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사투리 보존 가치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12기 조유빈
나의 외가는 경북 안동이다. 어릴 적 명절이면 안동 외할머니댁에 내려가 들었던 말들이 기억에 선하다. “밥 묻나”, “어디가니껴”, “언 드가라” 지역색이 묻어나는 말은 어눌한 듯 정겨웠고, 사람 사이를 더 가깝게 만들어주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지역 언어는 점점 소멸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그중에서도 내게 가장 익숙한 안동 사투리의 특징을 알아보고, 보존 가치와 방안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 전통과 언어가 살아 숨 쉬는 도시, 안동
안동은 경상북도 북부에 있는 도시로,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 불릴 만큼 전통과 유교적 예절이 짙게 남아 있는 지역이다. ‘밥 잡샀니껴?’, ‘많이 먹었니더’, ‘그라니이’와 같은 표현은 얼핏 보면 무뚝뚝하거나 무심하게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는 상대를 높이는 정중한 말이다. 안동 사투리의 특징인 ‘~니더’, ‘~하이’, ‘~세이’ 등의 어미는 신라 시대 왕족들과 양반 계층의 언어에서 유래했다. 이처럼 사투리는 화자 간의 정서적 유대를 형성할 뿐 아니라, 우리말의 변천과 고어 연구의 소중한 자료로서도 의미를 지닌다.
◆ 사투리가 死투리로..
하지만 오늘날 안동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사투리를 잘 쓰지 않는다. “정겹다”, “구수하다”는 말보다 “촌스럽다”, “우스꽝스럽다”라는 반응이 먼저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학교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사투리를 쓸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지역어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안동에 거주하는 강태양 씨(만 25세)는 “사투리를 안 쓰는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 ‘경상도에서 왔구나’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어요. 내 말투를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거나, 특정 발음을 따라 해보라고 할 때는 좀 불편하더라고요.”라고 털어놨다. 또한, 안동에서 살아온 강내은 씨(만 23세)도 “수도권으로 대학을 간 친구들이 모두 사투리를 고쳐서 돌아왔다”며 “수도권에서 대학을 다녀보니 자기만 사투리를 쓰는 것 같아 튀는 게 아닐까 싶어서 고쳤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실제로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국어사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경상 방언을 사용한다는 의견은 2005년 27.9%에서 2020년 22.5%로 5.4%포인트 줄었다. 표준어를 사용한다는 의견은 같은 기간 47.6%에서 56.7%로 9.1%포인트 증가했다. 국립국어원은 기존 연구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표준어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한 객관적인 수치라고 설명했다.
◆ “화를 낸 거 아니에요”
안동문화원이 발간한 안동방언사전(편자 김정균)에 따르면, 안동 방언권에서 쓰는 어휘의 특징 중 하나는 옛말의 흔적을 보이는 낱말이 많다는 점이다. 안동 방언은 '두껍다'를 '뚜껍다', '조리다'를 '쪼리다'로 읽는 등 표준어에 비해 된소리가 많다. 이로 인해 ‘세다’, ‘무섭다’, ‘화난 것 같다’는 오해를 받기 쉽다. 그러나 이는 억양의 차이일 뿐, 실제 그 말투 안에는 해학과 정감이 담겨 있다. 안동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김영애 씨(만 51세)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내가 사투리를 쓸 때, 말을 좀 세게 하나 봐요. 목소리도 크고 말끝도 딱딱해서, ‘화난 거 아니냐’는 말 많이 들어요. 근데 그게 우리 말투예요. 정 많은 사람들 말이지, 싸우자는 게 절대 아니에요.” 그는 이어서 말했다. “꼭 안동이 아니더라도, 경상도 말 들리면 괜히 정이 가요. ‘어데서 왔노?’ 하며 자연스레 고향 얘기 나오고, 처음 본 사람하고도 금방 친해져요.”
◆ 말이 사라지면 기억도 사라진다
안동시에서는 사투리 보존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안동시청이 후원하고 안동문화원이 주관하는 안동사투리 경연대회다. 이 대회는 안동의 역사와 정서를 사투리로 풀어내는 문화공연을 통해 지역민의 언어적 자긍심을 되살리는 장으로 발전했다.
그렇다면 방언 보존을 위한 실질적인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첫째, 학교 교육에서 지역어의 문화적 가치를 가르치는 것이다. 지역사나 문화 교육과 연계하여 사투리를 문화 자산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핵심이다. 둘째, 공공언어 정책에서 방언의 위상을 존중한다. 공공기관과 지방자치단체는 공식 행사, 안내문, 관광 콘텐츠 제작 시 지역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는 지역민의 언어적 소속감을 높이고, 외지인에게도 지역 고유의 정취를 전할 수 있다. 셋째, 지역어 연구와 창작물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지역 대학, 문화원, 연구기관과 협력해 사투리 사전, 구술 자료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또한, 웹 예능, 다큐멘터리, 숏폼 영상 콘텐츠 등 젊은 세대가 접근하기 쉬운 전달 매체와 형식을 통해 사투리를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콘텐츠를 확장하는 방안도 있다. 넷째, 방언의 경제적, 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해야 한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이유 중 하나는 경제적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지역어도 지역 경제와 문화 자산으로 연결될 수 있다. 사투리를 활용한 관광상품, 지역 캐릭터, 공연 콘텐츠 개발 등은 지역 산업과 일자리 창출로도 이어질 수 있다.
지금 한국은 지방소멸이라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인구가 줄어들수록 가장 먼저 사라지는 건 ‘말’이다. 그리고 말이 사라지면, 지역 공동체의 정서와 문화, 습성이 녹아 있는 집합적 기억도 함께 사라질 수 있다. 또한, 사투리가 소멸하면 그만큼 언어 다양성도 줄어든다. 언어 속에 존재하는 감정 표현, 사고의 결은 다른 언어로 쉽게 대체될 수 없으며, 우리가 배우고 확장할 수 있는 지적 기반 역시 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사투리를 지키는 일은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는 일이자 공동체의 기억을 보존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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