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5.17 공공언어학의 새로운 출발을 위한 학술 토론회]

 

언어는 인권이다
- 공공언어 개선의 필요성

 

이건범 /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 대표

 

1. ‘스쿨 존’과 ‘그린 푸드 존’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며 퍼뜨린 말 가운데 국가대표 급으로 문제가 많다고 느끼는 말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스쿨 존’과 ‘그린 푸드 존’ 둘을 들겠다. ‘스쿨 존’은 학교 앞이니 아이들 다치지 않게 주의하면서 시속 30킬로미터 밑으로 운전하라는 곳이고, ‘그린 푸드 존’은 어린 학생들에게 위생에 문제 있을 만한 음식은 팔지 말라고 정한 곳이다. 하나는 어린이의 교통 안전, 다른 하나는 어린이의 먹거리 안전을 다루는 말이다. 둘 다 어린이의 생명과 바로 이어지는 말인데, 여기에 영어를 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 <도로교통법>에서는 자동차 사고 위험에서 어린이들을 지키기 위해 ‘어린이 보호 구역’을 지정하였는데, 이를 알리는 용어로 2000년대 초부터 ‘스쿨 존’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곧 자동차 길라잡이(내비게이션) 안내에서 계속 이 말을 쓰게 되었다. 한글문화연대에서 몇 번이나 지적하고 ‘어린이 보호 구역’으로 바꿔 달라 요구하여 바뀌기도 했지만 그러다가도 또 누군가가 이 말을 쓰는 통에 쉬 사라지지 않는다. 2018년 서울시와 메르세데스 벤츠, 아이들과미래재단 등 셋이 공익 광고를 만들면서 또 이 말을 앞세우는 바람에 한동안 잠잠하다 다시 살아났다.

 

나는 1990년대에 ‘스쿨 존(SCHOOL ZONE)’이라는 미국의 어린이 교재 출판사 이름을 먼저 들어 익혔던 터라 공익 광고에서 ‘스쿨 존’이 나왔을 때 오히려 그 뜻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실, 우리나라 운전자 중에는 영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제법 많고, 영어를 안다 하더라도 ‘학교 구역’이라고 직역한 말이 ‘어린이 보호 구역’보다 더 빠르고 뚜렷하게 뜻이 다가올 리는 없다. 이런 곳에서는 단 0.1초의 차이도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

 * 서울의 어느 중학교 앞에 크게 설치된 알림판

 

‘그린 푸드 존’은 ‘스쿨 존’의 아우 뻘. 2008년에 ‘어린이 식생활안전관리 특별법’이 제정·공포됨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청(지금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요청으로 전국 6,400여 곳의 초·중·고 학교의 주변을 어린이 식품안전보호구역으로 지정하였다. 시행령에서는 어린이 식품안전보호구역을 지정한 경우, 총리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표지판 등을 설치하고 관리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여기까지는 다 좋았다. 그런데 그 시행규칙인 국무총리령 제3조에서 정한 ‘표지판의 설치 및 관리기준(별표 1)’이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시행규칙의 별표1]

 

  도안요령의 내용
  "GREEN FOOD ZONE 여기부터는 어린이 식품안전보호구역입니다."
  -○○○ 시ㆍ군ㆍ구-

 


그래서 단지 이 규칙 때문에 대부분의 시군구에서는 영어 철자로 된 ‘GREEN FOOD ZONE’을 대문짝만하게 적은 알림막을 학교 주변 거리 곳곳에 건 것이다. 법과 시행령도 아니라 그 밑의 시행규칙에서 ‘GREEN FOOD ZONE’이라고 영문 이름을 지어 영어 실력을 뽐낸 어떤 공무원 때문에 어린이의 먹거리 안전을 보호하자는 법의 취지가 거리의 음식 쓰레기 꼴이 되었다. 이 공무원은 문제 있는 먹거리를 파는 사람이 영어권 출신이라고 믿었던 것일까?

