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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서울시 홍보 표어, 또 영어야? - 권나현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23. 4. 12.

서울시 홍보 표어, 또 영어야?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9기 권나현

nahyunia@naver.com

‘I SEOUL U’. ‘너와 나의 서울’이라는 의미를 담은 이 영어 문장은 2015년부터 서울시 표어로 쓰였다. 지난 1월, 서울시는 ‘I SEOUL U’를 대체할 새로운 표어를 시민들의 투표로 정하기로 하고 4개의 후보를 공개했다. 그런데 4개 후보 모두 또 영어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표어 공모 소식에 긍정적인 반응보다는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이 더 많았다.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을 대표하는 표어를 정하는데 굳이 ‘영어’를 써야 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출처 - 서울시 공식 인스타그램

 

‘브랜드 슬로건’의 일종인 지역 표어는 지역의 특징을 나타내는 간결한 문구로 지역을 홍보하고, 지역 경쟁력을 향상시킬 목적으로 쓰인다. 서울시는 2002년 ‘HI Seoul’을 시작으로 ‘Hi Seoul SOUL OF ASIA’, ‘I SEOUL U’까지 모든 공식 표어를 영어 문장으로 선정했다. 이는 서울뿐만이 아니다. 2003년부터 ‘다이나믹 부산(Dynamic Busan)’을 표어로 사용해오던 부산시는 지난 1월 ‘부산 이즈 굿(Busan is Good)’을 새 표어로 정했다. 이외에도 대구시의 ‘파워풀 대구(Powerful Daegu)’, 대전시의 ‘잇츠 대전(It’s Daejeon)’, 구미시의 ‘예스구미(YES GUMI)’, 상주시의 ‘저스트 상주(Just Sangju)’와 같이, 한국어보다 영어 표어를 선호하는 지역이 더 많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지역을 홍보하는 표어에 굳이 영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 든다. 서울시는 새로 선정된 표어로 서울의 매력을 국내외에 알리고 세계적인 도시로서 한 단계 도약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영어로 된 표어가 서울의 국제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과연 영어로 된 지역 표어가 외국인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최근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GUCCI)’가 브랜드 이름을 한글로 크게 새긴 옷을 선보이는가 하면, 대박·김밥·먹방·오빠 등 한국어 낱말이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되기도 했다. 이는 한국어로 된 표어만으로도 세계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영어를 사용해야만 지역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다는 발상은 이제 옛말이다.

 

영어 단어들을 억지스럽게 나열한 ‘콩글리시’ 표어는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표어에 대한 호감도마저 떨어뜨린다. 서울시 표어였던 ‘I SEOUL U’ 또한 의미가 모호하고 전달력이 떨어져, 우리나라 사람은 물론 외국인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강남구의 표어 ‘미미위(ME ME WE) 강남’도 마찬가지다. 영어 단어를 단순 나열해놓은 형식이라, 부연 설명 없이는 이 표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전혀 알 수 없다.

 

또한, 영어로 된 표어에서는 그 지역의 특색을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시는 새로운 표어 후보에 서울의 고유 정체성과 매력, 비전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4개의 후보에 담긴 의미는 다음과 같다.

SEOUL for you –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이 갖춰진 서울
amazing SEOUL – 전통, 문화, 예술의 중심지이며 놀이 공간으로 가득한 서울
SEOUL my soul – 내 영혼을 채울 수 있는 도시 서울
make it happen SEOUL – 어떤 일이든 도전하고 실현할 수 있는 서울

SEOUL’ 대신 그 어느 도시를 넣어도 무방할 것 같은 이 문구에서 서울 고유의 매력이나 개성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영어식 표기를 고집하다 보니 서로 다른 지역의 표어가 비슷해져 버린 경우도 있다. 의왕시는 ‘Yes! 의왕’, 구미시는 ‘YES GUMI’, 문경시는 ‘긍정의 힘! YES문경’이라는 표어를 사용하고 있다. 서로 비슷한 이 세 표어에서는 어떠한 차별성과 상징성, 독창성을 찾아볼 수 없다. 더군다나 표어 자체만으로 보아도 지역에 대한 특성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지역 표어의 목적 중 하나는 지역이 가진 고유의 정체성과 핵심 가치, 정책 목표 등을 담아내 홍보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어로 된 표어는 그 의미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 굳이 영어를 사용하면서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의 가치를 낮출 필요는 없다. 지역의 표어를 영어로 선정하는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오히려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나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의견도 많았다.

출처 - 각 지자체 누리집

 

물론 한국어만으로 멋진 표어를 만들어낸 지역도 있다. 강릉시는 ‘솔향 강릉’, 세종시는 ‘세종이 미래다’, 여수시는 ‘섬섬여수’를 표어로 삼고 있다. ‘Gimhae for you’라는 표어를 사용하던 김해시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한글 홍보 문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가야왕도 김해’로 표어를 변경했다. 비빔밥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유산으로 유명한 전주시는 ‘한바탕 전주, 세계를 비빈다’라는 표어로 전주시만의 특징을 드러냈다. 이처럼 지역 표어에는 무엇보다도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매력이 잘 드러나야 한다. 어디다 붙여도 무방할 것 같은 영어 표어와, 지역의 고유한 특성을 잘 담아낸 한국어 표어 중 어떤 표어가 지역의 가치 향상에 도움이 될까?

출처 - 각 지자체 누리집

서울시가 약 한 달간 실시했던 서울 브랜드 슬로건 선호도 조사에서, 내국민은 ‘Seoul for you’, 외국인은 ‘Seoul, my soul’을 1위로 선택했다. 최종 공식 표어는 향후 결선투표를 통해 정해질 예정이다. 하지만 이렇게 선정된 서울시 표어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시민 선호도 조사 기간 동안, 공식 누리집이나 누리소통망(SNS)에서는 영어 표어에 대한 시민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유독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러한 반응을 각 지자체에서 잘 살펴보고,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잘 담아낸 한국어 표어를 선정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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