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던 물건을 사고파는 중고 거래가 요즘 활발하다. 예전에도 책이나 음반처럼 형태와 내용물이 일정한 ‘정보 상품’의 중고품 거래가 제법 있었지만, 최근 소비자들이 거래하는 품목에는 의류, 생활용품, 전자기기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다. 쓰레기를 줄이고 제품 수명을 연장해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정말 반가운 일이다. 다만 염려되는 점은 이 분야까지 불필요한 외국어가 스멀스멀 끼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 살펴볼 ‘리커머스(recommerce)’라는 단어가 그 예다.
‘리커머스’의 사전상 의미는 “기존에 사용하던 제품을 재거래하는 제품 판매 전략. 새로운 상품을 살 때 기존에 사용하던 제품을 반납하면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보상 판매와 일정 기간 후 새로운 상품으로 바꿔 주는 교환 판매를 통틀어 이르는 말”(<우리말샘>)이다.
이 말을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소개한 <한국경제> 2011년 10월 자 기사에 따르면, ‘리커머스’는 영국의 한 기업 자문 업체가 만든 신조어로 “기업들이 경기 악화로 새 상품을 쉽게 구매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을 자극하기 위해” 그리고 “확산되는 기부문화와 보상판매를 연결시키기 위해” 도입한 주목받는 거래 방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후 우리 언론에서도 심심찮게 쓰였다. “리커머스 시장 활성화에 따라 중고 거래 메신저 사업도 염두에 두고 있다. 약간의 수수료를 받고 물건을 전달해주는 게 골자다.”(<머니투데이> 2023년 2월)와 “리커머스 플랫폼은 ‘신상’ 상품과 신상의 ‘엔차 제품’을 함께 검색해 구입하는 20·30대를 중심으로 특히 인기가 높다.”(<헤럴드경제> 2022년 8월)
하지만 앞서 말했듯 중고 거래는 새로 등장한 거래 방식이 아니다. 굳이 영어를 사용해서 신규 사업처럼 지칭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리커머스’를 순화하는 작업은 사실 ‘새말’을 만드는 게 아니라 원래 사용하던 우리 이름 중 가장 적절한 것을 찾아 자리매김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기존 우리말 다듬기 작업에서는 ‘리-커머스(re-commerce)’를 각각 어떻게 바꿨을까. 접두어 ‘re’는 반복, 복구, 순환 등을 뜻하는 말로 이전 순화 사례로 ‘리사이클링→ 재활용’, ‘리프레시→ 재충전’, ‘리셀→ 재판매’ 등이 있다. ‘커머스’의 경우, ‘모바일 커머스→ 이동 통신 거래’, ‘이커머스→ 전자상거래’로 다듬는 등 주로 ‘거래’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그러나 ‘소셜 커머스→ 공동 할인 구매’, ‘라이브 커머스→ 실시간 소통 판매’처럼 상호 거래보다 각각 구매, 판매 측면을 강조해서 순화한 경우도 있다.
현재 ‘리커머스’는 사용자가 쓰던 물건을 다른 소비자와 거래하는 ‘단순 중고 거래’, 명품이나 한정판 물품의 ‘재거래’, 기업의 ‘상품 임대’, 제조사가 기존 판매 제품을 새 제품으로 교환해주는 ‘보상 판매’ 등으로 다양하게 쓰인다. 따라서 이번 다듬기 과정에서는 이 모든 뜻을 폭넓게 아우르는 표현을 찾으려고 애썼다. 자연스레 전부터 쓰던 ‘중고 거래’라는 말은 새말 후보에서 제외되었다.
여러 고민 끝에 새말 모임에서 최종적으로 골라낸 세 개의 후보 말은 ‘재거래’, ‘재거래 시장’, ‘재순환 판매’였다. 이중 여론조사에서 ‘재거래’가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재거래’가 ‘리커머스’를 대신하는 우리말로 공식 선정된 것과 발을 맞춰, 이 업계에 갈수록 늘어가는 ‘○○마켓’ 같은 이름 대신 ‘○○시장’ 혹은 ‘○○장터’ 같은 우리말 명칭이 좀 더 힘차게 새싹을 틔우길 바란다.
※ 새말 모임은 어려운 외래 '다듬을 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새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문학, 정보통신, 환경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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