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랑방/대학생기자단

한글날에 항상 노하시는 세종대왕? - 변한석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21. 11. 8.

한글날에 항상 노하시는 세종대왕?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8기 변한석 기자

akxhfks1@naver.com

 

지난 10월 9일은 오백일흔다섯돌 한글날이었다. 대체공휴일이 생겨 한글날 당일을 비롯해 평일인 다음 날도 쉴 수 있게 됐지만, 코로나19 범유행 사태 때문에 여러 단체에선 예전과 같이 대면으로 한글날 행사를 진행하진 못했다. 특히 올해는 한글날 행사 규모가 축소된 것처럼 한글의 권위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한탄 섞인 기사를 왕왕 볼 수 있었다. 여러 전문가와 기자들은 방송 프로그램과 정부 단체, 인터넷 소통망 등 한글을 널리 알려야 할 곳에서 오히려 한글을 파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글 파괴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문제점들은 주로 빈번한 외래어 및 외국어 사용, 한글의 모음과 자음을 자신들만 알아보게 재조립하는 야민정음 같은 사례, 그리고 줄임말 등이 있다. 그러나 언급된 사례 중 외국어 사용이나 줄임말 같은 경우는 엄밀히 말해 한글 파괴가 아니라 한국어 파괴가 맞다. 한글은 글자인데, 외래어와 줄임말은 쓰는 국어에 대한 현상이지 글자와는 상관이 없다. 예를 들어, 한국에 백신 접종이 시작됐을 때 잔여 백신이라는 우리말로 충분히 뜻을 전달할 수 있음에도 노쇼 백신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이런 경우 불필요한 외국어의 사용으로 한국어 파괴가 일어난 것이지 한글 파괴가 일어난 게 아니다.

 

실제로 공식 기관에서 노쇼 백신’, ‘언택트같이 불필요한 외국어를 남용하는 문제는 비판받아야 한다. 또한 무분별하게 신조어를 방송에 그대로 내보내는 사태 역시 국어 파괴 현상이므로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한글날을 전후해 한글날의 정신을 되새기고자 이런 문제점을 거론하는 것은 한글자체와는 사실 큰 관련성이 없다.

 

 

△무분별한 외국어 표현을 우리말 단어로 바꾼 사례

그러나 야민정음은 한글날의 정신을 흐리게 한다는 세간의 걱정처럼 앞에서 말하는 외국어나 신조어와는 달리 한글과 관련이 있는 화제다. 그 이유는 한국어 문제인 신조어와 외국어 남용과는 달리, 야민정음은 실제로 한글 문자를 원래 쓰는 방식과 다르게 재조립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름 중 자와 이 비슷하게 생겼다고 박ㄹ혜로 바꾼다든지, ‘빌보드넬보드라고 쓰고, 심지어 영어 단어 엘에이치(LH)’ 역시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라고 바꾸는 등 한글과 외국어 알파벳 구분 없이 비슷한 모양새면 글자를 마구 바꾸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이런 신조어와 야민정음이 한글을 파괴한다고 주장하는 한글날 특집 기사에서는 유난히 세종대왕께서 노하신다.’ ‘무덤에 계신 세종대왕께서 통곡하실 것...’ 같은 문장이 많이 쓰인다. 그런데 과연, 세종대왕께서는 이런 한글 재조립을 보고 정말로 분노하실까?

 

 

△ ‘ 세종께서 노하신다 ’ 라는 표현을 쓴 기사들

먼저 야민정음이 세종대왕과 한글날의 정신을 위배한다는 주장을 보면, 야민정음이 기존에 정해진 한글의 법칙을 파괴하고, 야민정음을 이해하는 세대와 알아듣지 못하는 세대 간 소통을 막는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반면에 야민정음을 한글을 파괴하는 잘못된 행위가 아니라 신세대의 창의적인 놀이라고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야민정음을 이해하려면 우선 한글을 잘 이해해야 한다. 한글을 모르고 야민정음을 보면 이해조차 안 될 것이다. 즉 유사한 글자를 찾아 서로 바꾸든가 글자 여럿을 한 글자로 합체하는(: ‘부부의 세계->‘의 세계) 것은 한글에 대한 높은 이해에 기발한 창의성이 곁든 새로운 놀이라는 주장이다.

 

 

△ 야민정음을 긍정적으로 바라본 서울대 학술 기고 게시글

야민정음 등의 한글 변형 문화는 세대 간의 소통을 막는다는 단점이 있고, 티브이 프로그램 및 인터넷 소통망에서 남용하는 건 비판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런 놀이가 한글을 파괴한다기에는 오히려 한글의 유연성과 창의성을 입증해냈다고 볼 수도 있다. 작가 조승연은 방송 비정상회담및 자신의 개인 유튜브 채널에서 세종대왕은 현세대의 언어를 보고 슬퍼하거나 노하시지 않고 오히려 시대가 변했음에도 아직도 한글로 표기가 가능하다는 걸 보신다면 내가 정말 글자 하나는 정말 잘 만들었다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주장했다.

 

한글파괴, 국어파괴는 오랜 시간 사람들이 고민해온 문제다. 이런 걱정과 창의적인 놀이로서의 한글 재조립사이의 균형감이 중요하지 않을까. 이렇듯 균형감을 가지면서 언어를 이용해 한글을 파괴하는 문자 놀이가 아닌 한글의 창의성을 입증해낸 문자 놀이로 사용해 내년 한글날에는 세종대왕께서 노하신다는 표현이 점점 줄어들었으면 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