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한글은 전 국민 비밀 문자?!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8기 김규리 기자

kyu0814ri@naver.com

 

 

1443(세종 25) 창제된 한글은 우리나라 고유의 문자로,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라고 평가받는다. 훈민정음해례본은 한글을 창제한 사람과 창제한 연원, 창제 목적을 뚜렷하게 밝히고 있기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하였다. 109일 한글날을 맞이하여 이러한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고 그에 깃든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되새김으로써 한글을 더욱 소중히 사용하자는 의미에서 이번 기사를 기획했다. 조선 시대 한글이 백성들 사이에서 널리 쓰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보면 지배층 또한 한글을 중요한 글자로 생각하고 활용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왕과 신하들은 한글을 이른바 전 국민 비밀 문자로 생각하였는데 이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건 두 가지를 조선왕조실록에서 발췌해 살펴볼 것이다.

 

 

군사 기밀 문서를 한글로!

 

신이 그윽이 생각하건대 <총통등록>은 병가의 비장이 되는 서적으로서, 세조조에 최산해와 신의 장인 변상근이 각기 한 건씩 받아서 오로지 화포에 대한 일을 전적으로 관장하게 하였는데, 지난 병진년에 이 책들을 모두 대내로 거두어 들이게 하였음은 참으로 주밀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춘추관에 한 건이 있고 문무루에 21건이 있는데, 만일 간사한 사람이 훔쳐가서 이를 삼는다면 백성들이 입는 피해를 어찌 다 말하겠습니까? 신이 원하건대 지금 이후부터 성상께서 보시는 한 건 외에는 모두 언문으로 사서하여 내외 사고에 각기 한 건씩 보관하게 하며, 해당하는 신하로 하여금 굳게 봉하도록 하고, 군기시에 한 건을 두어서 제조로 하여금 굳게 봉하도록 하고, 그 나머지 한자로 서사된 것은 모두 불태워 버려서 만세를 위하는 계책으로 삼게 하소서.”

 

성종 13213일의 기록이다. 양성지가 성종에게 상소를 올린 내용인데, 양성지는 군사 관련 기록의 개수를 늘린 것에 대해 유출을 염려하고 있다. 숫자를 줄여서 한 건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언문으로 사서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보관된 병서를 줄이고 한글로 만들자는 것이다. 심지어 다른 나라 사람이 읽지 못하도록 한문으로 쓴 것은 모두 태워버릴 것을 강력히 권고하였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한글은 우리나라 사람만 읽을 수 있으니 기밀 문서의 내용 유출을 방지하는 데 쓰였음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한글이 한국 비밀 문자로 기능한 것이다. 다음 기록은 이를 더욱 분명하게 뒷받침해준다.

 

 

중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쳐 처벌받다

 

중종실록 92, 중종 341119일에 기록된 대사성 정세호의 말이다.

 

“요동에 이르러 혼자 방에 있는데 어떤 유생이 들어와서 한글로 자기 이름은 주사이고 자는 상지라고 썼습니다. 신이, 이것이 무슨 글인가고 물으니, 달자의 글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다시, 누구한테 배웠느냐고 물었더니 ‘그대 나라의 주양우가 가르쳐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중략) 우리나라에서 숨기는 일은 작은 일이라도 누설되어 전해지면 관계되는 바가 중대하니, 중국으로 가는 사신이 북경으로 갈 때 이러한 일들을 누설함이 없도록 이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이에 대해 중종은 숨기는 일을 가벼이 누설하는 것은 지극히 잘못하는 것이다. 아뢴 대로 사신에게 이르라.”라고 답하였다. 문인 주양우가 중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친 일을 중국인 사신이 본국에 전달하지 못하도록 입단속을 시킨 것이다. 이후 조정에서는 이 일을 여러 차례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헌부가 아뢰기를,

우리나라 사람으로 중국을 왕래하는 사람들이 나랏일을 누설하는 경우가 전에도 없지 않았습니다. 만일 금하지 않는다면 뒷폐단을 예측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전적 주양우가 중국 사람에게 한글을 가르친 것은 관계되는 바가 중대하니 추국하여 엄중히 논죄하소서.”

 

주양우의 이름이 실록에 등장하는 것은 삼일 뒤였다. 사헌부의 요청에 이어 사간원 또한 입을 모아 주양우를 징계하도록 요청하자, 중종이 주양우를 추문하도록 결정하는 것으로 기록이 마무리된다.

시간이 흘러 1534(중종 38)이 되자 주양우는 판관과 더불어 승문원 교리를 겸직하게 된다. 이러한 중종의 판단에 사헌부는 지난 일을 언급하며 왕에게 주양우의 승진을 재고할 것을 요청한다.

 

군기시 판관 주양우는 지난날 북경에 갔을 때 중국 사람과 교통하여 언문을 가르쳤으니 잘못됨이 매우 심합니다. 평상시의 역관들이 국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숨기는 일을 전달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비록 적발하여 죄를 다스리지는 아니하였으나 물정이 미워하고 있는데, 주양우는 문관으로서 오히려 삼가 단속하지 아니하고 하는 짓이 이와 같으니, 급급히 승직하여야 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미천한 사람으로 승문원 교리를 겸함은 더욱 온당치 못하니, 아울러 개정하소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중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친 것을 가지고 승진하지 못하도록 간언할 정도이니, 그의 죄목이 상당히 큰 편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낱 한글을 외국인에게 가르친 것일 뿐인데 승진의 길까지 제한되다니, 주양우가 억울할 법도 했겠지만 그만큼 당시 한글이 국민 비밀 문자로서 중요한 기능을 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다.

 

 

조선왕조실록속 한글

 

 ‘ 조선왕조실록 ’ 에서  ‘ 언문 ’ 을 검색한 결과 , 912 건의 기록이 나온다 .

 

전 국민 비밀 문자로 기능한 한글, 조선왕조실록에는 기사에 소개된 사건 이외에도 한글과 관련된 다양한 사건이 수록되어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조선왕조실록전자 서비스를 통해 누구나 쉽게 기록에 접근할 수 있다.

한글날을 기념하여 조선왕조실록에서 한글과 관련된 기록들을 찾아보며 한글의 소중함을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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