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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아, 그 말이 그렇구나(성기지)

보로, 보루, 보시

by 한글문화연대 2020. 4. 8.

[아, 그 말이 그렇구나-330] 성기지 운영위원


일본말 ‘보로(ぼろ)’는 ‘걸레’나 ‘넝마’, ‘누더기’ 따위를 이른다. 그래서 이 말은 일본에서 본디의 뜻 외에 ‘허술한 데, 결점’의 의미로도 쓰인다. 그래서일까, 이 말이 우리말에 들어와 ‘보로터지다’ 또는 ‘뽀록나다’로 모습이 바뀐 채 쓰이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가 하면, 당구 용어 가운데 요행수를 일컫는 ‘뽀록’이 있다. 일터에서 우연하게 성과를 냈을 경우에도 ‘뽀록’이라고 한다. 모두 영어 ‘fluke’의 일본식 발음 ‘후루꾸(フルク)’가 ‘뽀록’으로 변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일본말 잔재임이 분명하다. 국립국어원은 이미 이 말을 ‘드러나다’, 또는 ‘들통나다’로 다듬어 놓았다.


‘담배 한 보루’라고 할 때의 ‘보루’는, 두꺼운 마분지를 뜻하는 영어 ‘board’가 일본말화한 것이라 한다. 일본사람들은 ‘board’를 ‘보루도(ボルド)’라고 발음하는데, 이를 다시 ‘보루’로 줄여서 말하는 것을 우리가 그대로 따라 써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찌감치 이 말을 우리말 ‘포’로 다듬어 놓았다. 그러므로 ‘담배 한 보루’는 ‘담배 한 포’로 말하면 된다.


‘기라기라(ぎらぎら)’라는 일본말이 있는데, 우리말로는 ‘반짝반짝’으로 옮길 수 있다. 또, ‘별 성(星)’ 자가 일본말로는 ‘호시(ほし)’이기 때문에, 그네들은 ‘반짝이는 별’을 ‘기라보시(きらぼし)’라고 한다. 이 말을 우리가 별 생각 없이 ‘기라성’이라고 옮겨 쓰고 있는 것이다. ‘기라성 같은 각국 정상들’을 ‘쟁쟁한 각국 정상들’로 고쳐 쓰듯, 문맥에 따라 ‘쟁쟁한’, ‘내로라하는’ 같은 우리말로 다듬어 쓰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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