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는 ‘새로 생겨난 말’을 가리키지만, 구성 방법을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원래 많이 쓰던 단어를 둘 이상 결합해서 새로운 의미를 보태 쓰는 방법이 그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쓰기 시작한 지 비교적 오래되지 않은 단어를 새로 ‘발굴’해 요즘의 세태에 맞춰 활용하는 것이다. 지난 몇 차례에 걸쳐 살펴본 ‘아트 테크’, ‘퍼스널 컬러’, ‘블루 푸드’가 전자(단어 각각의 뜻을 보고 전체 용어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에 해당하고, 오늘 살펴볼 ‘긱 이코노미(gig economy)’는 후자에 속한다.
‘긱 이코노미’는 “산업 현장에서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ㆍ임시직ㆍ일용직 따위를 필요에 따라 고용하는 경제 형태”(우리말샘)를 뜻한다. 그런데 ‘긱’이라는 단어가 사뭇 낯설다. 일상에서 쉽게 접해온 단어가 아니다. 무슨 뜻일까.
‘긱(gig)’은 1920년대 미국 재즈 공연장에서 ‘단기적으로 섭외한 연주자’를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왜 ‘긱’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어원이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귀가 밝은 사람이라면 2020년에 개봉한 디즈니 만화영화 <소울>에서 주인공이 클럽 공연자로 뽑히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나 연주 따냈어!(I got the gig!)”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이후 이 말은 산업 전반에서 쓰이게 되어 ‘임시로 하는 일(직장)’을 두루 가리키게 되었으나 지금도 영어사전에는 이 말의 첫째 뜻풀이로 ‘음악 등의 공연(출연)’이 올라가 있다.
영어권에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가 우리 사회에 처음 소개된 것은 2015년, <주간경향> 기사를 통해서였다. 기사 내용은 이렇다.
“공유경제라고도 불렸던 우버 등의 ‘긱(gig) 이코노미’, 한국형도 최근 뜨겁다. 긱(gig)이란 원래 음악가의 하룻밤 일을 나타내는 속어로, 잡(job)보다 경박하고 찰나적인 모든 일을 일컫는 데도 쓰인다. 신조어 특히 외래어는 공유경제처럼 현상을 미화시키고, 원래의 함축을 가리곤 한다. 결국은 ‘일용직 경제’다. 스마트폰을 손에 든 날일꾼과 삯꾼이다.”
긴 기사 내용을 옮긴 이유는 8년 전 이 용어를 받아들일 때만 해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동 통신 수단이 발달함에 따라 사회가 선호하는 고용 형태가 변화하고, ‘직장’에 대한 젊은이들의 시각도 함께 변하면서 이 용어는 이제 중립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하다. 최근 언론 보도를 보자.
“긱 이코노미는 전통적인 고용 구조를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중략) 일시적이거나 프로젝트 기반의 일자리를 중심으로 하며 전 세계의 전문가들을 하나의 네트워크 안에서 연결시킨다.”(<아웃소싱타임스> 2023년 8월)
“지루한 일을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되고, 본인이 원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일하려는 엠제트 세대의 특성은 긱 이코노미와도 잘 맞다.”(<서울경제> 2023년 5월)
하지만 불필요한 외국어는 사용하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여러 번 글에서 썼듯 영어 낱말을 한글로 표기하면 장모음, 단모음 구분이 안 되고, g 혹은 k로 끝나는 단어의 표기가 모두 받침 ‘ㄱ’으로 표현되어 발음이 비슷한 다른 단어와 구별이 안 된다. ‘긱’도 그렇다. ‘gig’과 ‘괴짜,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가리키는 단어 ‘geek’을 우리말로 표기하면 전부 똑같이 ‘긱’이 된다. 표기만 보고는 어느 단어를 지칭하는 것인지 구별할 수 없다. 우리말로 사용하는 것이 답이다.
그렇다면 ‘긱 이코노미’는 어떻게 우리말로 순화하는 게 좋을까. 2021년 새말모임에서 이미 ‘긱 이코노미’와 의미가 가까운 ‘긱 워커(gig worker)’를 ‘초단기 노동자’로 바꾸어 소개한 바 있다. 그래서 이와 일관성 있는 표현으로 ‘초단기 고용 경제’를 1순위 후보로 정했다. 또, ‘초단기’와 ‘경제’를 대신하여 다양한 조합도 궁리해 보았다. ‘일시 고용 경제’, ‘초단기 계약 노동자’, ‘비정규 경제’, ‘임시직 경제’, ‘초단기 노동 경제’ 등이 뽑혔다. 순우리말을 사용해 ‘날품 달품 경제’라는 어감 좋은 표현도 만들어 보았다.
이 중 ‘초단기 고용 경제’, ‘일시 고용 경제’, ‘날품 달품 경제’를 골라 선호도 여론조사에 붙인 결과, ‘일시 고용 경제’가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아 새로운 우리말로 결정되었다.
※ 새말 모임은 어려운 외래 '다듬을 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새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문학, 정보통신, 환경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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