 

한글문화연대에서 2017년에 어려운 안전 용어를 조사하여 쉬운 말로 고치는 일을 하면서 식약처에 ‘그린 푸드 존’을 ‘어린이 식품 안전 보호 구역’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참으로 무책임하였다.

 

“귀 사단법인에서 제기하신 사항....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다루는 문구는 우리말이면서 한글로 표기해야한다는 취지에는 적극 공감하는 바이며, 국민들이 쉽게 알아보실 수 있도록 ‘어린이 식품안전보호구역’과 ‘GREEN FOOD ZONE’을 병행하여 표시하고 있고, 국민의 인식정도, 그간의 표시시행기간, 국제화 시대에 국내방문 외국인들의 이해 증진 등을 고려 시 병행 표시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또한, 전국 약 9천여 곳이 어린이 식품안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운영 중으로 관련 시설 설치 변경에 따른 예산 등을 고려할 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다시 한 번, 우리말과 한글을 지키려는 노력에 감사드리며, 이와 관련된 귀 기관의 제기 내용이 향후 정책에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2017년 12월 20일, 식약처 답변 중)
 
첫 단추를 잘못 꿰니 그 결과와 비용 문제 등에 발목 잡혀서 개선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걸 빌미로 또 다른 영어가 들어온다. 문제 제기에 공감한다는 말은 영혼의 진심이 전혀 담겨있지 않은 겉치레일 뿐이다.

 

어린이들의 안전을 지키는 일에 우리 정부는 왜 굳이 영어를 사용해야만 할까?
1) 우리말로는 의미를 제대로 전할 수 없어서
2) 법 적용 대상이 주로 외국인이라서
3) 외국어로 이름 지어야 시류에 맞는 것 같아서

 

답은 뻔하다. ‘학교, 먹거리, 구역’ 따위 우리말이 있음에도 어느새 시민권을 얻은 ‘스쿨, 푸드, 존’ 등의 영어 낱말이 국민의 알 권리와 보건권을 침해하는데, 그 침해의 주체는 국가다. 침해 행위의 실행은 헌법 제7조에서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규정한 “공무원”이 맡고 있다. 이대로 두어도 좋은가?


2. 헌법에서 보장하는 국민의 국어 사용 권리

 

‘스쿨 존’과 ‘그린 푸드 존’은 국민 개개인이 사적으로 쓰고자 만든 말이 아니다. 국민의 안전과 재산, 권리와 의무, 정치 참여 등을 다루는 용어 가운데 하나다. 이처럼 국민들의 사회적 삶과 활동에 적용되는 규정과 정보, 지식을 다루는 말을 공공언어라고 한다. 공공언어는 모든 국민에게 두루 사용되는 말이므로 용어가 쉽고 문장은 우리말다워야 한다. 공공언어가 쉽고 우리말다워야 하는 까닭을 대한민국 헌법에서 찾아보자.

 

우리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가 제대로 거들떠보지 않고 있지만, 법치국가 대한민국은 그 뼈대인 헌법에서 국민의 국어 사용에 관한 권리를 보장한다. 우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대한민국 헌법 21조에서는 언론과 출판, 집회와 결사의 자유 등 좁은 의미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19조에서 양심의 자유를, 22조에서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여 국민이 개인적이건 사회적이건 제 뜻을 펼 수 있게끔 하였다. 그리고 우리 헌법은 국민이 제 뜻을 펴는 표현의 자유와 함께 국민이 국어를 사용할 때 침해당해선 안 될 다섯 가지 권리를 담고 있다.

 

첫째, ‘알 권리’이다. 국민이 정치적 의사 결정에 민주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공적인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헌법에서는 알 권리를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지만, 헌법 제21조의 표현의 자유, 또는 제10조의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 등을 근거 조항으로 국민의 알 권리가 헌법상의 기본권에 포함된다는 데 이견이 없다. 따라서 각종 법령이나 행정정보, 공문서, 공공정보 등을 국민이 자유롭게 접하고 열람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국가의 의사 결정 과정과 의사 결정 내용을 모두 쉽게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실질적 민주주의가 구현되고 국민주권 원리가 살아난다. 이 모든 과정은 언어와 문자를 매개로 이루어지므로 우리말과 한글만으로도 알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둘째, ‘평등권’이다. 우리 헌법 제1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공적인 의사 표명에 외국어가 포함되어 있다면, 외국어 구사 능력에 따라 국민을 차별하는 꼴이므로 평등권 침해가 될 것이다. 나아가 계층에 따라 외국어 구사 능력이 차이가 나는 현실을 고려하면, 사회적 약자의 보호라는 헌법 정신에도 어긋난다.

