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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한'국어가 아니라 '만'국어? - 김성아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20. 12. 21.

'한'국어가 아니라 '만'국어?

부제: 타슈켄트에서 발견한 한국어 공부 열풍, 성균한글백일장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7기 김성아 기자

ryuk67@naver.com


 코로나19는 만남의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사람도, 지식도, 예술도 누리망(인터넷)을 통해서야만 만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오죽하면 대학교 새내기들 사이에선 온라인 미팅이라도 하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성균한글백일장’도 물론 예외는 아니었다. 11월 21일과 28일에 열린 백일장은 국적, 나이, 취미도 다른 ‘한국어 덕후’들을 한데 모으는 구심점이 되었지만 비대면으로 진행되어 참여자 개개인의 시시콜콜한 사연을 수집하긴 어려웠다.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1988이 제일 재밌었다는 데미렐(23세, 터키) 씨, 송송 커플 이혼 소식을 부정(?)하는 우미드(22세, 우즈베키스탄) 씨… 한류 지식을 뽐내던 이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경쟁자들 사이에 이야기꽃이 피어오르던 진풍경을 되찾기 위해 제11회 중앙아시아 백일장이 열린 2019년 9월로 시간을 돌렸다.


성균한글백일장의 탄생

  성균한글백일장은 2007년 중국에서 열린 첫 대회를 시작으로 8개 나라에서 35번 개최됐다. 한국도 아닌 중국, 동남아시아, 유럽 등지에서 한글 백일장을 여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성균관대 한문학과 이명학 교수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 교수가 2007년 중국에 방문했을 때, 무려 50개 대학에서 6,000여 명의 학생이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한국어에 관심을 가진 계기를 물으니 대부분 한국 드라마나 가요를 접하고 관심이 생겨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교수는 그것만으로 언어 공부를 지속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대중문화를 통한 언어 공부는 감각적이지만, 깊이가 얕으며 일회성으로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글백일장’을 떠올렸다. 글쓰기를 하면서 한국어 학습을 지속할 동기를 줄 수 있다면? 잘하면 세계 곳곳에 지한파를 육성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된 성균한글백일장에서는 지금까지 모두 99명의 수상자가 나왔다. 수상자에겐 성균관대학교 ‘석사과정 등록금 전액 면제’라는 혜택이 주어지기에, 많은 학생들이 열의를 가지고 참가한다.


다양한 사연의 참가자들

  제11회 중앙아시아 백일장이 열리는 롯데시티호텔 타슈켄트 팰리스. 로비에는 개최국인 우즈베키스탄뿐만 아니라 동유럽 출신 학생들도 8명이나 있었다. 이들에게는 한국어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백일장에 참여한 동기에 관해서는 각자 다른 사연을 풀어놓았다.

  큐브라 데미렐(23세, 터키) 씨의 할아버지는 한국전 참전 용사였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한국전 관련 행사에 참여할 기회가 많았는데, 할아버지에게 감사를 전하는 한국인들을 보며 크게 감동하였다고 한다.

  아킴조노브 우미드(22세, 우즈베키스탄) 씨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한국 뉴스를 찾아볼 정도로 열렬하게 한국을 ‘덕질’한다. 그는 응답하라 시리즈, 태양의 후예 등 한국 드라마를 줄줄 꿰고 있었다. 한국사에도 관심이 많아서 광화문과 경복궁, 경주에 있는 유적지들을 둘러보는 게 소원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우승한 기세로 백일장까지 접수하겠다는 백미르자예프 아젬(19세, 우즈베키스탄) 씨, 인솔 교사도 없이 혼자서 5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왔다는 호지마토바 샤흐노자(19세, 우즈베키스탄) 씨, 중앙아시아 최초의 한글 교육 기관인 세종학당에 다니며 백일장을 준비했다는 본국 학생들 등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백일장에 참석했다,


백일장 진행 과정과 글제

  주어진 시간은 두 시간. 참가자들이 500자 원고지 사용법을 지켜 글제에 맞게 산문을 써내면, 글제와의 연관성, 어휘력, 맞춤법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제11회 중앙아시아 백일장에서는 ‘만약’이라는 글제가 나왔다. ‘만약’이라는 말은 이를 제목으로 한 노래도 있을 정도로 자주 쓰인다. 하지만 일상적인 만큼 색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기는 힘들다. 대회 참여자들도 같은 어려움을 겪었다. 모두가 고심하여 ‘만약’의 의미, 쓰임, 말맛, 그리고 관련 일화까지 풀어냈지만 다소 천편일률적이라는 심사평이 있었다.


수상작품


▲ 금상을 받은 호지마토바 샤흐노자(19세, 우즈베키스탄) 씨의 글 3쪽 중 1쪽


  호지마토바 샤흐노자 씨는 고등학생임에도 쟁쟁한 대학생 후보들을 제치고 ‘금상’에 뽑혔다. 그녀는 ‘만약’의 다채로운 말맛을 파악하고, 이를 발화자의 삶의 태도와 연관시켜 글을 전개했다. 누군가에겐 과거에 남긴 후회로, 누군가에겐 미래를 향한 희망으로, 누군가에게는 요란하기만 한 빈 수레로 남을 ‘만약’이란 두 글자. 사물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시각과 따뜻한 주제가 돋보인다. 심사위원장 김경훤 교수는 샤흐노자 씨의 글을 금상으로 선정한 이유로 "만약이라는 글제에 적합한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전개했다"라며 "수준 높은 어휘력을 바탕으로 은유와 속담을 적재적소에 활용했다"라고 말했다.

  샤흐노자 씨는 겸손한 태도로 수상소감을 밝혔다. "한국어를 잘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상을 받을지 몰랐는데 금상을 받아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 제 글을 높이 평가해주신 심사위원께 감사드리고,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라고 전했다.

  샤흐노자 씨의 전문은 성균한글백일장 누리집에 올라와 있다. 은상과 동상 작품, 그리고 다른 회차의 수상작들도 누리집에서 볼 수 있다.  ( 전문 보러 가기> )



  코로나19는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제 아무리 코로나라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을 없앨 수는 없다. 지한파 꿈나무들은 아직도 ‘응팔 시리즈’를 돌려보고, 신라 유적지의 안부를 궁금해 하고, 한국어로 글을 쓴다. 성균한글백일장은 이들에게 한국어 학습을 지속할 동기를 주고 실력을 뽐낼 수 있는 장을 열어준다. 다른 문화권에 있는 그들을 마주해 이야기를 들어줄 순 없어도, 열정이 변치 않도록 응원할 순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한국에 갈 수 있다면…’, ‘콘서트에서 방탄소년단 지민을 볼 수 있다면….’ 한국어를 공부하는 모든 이들에게 ‘만약’이라는 단어가 의지의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 코로나 시대 너머로 펼쳐진 당신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기에.






<자료>

- 배수강, “‘성균한글백일장 10여 년의 기록’ 펴낸 이명학 교수”, <신동아>, 2019.05.19., https://shindonga.donga.com/3/all/13/1731671/1, 2020.11.20.

- 정성욱, “성균관대, '2019 유라시아 성균한글백일장' 개최”, <중부일보>, 2019.09.09., http://www.joongboo.com/news/articleView.html?idxno=1386176, 2020.11.30.

- 성균관대, “‘제10회 중앙아시아 성균한글백일장’ 개최”, 2018.10.24., https://blog.naver.com/good7101910/221384112467, 2020.11.24

- 다큐멘터리 3일 - 성균관대 한글백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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