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언어가 우리가 보는 세계다.
대학생 기자단 12기 홍예슬
언어는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2016년 개봉한 영화 <콘택트>는 외계어를 배운 주인공이 사고와 시간 인식까지 변화하는 과정을 그리며 이 질문을 던진다. 영화 속 상상은 단순한 허구가 아니다. 실제 언어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언어와 사고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이른바 ‘언어상대성 가설’이다.
언어는 사고를 바꾼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문화, 사고방식, 생활방식, 가치관 등을 반영한다. 이런 언어의 특성은 학자들로 하여금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면 사고방식도 다른 방식으로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했다. 이 물음에 대해 20세기 초 언어학자 에드워드 사피어와 벤저민 리 워프는 연구에서 언어상대성 가설을 처음 제기한다. 그들은 언어가 단순히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고 그 자체를 형성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고 보았다.
사피어와 워프의 가설은 두 갈래로 나뉜다.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는 강한 언어결정론과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준다는 약한 언어상대성 가설이다. 오늘날 심리과학과 인지과학 연구에서는 언어상대성 가설을 채택한다. 언어가 사고를 완전히 지배하지는 않지만, 분명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오늘날의 실험과 사례들이 입증한다.
언어가 바꾸는 것들
언어는 저축 습관에 영향을 준다. 이것은 언어 시제 표현의 여부에서 드러난다. 과거, 미래, 현재를 구분하지 않는 중국어(미래 비구분 언어)와, 이를 구분하는 영어(미래 구분 언어)를 비교한 경제학자 키스 첸(K. Chen)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그는 미래 비구분 언어 화자들이 현재와 미래의 가치를 비슷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현재의 소비를 자제하고 미래를 위한 저축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들은 미래 구분 언어 화자보다 저축률이 30% 높고, 흡연율과 비만율도 낮았다. 즉, 미래 비구분 언어 화자가 미래와 현재를 동등하게 고려해 미래에 더 투자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어 | 영어 | |
과거 | 어제 비 내리다(昨天下雨) | 비가 왔다(It rained) |
현재 | 오늘 비 내리다(今天下雨) | 비가 내리고 있다(It is raining) |
미래 | 내일 비 내리다(明天下雨) | 비가 올 것이다(It will rain) |
학자들의 시선: 반대와 지지
그러나 모든 학자가 언어상대성 가설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인지심리학자 스티븐 핑거는 사람의 생각은 언어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다고 반박한다. 그는 사람은 본인의 모국어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언어에 선행하는 메타언어인 '사고의 언어(language of thought)'로 생각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언어상대성 가설을 지지하며 실험으로 그 가능성을 확장해 온 학자도 있다. 레라 보로드츠키는 언어와 사고의 관계를 현대 실험으로 가장 적극적으로 입증해 왔다. 그녀는 방향 감각과 시간 인식, 색채 인식 등 여러 분야의 실험을 통해 언어와 인지의 연결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였다.
영화로 다시 본 언어의 힘
이러한 학자들의 논의는 다시 영화 <콘택트>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 후반, 주인공인 루이스는 외계 언어를 충분히 습득한 뒤, 마치 과거를 회상하듯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장면들을 경험한다. 이는 그녀의 사고 구조가 외계 언어처럼 비선형적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언어가 사고와 시간 인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언어상대성 가설’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다. 이 장면을 통해 영화 <콘택트>는 언어가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를 넘어,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우리의 언어가 우리가 보는 세계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면서 동시에, 생각을 만들어내는 틀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매일 쓰는 언어 역시, 우리의 사고방식과 세계 인식을 조용히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어떤 방향으로 우리의 사고를 이끌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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