 

셋째, ‘근로의 권리’이다. 헌법 제33조에는 근로의 권리가 규정되어 있다. 근로계약을 맺을 때 노동자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는 내용을 노동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면, 노동자의 권리는 보장될 수 없다. 그러므로 외국인이 근로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한, 근로계약, 사규, 업무지시 등에 외국어나 어려운 한자어를 사용하면 노동자가 권리를 행사하는 데 걸림돌이 되며, 자칫하면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준다.

 

넷째, ‘보건권’이다. 헌법 제36조 제3항은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하여 보건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였다. 따라서 식품이나 의약품의 표시 및 사용 설명서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와 한글을 사용해야만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 공중에게 공개된 장소에 사용하는 게시물이나 알림도 마찬가지이다. 지하철에서 ‘심장충격기’나 ‘안전문’ 대신 ‘A.E.D.’나 ‘스크린도어’ 같은 말을 써서 안전에 주의하라고 알리는 것은 영어를 모르는 사람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짓이다.

 

다섯째, ‘소비자의 권리’이다. 헌법 제124조에서는 “국가는 건전한 소비행위를 계도하고 생산품의 품질향상을 촉구하기 위한 소비자보호운동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한다.”고 하여 소비자의 권리를 보장한다. 따라서 상품이나 용역의 상세한 내용과 정보를 알 권리, 그러한 정보의 제공을 요구할 권리, 상품이나 용역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권리 등은 소비자가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 그러므로 상품에 대한 표시나 광고, 사용 설명서 등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쉽고 정확한 한국어와 한글로 적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고통과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누구나 자기 뜻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자기 뜻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법과 제도, 행정, 사회관계가 자신을 어떻게 규제하는지, 또는 해결의 실마리를 주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러한 정보에 접근했을 때 그것이 모르는 말투성이라면 말짱 도루묵 아니겠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바른 말, 고운 말’ 사용에 머무른 채, 언어를 사람의 권리와 연결지어 생각하는 데에 너무나도 인색하였다. 이는 특히 국민의 생명과 재산, 권리와 의무, 정치 참여 등 삶의 질을 좌우하는 공공언어 영역에서 충족되어야 하는 문제다.


3. 공공언어와 삶의 질

 

오늘날처럼 국가를 비롯한 공공 영역이 개인의 삶에 매우 크게 영향을 미치는 시대에는 공공언어 분야에서 시민의 알 권리를 지키려는 노력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공공언어란 공공 영역에서 사용하는 언어라고 간단히 정의할 수 있지만, 여기서 공공 영역이 단지 정부나 법원과 같은 공적 기관의 업무 영역만 뜻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공사 구분보다 훨씬 큰 틀에서, 즉 사회의 큰 틀에서 활동 주체를 공적 주체와 사적 주체로 나눌 때 이들이 두루 만나는 영역이 바로 공공 영역이다. 이 공공 영역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바로 공공언어인 것이다.

 

정부나 국회의원처럼 공익을 목적으로 주로 국민의 세금이나 기금, 후원금 등을 사용하여 일하는 조직 및 개인의 활동 영역을 공적 영역이라 부른다면 사적 영역은 가정이나 동무들 모임, 기업처럼 개인의 생존과 이익, 사교와 욕구 충족을 꾀하는 영역이라고 가를 수 있겠다. 그런데 이 두 영역이 아주 순수한 형태로 나뉘어 따로 존재하고 작동하는 경우란 그리 많지 않다. 예를 들어 가습기 살균제와 살충제 달걀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기업의 영업 행위가 절대 사적 영역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소비자인 국민의 보건과 생활에도 두루 영향을 미친다. 학교와 병원처럼 애초에 두 영역의 성격이 섞인 곳도 있지만, 공공기관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민원인을 만날 때, 방송과 신문에서 정부의 정책과 국민의 반응을 보도할 때, 기업의 영업 활동이 소비자의 구매와 소비로 이어질 때처럼 각 주체가 서로 관계를 맺는 유형, 무형의 영역이 있는 것이다. 여기가 바로 공공 영역이다.

