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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경향신문) [문화와 삶]초등학생 좀 그만 괴롭히자2013.07.04

by 한글문화연대 2013. 7. 4.

[문화와 삶]초등학생 좀 그만 괴롭히자/ 경향신문.2013.07.04.목

이건범(작가·한글문화연대 대표)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7032144155&code=990100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이 초등학교 한자 교육 강화를 특색사업으로 벌이겠단다. 처음엔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한자 수업을 강제로 배정하겠다더니 이젠 한발 물러섰다. 재능기부 강사를 모아 방과후에 원하는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교과서에 나오는 한자어 낱말 뜻을 이해시켜줄 목적으로 학교 자율에 맡겨 시행하겠노라고 한다. 이렇게 훌륭한 명분을 내건 사업에 욕을 해대면 나만 나쁜 놈처럼 보이리라.

 

그런데 사정을 알고 보면 그리 간단하지 않다. 문용린 교육감은 예전부터 한자 혼용, 즉 한자어 낱말은 다 한자로 써야 한다는 주장에 강하게 동조해온 분이다.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주인공처럼 문 교육감의 속마음을 읽어보면 이렇다.

 

‘교과서 한자 혼용이 당장은 어렵지만 그런 화제들을 계속 뿌려대면서 한자의 필요성을 학부모와 국민에게 세뇌시킨 뒤 초등학교에서 한자 과목을 신설하거나 국어시간에 한자 교육을 시키도록 추진해야겠어. 일단 규정이 물렁한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장악해 영향력을 높여가자. 한데 올 2학기 시간표가 꽉 찼다니, 젠장, 내년으로 미루고 일단 방과후 활동에라도 집어넣자. 국어 능력 향상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우회로를 트자. 일부 언론 중심으로 한자 교육 수요를 부풀리는 말이 퍼지면 이를 여론화해 내년부터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한자를 강화한다. 교육감에 재선되면 초등교육과정에 한자 과목 신설을 적극 추진하자.’

 

난 이렇게 들린다. 자, 우리 나이로 스무 살부터 쉰한 살까지의 성인은 한번 곰곰이 되돌아보자. 하루에, 아니 한 달에 한글이 아닌 한자를 몇 글자나 적는지. 또 하나, 자주 듣고 읽고 말하는 낱말 가운데 한자로 적을 수 있는 낱말은 얼마나 될지도 헤아려 보자. 끝으로 단지 한자 표기를 몰라 뜻을 이해할 수 없던 말이 있었는지 떠올려보자.

 

나는 글 쓰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1년에 단 한 번도 한자를 쓰지 않은 해가 여럿 된다. 내가 한자로 적을 수 있는 낱말이 얼마나 될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요즘 많이 사용하는 말 가운데 손에 꼽히는 말인데도, 나는 ‘배려’라는 말을 한자로 쓸 줄 모른다. 한자를 몰라서 뜻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말은 거의 없었다. 반대로 ‘인문’은 한자가 쉬워 적을 줄 알지만 그 뜻을 남에게 설명해줄 자신은 없다. ‘인문’의 개념을 잘 몰라서 그런 거다.

 

우리 나이 스무 살부터 쉰한 살. 이 나이 성인들이 초등학교에서 공식적으로 한자 교육을 받지 않고 한글 전용 교과서로 공부한 세대다. 1970년부터 초등학교에서 한글 전용이 시작됐고, 71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간 나는 중학교 때부터 한문을 공부했다. 대학 가서도 한자 그득한 신문 읽기가 어려웠지만, 한자가 없는 요즘 신문이나 책을 읽으면서 낱말 뜻을 몰라 당황하는 일은 없다. 난 시각장애인이라 글자를 읽지 못하고 소리로 바꾸어 듣는데도 말이다. 책을 읽지 않는 세태가 문제이지 한자 몰라 책을 이해하지 못하는 ‘문맹’이 있겠는가? 정 어려운 낱말은 인터넷 사전을 찾아보면 되는 시대에.

 

학교에서 뭔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면 곧 사교육이 극성을 부리는 건 상식이다. 초등 2학년 교과서에 ‘배려’라는 말이 나온다. 어른들은 한자로 어찌 쓰는지 아는 사람이 드물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걸 쓸 줄 알아야 한단다. 2011년 현재 5인 이상 사업장에 근무하는 근로자의 1주당 평균 근로 시간은 41.9시간이다. 2009년 통계청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1주일간 학습 시간은 44시간이다. 그리고 대학생은 26시간이다. 무한정 물을 빨아들이는 요술 스펀지는 없다. 한자 공부는 학부모 세대가 그랬듯이, 지금도 그러하듯이 중학교에 가서 해도 되고, 더 필요하다면 대학에 가서 하면 된다. 초등학생 좀 그만 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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