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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한자 병기는 책 읽기의 걸림돌-이건범

by 한글문화연대 2014. 12. 30.

■ 한자 병기는 책 읽기의 걸림돌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세상을 비판적인 눈으로 볼 줄 아는 지식인 가운데서도 한자 문제에는 비판적 사고를 멈추는 분들이 있다. 교육부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함께 적겠다는 방침을 검토하고 있어 2015년에는 이 문제를 둘러싸고 뜨거운 토론이 펼쳐질 듯하다. 좀 더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거리를 꼽아보겠다. 한자 문제는 크게 낱말 사용과 배움과 표기의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한자어 사용 문제다. 지나친 한자 교육을 비판하면 ‘한자어를 사용하지 말자는 말이냐’는 오해의 질문이 돌아온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 가운데 한자어가 35% 정도라니, 한자어 사용은 현실이고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기여와 이바지라는 말, 제작이나 제조와 만든다는 말, 감사하다와 고맙다는 말을 두루 쓰고 있다면 그 가운데 고유어를 살려 써야 이해가 쉽다는 게 내 생각이다. 백혈구와 흰 피톨의 예처럼 학술용어나 전문용어에서 고유어로 새 말을 만들고자 애써야 한다. 어릴 적부터 익히는 고유어가 쉽기 때문이다. 정보통신 분야에서 요즘 유행하는 ‘클라우드’가 뭐 그리 대단한 영어가 아니듯이. 좀 더 창의적으로 용감하게 접근해야 한다.

 

다음으로 배움의 문제다. 누구든 시간 앞에서는 평등하니 그 시간에 한자를 배우든 아랍 문자를 배우든 목공을 배우든 상관할 바 아니다. 하지만 공교육에서는 배움의 시기와 양을 정해야 한다. 우리나라 교육기본법에서는 인격을 닦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의 자질을 갖추게 하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다. 이 목표에 비추어 요즘의 한자 교육이 마땅한지 재볼 일이다.

 

지난 40년 동안 한자는 중학교부터 정규과목인 한문 시간에 가르쳤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 선행학습이 기승을 부리면서 초등학교 재량 시간이나 자습 시간에 한자를 가르치게 하는 교장 선생님들이 늘더니, 2009년 교육과정 개편 때부터는 한자가 초등학교의 창의적 체험활동 과목 가운데 하나로 끼어들었다. 교육부에서는 보건과 정보통신, 한자를 창의적 체험활동 수업에서 강조하고 있지만, 왜 한자를 강조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이런 사정 탓에 초등학교에서 한자를 가르치는 학교가 늘어난 반면에 중학교 한문 시간은 부실하게 운영된다. 고교 입시가 대학 입시의 전초전이 되면서 국·영·수 편향이 중학교에도 자리 잡아서다. 이미 초등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으니 제대로 가르치자고 주장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초등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가 라는 문제도 검토해야 한다. 나는 사교육과 학습 부담을 늘리지 말고 중학교부터 잘 가르치면 될 일이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표기 문제다.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과 글을 한자로 적어야 한다는 주장은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 지금도 중·고교 교과서에서는 한자를 병기할 수 있다. 하지만 교과서 집필진들이 자율적으로 판단하여 교과서에 한자를 거의 병기하지 않는다. 교육부는 병기된 한자 가운데 너무 어려운 게 있어서 그런 어려운 한자는 병기하지 말라는 방침을 만들겠다고 하나 이는 쉬운 한자를 반드시 병기해야 한다는 강압으로 집필진에게 다가갈 위험이 높다.

 

한자 병기는 읽기의 흥미와 집중도 측면에서 살펴봐야 한다.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문장을 한자 병기 방식으로 적어보자. “을사조약(乙巳條約)을 계기(繼起)로 더욱 거세어진 의병(義兵) 운동(運動)은 군대(軍隊) 해산(解散) 이후 더욱 강화(强化)되었고….” 눈으로 읽어야 할 문장의 길이도 길어질 뿐만 아니라 한글로 읽다가 그 흐름을 끊고 한자를 본 뒤 다시 한글로 읽어야 한다면 읽고 난 뒤의 문장 이해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운동경기에 비유하자면 100m 달리기와 110m 장애물 달리기를 치르는 차이만큼이나 둘은 읽기 효율에서 차이를 보일 것이다. 과연 그럼에도 강행할 까닭이 있는가?

 

# 이 글은 2014년 12월 29일, 경향신문에 실린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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