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사랑한 외국인, 호머 헐버트


한글문화연대 대학생기자단 7기 백승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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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띄어쓰기는 단어와 단어 사이를 띄어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국어 문법이다. 글을 단어별로 나누기 때문에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편리하며, 쉽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처음으로 체계적인 띄어쓰기를 도입한 독립신문에서는 ‘보기 쉽게, 자세히 알아보기 쉽게’라고 띄어쓰기의 이유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띄어쓰기는 1800년대 도입되었는데, 광무 3년(1899)에 발행된 황성신문과 독립신문을 비교해 보면 띄어쓰기로 우리글이 얼마나 읽기 편해졌는지 바로 느낄 수 있다. 두 신문 모두 오른쪽 위에서부터 읽는 형식이라 지금의 읽기 방법과 달라 어색하지만, 띄어쓰기가 사용된 독립신문을 읽을 때 단어의 의미를 알기 쉽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띄어쓰기를 쓰고 대중화한 데는 호머 헐버트라는 외국인과 주시경 선생님의 영향이 매우 컸다. 다른 나라 언어의 문법에 크게 기여한 호머 헐버트라는 인물은 누구일까?


           

▲ 황성신문, 독립신문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우리 교육과 호머 헐버트

 호머 헐버트는 우리나라에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 우리나라의 언어나 교육, 독립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1800년대 후반 우리나라는 정치가 불안정하고, 일제의 압박이 강해지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알렌 등 다양한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오고 교육에 기여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설립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나 호러스 뉴튼 알렌 등이 있으며, 호머 헐버트 역시 이 시기를 전후하여 육영공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우리나라에 입국하였다. 그는 육영공원뿐만 아니라 연희전문학교의 특임 교사로 활동하거나, 세계지리서를 한글로 번역해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지리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사민필지(士民必知』를 제작하기도 하는 등 조선인 교육에 이바지하였다.


 그의 노력은 교육뿐만 아니라 그 당시 우리나라 생활 전반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호머 헐버트는 우리나라의 시조와 시가를 연구하고 번역하였으며, 한국사 연구를 통해 많은 업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를 연구한 그는 연구 결과물을 바탕으로 조선을 홍보할 수 있는 다양한 간행물을 제작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자료로 이전까지는 구전되던 아리랑을 최초로 채보한 악보이다.


▲ 호머 헐버트가 채보한 최초의 아리랑 악보. (출처: 매일신문)


 또한 ‘푸른 눈의 조선인’이라고 불렸던 만큼 우리나라의 독립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독립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하기도 하였다. 호머 헐버트는 헤이그 특사 파견을 돕는 등 독립을 위해 노력해 고종으로부터 ‘특별 위원’이라는 직책을 받는다. 또한 헐버트는 서방의 여러 국가에 을사늑약의 무효를 알리는 친서를 전달하라는 명령을 받아 ‘헤이그 마지막 밀사’라고도 불렸다. 한국의 독립을 돕기 위해 그는 서방 국가와의 외교 문제에도 노력을 기울였으며 조선의 독립과 발전에 대한 상당한 기대와 애착을 보였다. 결국 1949년 사망한 그는 조선의 개화기부터 시작해 염원하던 해방까지 경험하였다. 한국에 대한 애착이 큰 만큼 영미권 위인들이 묻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아닌 한국에 묻히기를 바라 현재 서울 양화진에 그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푸른 눈의 조선인’, 띄어쓰기를 널리 널리 

 호머 헐버트의 띄어쓰기 도입 이전에도 ‘띄어 쓴다’는 개념 자체는 존재했다. 1877년 영국 목사 존 로스는 조선어를 가르치기 위해 만든 ‘조선어첫걸음’(『A Corean Primer』)에서 띄어쓰기를 사용하였으며, 박영효의 『사화기략』(1882)과 『한성주보』(1886)에서는 불규칙적으로 구절이나 문장 단위로 띄어 표기하였다. 하지만 산발적이고 정리되지 않아 오히려 읽는 사람에게 더 혼란을 가져올 뿐이었다. 그래서 호머 헐버트는 주시경 선생, 서재필 선생 등과 함께 한글 연구를 진행하였고, 1896년 독립신문에서 체계적이고 본격적인 '띄어쓰기'와 '점찍기(쉼표, 마침표)'를 도입해 사람들이 우리글을 읽고 쓰는 데 편리하게 만들었다. 또한 여기에서 연구를 그치지 않고 고종에게 국문연구소를 만들도록 건의하는 등 한글 교육에 열의를 보였다. 이러한 그의 활동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루어졌다. 1903년 미국 스미스소니언 협회 연례보고서에 '훈민정음'이라는 영문 논문을 기고해 '한글이 영어보다 대중이 의사소통을 하는 매개체로 더욱 훌륭하다'며 해외에 한글의 우수성을 홍보하기도 하였다. 호머 헐버트와 다른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우리 문법이 조금 더 체계적으로 바뀌었고, 이러한 공로로 국민들에게 ‘한글의 큰 스승’ 중 하나로 선정되어 국립한글박물관에서는 2019년 9월 30일부터 2020년 3월 8일까지 <한글의 큰 스승> 특별전시회를 열기도 하였다. 


 호머 헐버트는 조선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까지를 경험한 한국 역사의 산 증인으로, 조선에 강한 애착심을 가지고 한국의 해방과 교육에 기여한 인물이다. 호머 헐버트의 노력으로 우리는 더 많은 문화를 발전시키고, 이를 해외로 알릴 수 있었다. 띄어쓰기와 같은 문법뿐만 아니더라도, 다양한 분야에서 그는 우리나라 문화를 적극적으로 연구해 현재의 우리 삶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한 문화는 그 국가 자신만의 것이 아니며, 다양한 사람들의 애정과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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