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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어쩔티비'보다 심각한 공공언어 - 이원석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22. 2. 4.

'어쩔티비'보다 심각한 공공언어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8기 이원석 기자

lemonde@khu.ac.kr

 

며칠 전 한글 관련 기삿거리를 찾다가 재밌는 영상을 봤다. 배우 신혜선씨가 '에스엔엘(SNL)코리아'라는 예능 방송에 청소년 역할로 출연한 상황극이다. 그는 소심한 전학생으로 기존 학생들의 텃세를 누르기 위해 유행하는 최신 은어를 훈련한다. 소위 그들만의 말발 싸움이다. "어쩔티비~저쩔티비~안물안궁(어쩌라고, 저쩌라고,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해)" 그는 곧 아찔한 말솜씨로 상대를 제압한다.

 

이 상황을 이해하려면 먼저 은어가 방안의 갈래인 걸 알아야 한다. 방언은 지역 방언과 사회 방언으로 나뉜다. 그중 은어가 속한 사회 방언은 세대, 소속 집단 등 이해관계에 따라 사용하는 어휘, 말하는 법이 다르다는 점이 특징이다. 누구나 학창 시절에 유행했던 은어를 구사한 적이 있을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1997년 동아일보가 낸 <중고생 80%는 은어-속어 습관적 사용>이라는 기사를 살피면, 대다수 청소년이 은어나 속어를 사용하는 이유로 습관이나 비밀 유지, 친밀감 형성을 꼽았다.

 

그렇다면 지금은 기성세대가 된 그들이 사용했던 은어는 아직까지 사회에 남아 있을까. 동아일보 기사 속 몇 개 예를 들어보자. 먼저 선생님을 지칭하는 '교도관', '미스터 사탄'과 경우가 없는 사람을 뜻하는 '슈퍼 싸가지'등이 눈에 띈다. 예상대로 낡은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이제는 당시 이 말을 사용했던 당사자들조차 해당 어휘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건 힘들 것이다. 결국 은어는 사용 범위가 한정적인 언어 습관으로, 특정 세대의 감성을 자극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회는 청소년 은어만 문제 삼으며, 청소년에게 바른 표준어 사용을 권장한다. 은어는 은어로 남았다가 사라질 뿐이다. 은어는 절대 표준어의 권위와 영역을 침범할 수 없다. 지금의 청소년이 평생 '어쩔티비'를 말하며 살 수 없지 않겠는가. 오히려 표준어를 갉아먹는 건 청소년의 은어가 아니라 좀스러운 공공언어다. 앞서 경기도는 20201'국적 없는 공공언어 퇴출'을 주장하며 일본어, 어려운 한자어, 외래어, 차별어를 순화 대상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2021년 상반기 기준, 여전히 경기 공문서 33422건 가운데 15467(46%)이 올바른 공공언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통계가 나왔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건 자명한 이치다. 공공언어 개선을 외면하고 학생들의 언어유희만 꼬집는 행위는 모순이다. 10년 전인 2012년에 국립국어원이 주도한 '청소년 언어문화 개선 수기 공모전' 수상작 중 이런 내용이 있다. 말의 힘을 실험한다는 명목 아래 밥 덩이 두 개를 준비해 앞에 두고 한쪽은 바른말을, 다른 한쪽은 욕을 한 다음 부패 정도를 비교하는 것이다. 당연히 비과학적이고 결과도 정해진 실험이다. 국립국어원은 해당 수기를 우수 사례로 꼽았다. 무려 10년이 지났다. 다음 정부의 공공언어 정책은 밥 덩이 비교 실험처럼 보여주기에 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출처 :  경기일보  “ 경기도 국적 없는 공공언어  114 개 퇴출 ” -  이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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