 

가로등을 떠올려보자. 가로등은 지방정부에서 세금을 들여 설치하고 관리하지만, 정부 관계자가 아닌 그 지역 주민과 그 불빛 아래를 지나가는 다른 지역 사람까지 공중이 사용하는 시설이다. 어느 개인이 독점하여 소유하거나 사용하지는 않는다. 이처럼 공중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물건이나 시설을 공공재라고 하는데, 여기서 ‘공공’이란 사전의 뜻으로는 ‘국가나 사회의 구성원에게 두루 관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공 영역이란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두루 교류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유형, 무형의 공간을 뜻한다. 그런데 정부가 공공 영역의 주요한 구성원이긴 해도 오직 정부만이 공공 영역의 주체인 것은 아니다. 정부에서 설치하는 가로등뿐만 아니라 도심의 건물이나 대형 상가, 골목의 가게, 아파트 단지, 개인 주택 처마에 달아놓은 전등도 함께 밤을 밝히며 행인들에게 두루 빛을 뿌린다. 비록 세금으로 유지하지는 않더라도 이 전등들도 밤거리의 각종 위험에서 행인을 지켜준다. 불빛의 조도나 수량 차이는 있을지라도 정부에서 세운 가로등과 민간에서 매단 전등이 내는 불빛 모두가 이루어내는 밝음이 바로 공공 영역인 셈이다.

 

공공언어란 바로 이 공공 영역에서 국가나 사회의 구성원에게 두루 사용되는 언어로서 주로 구성원들의 사회적 삶과 활동에 적용되는 규정과 정보, 지식을 다룬다. 이런 언어를 분야에 따라 여섯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정치와 공론장에서 사용하는 정치 언어, 행정과 법률 등 정부 및 공공기관의 업무에 사용하는 공무 언어, 신문이나 방송에서 사용하는 언론 언어, 기업과 개인이 경제 활동에 사용하는 살림 언어, 학자와 전문가가 쓰는 전문 언어, 교육기관에서 사용하는 교육 언어 들이다. 이 가운데 교육 언어는 많은 사람이 거르고 변화도 빠르지 않은 편이라 우리 언어 환경에서 별달리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문제는 국민의 삶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정치 언어와 공무 언어, 살림 언어이고, 전문언어 가운데 일반 국민의 생활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주로 언론을 통해 퍼지므로 결과적으로 언론 언어도 문제가 된다.

 * 국민의 정치 참여 방해하는 말, ‘패스트 트랙’ 줄여 ‘패트’까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은 공공언어가 쉽고 민주적일수록 더 넓고 자유로운 공공 영역을 얻게 된다. 공공 영역이 넓고 그곳에서 시민 개인이 자기 삶을 좌우하는 정보에 접근하기 쉽고 공론 형성에 참여하기 쉬울수록 시민들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면서 국가의 비민주적 억압과 남의 사적인 지배에 예속당하지 않고 인간의 평등한 존엄을 누리며 살아갈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공공 영역은 모든 시민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이곳으로 통하는 문과 길이 바로 공공언어다.

법과 제도와 정책을 쉽게 알려주는 언어, 나의 의견과 남의 의견에서 문턱이 없는 언어, 내가 공론 형성에 참여하려 할 때 이미 표방된 남의 의견에 주눅이 들지 않아도 되는 언어, 돈이 없거나 학력이 떨어진다는 따위의 비겁한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언어, 편견을 고집하지 않는 언어. 이런 공공 언어야말로 한 사람의 나약한 시민을 국가의 진정한 주인 자리에 앉혀주는 것이다.

