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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조선일보) [발언대] 한자 이전에 국어 낱말 교육부터 살피자2013.07.04.

by 한글문화연대 2013. 7. 4.

[발언대] 漢字 이전에 국어 낱말 교육부터 살피자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03/2013070303838.html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이 초등학교 한자 교육 강화를 들고 나왔다. 문 교육감은 예전부터 한자 혼용에 강하게 동조해왔다. 한글로만 적는 신문과 인터넷에서 아무런 혼란도 겪지 않는 일반인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라 걱정이다.

 

초등학교에서 한자 교육 강화 정책을 펴는 순간 두 가지 결과는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나는 암기 평가 위주의 공부 부담을 얹어 아이들을 더 지치게 만들고, 다른 하나는 영어 교육 사례에서 보듯 학교에서 한자를 강조하는 순간 사교육이 번성한다는 점이다.

 

한자 교육 요구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등에서 일관되게 주장해온 '한자 혼용'이다. 한자어 낱말은 오로지 한자로 표기해야만 뜻을 알 수 있다는 입장이니 한자 교육 주장이 뒤따른다. 다른 하나는 교과서에 나오는 한자어 낱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자 공부가 필요하다는 관점이다. 학부모나 교사 가운데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서울시교육감의 계획은 사실상 '한자 혼용'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명분은 '한자어 낱말의 이해'로 포장되어 있다. 신문 기사 제목조차 읽기 어려웠던 이삼십년 전으로 문자 표기를 되돌리자는 호들갑에 학부모는 불안하고 사교육은 춤을 춘다. 한자 교육 주장에서 그나마 취할 것은 한자로 구성된 추상적인 개념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치면 좋겠냐는 건강한 고민이다. 가능하지도 않은 국한문 혼용이니 한자 병기니 하는 표기의 문제가 아니라 낱말 교육의 문제다.

 

초등교사들은 교육과정에서 너무 많은 지식 전달을 요구해 개념을 제대로 이해시킬 여유가 없다는 것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는다. 어려운 한자어를 너무 많이 싣고 있는 교과서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초등 교육에서 낱말은 어떻게 선택하고, 초등과 중등·대학 교육에서는 어찌 달리 가르쳐야 하며, 실제는 어떤지 먼저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단순 대응 논리는 부작용만 부른다. 설마 초등학교 2학년에 나오는 '배려'의 뜻을 가르치자고 어른들은 쓸 줄도 모르는 한자를 가르쳐야 한단 말인가?

 

어원 지식이 없더라도 말의 뜻은 맥락을 통해 이해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너머로 더 나아가기 위해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영어가 우리 문화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상황에서 한자어건 토박이말이건 낱말의 올바른 교육 방법을 세워 국어 생활을 풍부하게 가꿔야 한다는 큰 과제를 먼저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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