든다면 더욱 좋다.
영화 <말모이>에서 김판수는 ‘도시락’ 같은 우리말이 사라지는 걸 걱정하는 구자영에게 도시락이나 벤또나 배만 부르면 되지 않냐고 맞받아친다. 목적의 맥락에서 보자면 벤또와 도시락은 아무 차이가 없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나라를 ‘대한민국’이라고 부르지 않고 ‘코리아’라고 부른다하여 면적과 날씨가 바뀌지 않는 것과 같다. ‘싱크 홀’이나 ‘땅 꺼짐’이나, ‘리스크’나 ‘위험’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냐 말이다.
그러나 정말 아무런 차이가 없을까? 누가 뭐래도 일제 강점기 때 우리말 대신 일본말을 쓰게 한 건 민족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악랄한 시도였다. 우리 민족은 살아남았으니 세계화 시대에 외국어 좀 쓰는 거 무어 그리 큰 문제냐고 하겠지만, 그 논리가 ‘실용’을 가장하여 친일을 서슴지않던 논리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지금 정부에서 우리말 대신 영어를 남용하는 일은 민족을 분열시키는 짓이다. 영어를 알고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1등 국민과 영어를 몰라 알 권리를 침해당해도 꾹꾹 참아야 하는 2등 국민으로 세상을 가르고 장벽을 설치하는 짓이다.
문 대통령은 ‘규제 샌드 박스’라는 방안을 들고 온 실무 책임자에게 물어봤을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이냐고. 그리고 설명을 들은 뒤에는 한 번 더 물어봤어야 했다. 이걸 쉽게 우리말로 바꿀 쑤는 없냐고. 그걸 ‘규제 임시 해제’로 하든 ‘규제 모래 상자’로 하든 그게 ‘규제 샌드 박스’보다 어려울 리는 없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보건복지부의 커뮤니티 캐어, 중소벤처기업부와 서울시의 제로페이, 그리고 문 대통령의 규제 샌드 박스까지 모두 ‘벤또’ 같은 말이다. 이래서야 경제 정책에 쏟는 고민과 노력을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겠는가?
출처: 경향신문-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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