 

공동체의 모든 성원이 만나는 공공영역의 언어는 시민들 모두를 같은 자격을 갖춘 인격체로 보는 관점에서 사용되어야 한다. 국제인권규약 2조 1항에서는 “이 규약의 각 당사국은 자국의 영토 안에 있으며, 그 관할권 아래에 있는 모든 개인에 대하여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그 밖의 의견,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그 밖의 신분 등에 따른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없이 이 규약에서 인정하는 권리들을 존중하고 확보할 것을 약속한다.”고 규정하였다. 여기서 ‘언어’에 따른 차별은 다중 언어 국가에서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단일 언어 국가에서도 학력이나 외국어 능력의 차이에서 비롯하는 언어 차별이 일어날 수 있고, 그 밖의 모든 차별이 언어로 표현된다. 공공언어는 알기 쉽고 분명해야 하며, 공동체의 다른 성원을 차별하거나 배제하거나 비방하는 말이어서는 곤란하다.

 

이렇듯 개인의 언어 품격이나 국어 지식을 높이는 일보다 국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영역이 있음에도 우리의 국가는 여기서 그다지 잘해오지 못했다. 언어에 관한 한 국가는 공공언어 영역을 책임져야 한다.


4. 국내외 쉬운 공공언어 사용의 흐름

 

영국에서는 1979년부터 ‘쉬운 영어 운동(Plain English Campaign)’라는 시민단체가 만들어져 정부의 각종 공문서에서 어려운 용어와 문장을 쉽고 분명한 말로 바꾸도록 요구하였다. 영국 정부에서 이 요구를 받아들여 정부 공문서와 민원 서식 등을 쉬운 영어로 바꾸었고, 1999년부터 민법 제도를 쉬운 영어로 개정하였다. 이 운동은 보험, 금융, 제조업 등 민간 기업으로도 퍼져 상품 설명서와 약관 등에 적용되었따. 유럽연합에서도 영국의 쉬운 영어 운동을 받아들여 1995년에 의약품 사용 설명서와 계약서를 쉬운 말로 작성하도록 권고하는 명령을 회원국에 선포하였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연방 공무원들 사이에서 행정용어를 쉽고 명확한 말로 바꾸자는 움직임이 일어나 2010년에 오바마 대통령은 ‘공문서 쉽게 쓰기 법안(Plain Writing Act)’을 제정하였고, 2011년에 이에 따른 지침을 발표한 뒤 시행에 들어갔다.

 

공문서와 공공언어에서 쉬운 말을 사용하는 것은 주민의 알 권리를 보호하고 민원을 줄여 행정의 효율을 높이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으므로 많은 나라의 정부와 민간에서 관심을 가지고 비슷한 움직임을 보인다. 이들의 국제 연계 모임인 플레인(PLAIN: Plain Language Association International)이 활동하고 있다.(https://plainlanguagenetwork.org/) 한글문화연대는 2015년부터 플레인에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이런 국제 흐름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2012년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 이후 2013년부터 쉬운 공공언어 사용 운동이 일어나 2014년에는 정부 부처 대변인협의회에서 쉬운 공공언어 쓰기 결의를 하고 국립국어원에서 공공언어 진단 평가 등을 시작하였으며, 한글문화연대 등 시민단체에서도 정부의 어려운 공공언어를 줄이기 위한 시민운동에 힘을 모았다.

 

법률과 제도도 정비되었따. 2005년에 제정된 국어기본법에서는 공문서 쉽게 쓰기 방안으로 제14조 1항에 공문서 한글전용을 규정하였다. 2017년 3월에 국어기본법 제14조 1항이 개정되어 과거엔 단지 한글전용 표기만을 규정한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공기관 등은 공문서를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하며,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고 정하였다. 쉬운 용어를 쓰라는 법적 규정이 생긴 것이다. 공무원의 국어 사용을 책임지는 국어책임관도 모든 국가기관과 지자체에 반드시 지정하게끔 되었고, 정부 중앙 부의 전문용어표준화협의회 운영도 의무가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2월 개헌안 마련 시점과 3월 정부혁신 1차 5개년 계획 발표 당시에 어려운 법률용어와 행정용어를 쉬운 말로 바꾸라고 지시하였따.

