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9기 정다정 기자
수어는 농인의 손 움직임을 포함한 신체적 신호를 이용하여 의사를 전달하는 시각언어다. 2012년, 장애인단체가 ‘한국수화언어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서울 광화문에 있는 세종대왕상 앞에 모여서 '훈농수어(訓聾手語)'를 읽었다. '농인의 언어인 수어가 한글과 달라 서로 통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농인들의 답답함이 크고, 자신의 의견을 원활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세종인 내가 농인들을 위하여 수어를 만들어 반포한다.' 이러한 운동의 결과, 2016년 2월 3일,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면서 한국수어도 한국어와 동등한 대한민국 법정 공용어로 인정됐다.
수어는 다른 음성 언어와 마찬가지로 자연 언어에 속하므로 음운론, 형태론, 통사론 등이 존재하며 현재도 국립국어원 등에서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이렇게 '한국수화언어법' 시행으로 수어가 청각장애인의 고유 언어로 인정되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중계방송에서는 자막과 수어통역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모두 한국에 사는 한국인이지만, 농인의 모국어는 한국어가 아닌 한국수어다. 즉, 농인과 청인의 언어는 다르다. 그로 인한 문화 차이의 사례를 찾아보았다.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 게임인 '고요 속의 외침'은 음악이 크게 나오는 헤드폰을 껴 외부 소리를 차단한 뒤, 앞에서 설명하는 사람의 입모양을 보고 정답을 맞추는 게임이다. 이때 입모양을 잘못 읽어 엉뚱한 대답을 하면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된다. '고요 속의 외침'은 예능프로그램의 고전이자 단골 게임이지만, 농인이라 밝힌 이가 누리 소통망에 "게임 참여자가 엉뚱한 단어를 말할 때마다 바보 아니냐며 웃는 사람들, 뭐가 재미있는 건지"라며 "일반 학교에서 청인 동급생한테 저런 짓을 수없이 당했다. 재미있을 리가"라고 글을 올렸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이들에겐 소리를 차단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설정 자체가 상처일 수 있는 것이다.
농인들은 농인으로서 자기동일성을 가지며 '농문화'를 형성한다. 이 안에서 생활양식이 자연스럽게 활성화되고 전승된다. 이러한 방식 중 청인과의 문화 차이로 오해가 생길 때도 있다. 농인들은 다른 사람을 부를 때 상대방에게 손을 닿게 하여 상대의 주목을 끈다. 이러한 행동이 당연한 농인은 '왜? 무슨 일인데'라고 반응하는 반면, 청인에겐 기분 나쁜 행동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독특한 농문화를 이해하거나 인정하지 못하고 의사소통에서는 소리가 우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과거에 비해 소통이 안 된다고 농인을 비웃거나 무시하는 사례는 줄었지만, 여전히 농인에 대한 이해도는 낮은 편이다. 서울수어전문교육원에 따르면 청각장애인에는 농인 외에 입 모양을 읽거나 발성 연습으로 음성 언어를 습득해 소통하는 '구화인', 어느 정도 청력이 있어 보청기가 있으면 소통이 가능한 '난청인' 등이 있다. 청각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등장인물이 농인인지 구화인인지 구별 없이 설정된 경우가 많다. 단지 청인이 아니라고 해서 그들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청인과 농인 사이 장벽을 허물고, 농인의 언어인 수어를 비롯한 농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법이 제정되었고 또 많은 이들이 수어와 농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다. 사례를 살펴보면, 수어 뮤지컬 음악 비디오 <누가 죄인인가>는 국내 최초로 시도된 독창적인 수어 예술 작품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또다른 농인 창작수어뮤지컬 극단 ‘난파’는 수어로 연기하고 노래하며 농인의 음악적, 예술적 가능성을 보여주고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연출한다. 이 밖에도 농인 영화가 개봉되고, 드라마에서는 농인 배우가 출연하며, 농인 유튜버도 볼 수 있다. 외국 기업의 사례로는 2018년 미국 ‘스타벅스’가 오는 10월 워싱턴 디시(D.C.)에 자사의 첫 번째 수어 통용매장을 개설했다. 청각장애인 문화를 혁신적인 방식으로 통합해 청각장애인 및 난청 장애인들에게 고용과 접근 기회를 제공했다.
영어, 한자 등을 배우며 그 나라 문화를 익히는 것처럼 앞으로 학교나 지자체 공공기관에서 기본 교육과정의 한 언어로서 수어를 배운다면 농인과 청인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배려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소리 언어만이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은 아니다. 말뿐만이 아닌 손동작과 몸의 위치, 다양한 표정으로 우리는 소통한다. 생각해보면 소통을 넘어선 교감이 필요한 시대에 수어는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방식이다. 소리를 이용한 언어보다 신체를 더 많이 사용하는 수어는 더 직관적이고 감성적이다. 예전에 벙어리 장갑이라고 부르던 것을 '손모아장갑'으로 대체하자고 알린 지 몇 해가 지났다. 장갑을 부르는 단어가 바뀌듯 우리의 생각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장애인 수는 전체 인구의 약 5%이다. 하지만 농인을 비롯한 장애인들은 우리 주변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몇몇 이들의 편견 어린 시선과 불편한 환경이 그들을 숨게 만든 것이 아닐까. 모든 국민이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권리임을 우리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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