 

그러나 이런 노력이 있었음에도 공공언어가 빠르게 개선되지는 않는 실정이다. 한글문화연대에서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7년 동안 매년 석 달 치 중앙정부 보도자료 3천여 건을 분석하여 한글전용 위반 사례와 어려운 용어 사용(주로 외국어 남용) 사례를 조사하였는데, 한글전용 위반은 보도자료 하나에 평균 2~3회, 외국어 남용은 평균 6회 이상으로 나타났고, 7년 내내 줄지 않는 추세이다. 2019년 1월부터 한글문화연대에서는 날마다 정부 18개 부의 모든 보도자료를 조사하고 있는바,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한글전용을 잘 지키는 보도자료가 47%로, 채 절반이 되지 않았다. 상담 결과, 대다수 공무원이 국어기본법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5. 문제는 영어 남용

 

우리나라의 공공언어를 살펴보면, 문장을 좀 더 분명하고 우리말답게 써야 하는 과제가 있기는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문제는 역시 어려운 용어의 사용이다. 1990년대까지는 일본에서 건너온 한자어가 주로 문제였고 요즘은 외국어, 특히 영어 남용이 문제다.

 

우리나라에서 행정과 정책을 다루는 공공용어는 일제 강점 이전부터 법률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일본이 번역한 서구의 개념과 용어를 들여다 쓴 탓에 온통 일본식 한자어 투성이였따. 이는 불가피했지만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해방 뒤 우리말을 도로 찾으려는 노력 덕에 일본어 찌꺼기를 많이 버리긴 했어도, 주요한 개념과 용어에서 모든 일본식 한자어를 버릴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지난 70년 동안 민사소송법을 개정하고 수많은 법률용어와 행정용어를 순화하는 등 낯설고 어려운 일본식 한자어를 고치는 노력이 꾸준히 이어졌다. 그리하여 1990년대 중반에 문자 표기에서도 한글전용이 정착하면서 사회적 소통의 장벽이 낮아질 가능성이 열렸다.

 

그러나 이 무렵부터 세계화 흐름 탓에 영어 교육 열풍이 일고 영어 남용 풍조가 거세어졌다. 곧 정부와 국민의 소통에서도 영어 낱말이 마구 늘어나 어려움이 커졌다. 2018년만 해도 ‘스튜어드십 코드, 규제 샌드 박스, 워라밸, 제로 페이, 커뮤니티 케어’ 따위 정부 정책과 행정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들이 영어로 표현되고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전달되었다.

 * 복지 정책의 내용을 알아채기 어려운 말, ‘커뮤니티 케어’

 

한국이 세계 11위 규모의 무역 대국인데다, 인터넷과 방송을 통해 전 세계의 문물이 빠르게 들고나는 요즘에 영어 낱말을 사용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예삿일처럼 되어 버렸다. 심지어 공무원들 가운데에서도 영어를 사용하여 업무의 차별성을 드러내고 성과를 높이려는 상술 차원의 심성이 널리 퍼져 있다. 게다가 외국에서 들어오는 전문용어와 신조어를 우리말로 바꿔낼 만한 사회적 협의 체계가 몹시 취약하다보니 외국어로 된 신조어를 그냥 쓰는 일이 점점 늘어난다. 하지만 사적인 대화가 아니라 공적인 소통에 사용하는 공공언어는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삼으므로 어떻게든 쉬운 우리말로 써야 한다.

 

정부 공문서와 정책 용어에서 외국어를 남용한다함은 대한민국의 공용어인 우리말 한국어를 대한민국의 공무원이 제대로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 헌법 9조에서 정한 민족 문화 계승의 책임을 국가가 다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국제 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버젓한  주권 국가의 언어 주권을 국가 스스로 책임지지 않음으로써 주권을 포기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셈이다.

 

이처럼 방어적인 차원에서 국가의 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최소한의 의무로 정부 공무원의 국어 사용을 바라볼 수도 있지만, 국가가 국민의 행복을 꽃피우는 터전을 일궈야 한다는 적극적 차원에서 공무원의 국어 사용을 바라볼 수도 있따. 단지 우리 민족의 것이기에 우리말과 한글을 써야 하는 게 아니라 나라를 민주적으로 꾸려가고 국민의 알 권리와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 국민과 소통하기 좋은 말을 써야 하는 것이다. 즉, 공무원의 국어 사용이 국가의 궁극적이면서도 직접적인 목적인 ‘국민 행복’에 맞닿아 있으므로 일반 국민이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국제화 시대’ 어쩌구 하는 의미 없는 미사여구로 공공언어에서 외국어 남용을 옹호하려는 태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앞서도 밝혔듯이, 국어기본법 제14조 1항에서는 “공공기관 등은 공문서를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하며,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일반 국민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공공언어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첫걸음이며 정책의 효과를 높이고 민원을 줄여 행정 효율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또한 외국어나 낯선 일본식 한자어 대신 쉬운 우리말을 사용하려는 분위기를 세움으로써 국어 감수성을 높이고 국어 자원을 늘려 국어를 진흥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물론, 어려운 말과 쉬운 말의 경계는 분명하지 않다. 읽고 듣는 이의 학력과 외국어 능력, 독서량, 전문지식의 양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모든 말을 다 쉽게 바꿀 수도 없다. 분명 한게가 있지만, 그래도 좀 더 쉬운 말이 있다면 어려운 말을 쉬운 말로 바꾸고, 쉬운대안어가 없는 말은 어휘 교육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대안어가 없는 외국어 낱말일지라도 새롭게 대안어를 만들어 사용하려는 노력을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 ‘네티즌’이 ‘누리꾼’으로, ‘홈페이지’가 ‘누리집’으로 서서히 바뀌는 과정을 우리는 이미 지켜보았다.

 

어려운 영어는 정보 전달에 문제를 일으키지만 쉬운 영어는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는 공무원도 있을 수 있다. 사실, ‘스쿨, 그린, 푸드, 존’ 등은 모두 현재 초등 영어 교과서에 나오는 낱말이므로, 그 말을 사용한 공무원 입장에서는 매우 쉬운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영어를 아는 사람들 이야기일 뿐이다. 현직 공무원들 스스로 자기 부모가 영어를 얼마나 아는지 생각해보길 권한다.

 

영어는 쉬운 대안어, 즉 우리말이 있는 경우엔 모두 우리말로 바꾸어야 한다. 한국어 어려운 말은 한국어 사용자들 사이에서 이해될 가능성이 있지만, 외국어는 평소에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의미 이해의 가능성이 매우 낮다. 아예 영어를 배우지 않은 사람도 많고 배웠더라도 사용하지 않아 까먹었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럼에도 학력과 학벌에 따라 서열이 매겨지는 대한민국에서 영어가 자주 학력의 계급장 노릇을 하므로 사람들은 자신이 영어를 잘 모른다는 사정을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공언어에서 영어를 남용하면 그만큼 소통의 장벽이 생기는 것이고, 외국어 능력에 따라 국민을 차별하는 결과를 부를 위험이 있다.

 

쉬운 말은 고운 말이나 바른말 이전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언어의 가치다.  언어는 인권이다.

<끝>

(* 글의 2장과 3장은 이건범의 단행본 《언어는 인권이다》에서 가져와 손질해 실었음을 밝힌다.)

 

<참고 문헌>
김미경, 《Plain English 쉬운 영어》, 2009, 도서출판 써네스트
로드니 외, 《쉬운 언어 정책과 자국어 보호 정책의 만남》, 2013, 도서출판 피어나
이건범, 《언어는 인권이다》, 2017, 도서출판 피어나
장후석 외, 〈공공언어개선의 정책 효과 분석〉, 2010, 국립국어원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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