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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7일, 한글문화연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579돌 한글날 기념 ‘2025 한글문화토론회’가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렸다. ‘공공언어 속 외국 낱말, 외국 문자 줄일 방안’을 주제로 열린 이번 토론회에서는 세 가지 소주제가 순차적으로 논의되었으며, 그중 두 번째 주제인 ‘국제기구의 한국어 줄임말 사용 방안’을 중심으로, 외국어 약칭 중심의 공공언어 현실과 한글화의 방향을 논의하였다.
“UN·OECD는 편리하지만, 국민 언어는 아니다” 이날 발표를 맡은 이정복 대구대학교 교수는 “국제기구의 명칭이 대부분 영문 약칭으로만 통용되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제기하며 발표를 시작했다. 그는 “UN, WTO, OECD처럼 외국어 약칭만 쓰는 현실은 단순한 표기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정보 접근권과 언어 주권이 걸린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64개 주요 국제기구의 명칭을 분석한 결과, 한국어 줄임말 사용률이 평균 18.6%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나 ‘국제통화기금(IMF)’처럼 익숙하게 자리 잡은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제기구 명칭은 여전히 로마자 약칭으로만 사용되고 있었다. 그는 “발음의 자연스러움, 의미 전달력, 국민 인지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한글형 줄임말의 표준화가 필요하다”며 “이는 단순한 순화가 아니라 국민의 이해를 위한 언어 복지의 실천”이라고 덧붙였다.
“시청자 이해가 우선… 병기와 병용이 현실적 대안” 첫 번째 토론자로 나선 박성호 방송기자연합회장(문화방송 기자)은 실효성과 명확성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언어는 이해를 위한 도구인데, 지나친 줄임은 오히려 의미를 흐리게 만든다”며 “예를 들어 ‘유엔환경계획’을 ‘유엔 환경’으로 줄이면 두 글자를 덜 쓰는 효과는 있지만, 온 이름보다 훨씬 모호해진다”고 말했다. 또한 “‘국제수로기구’를 단순히 ‘수로기구’라 하면 그것이 국제기구인지, 국내 조직인지조차 알기 어렵다”며, “언론은 언어의 경제성보다는 시청자의 명확한 이해를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로마자 약칭을 무조건 배제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암호 같은 로마자 줄임말을 없애려다 또 다른 암호 같은 한국어 줄임말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며,“‘이개은(이슬람개발은행)’, ‘미개은(미주개발은행)’ 같은 표현이 과연 대중의 이해에 도움이 될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문제는 국제기구명 자체보다 ‘줄임말이라는 형식의 한계’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방송 뉴스의 현장에서는 무엇보다 시청자의 이해가 중요하다”며 “로마자 줄임말을 무조건 배격하기보다, 처음에는 영어와 한글을 병기하고 점차 병용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즉, 시청자의 언어 습관을 고려하면서 점진적으로 한글 표기를 확대하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신문의 경제성과 통일성 사이, 현실적 해법 모색해야” 두 번째 토론자인 이지순 경향신문 기자는 국제기구명 한글화의 문제의식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신문이라는 매체의 구조적 특성상 글자 수와 경제성의 제약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신문은 한정된 지면 안에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단어의 경제성이 우선시된다”며, “편집 과정에서 분량을 맞추기 위해 영어 약자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지순 기자는 경향신문이 2020년 기사 작성 지침을 개정하면서 무분별한 영어 약자 사용을 지양하자는 원칙을 마련했지만, “시행 초기 이후 현재는 문서로만 남아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그녀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문체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과기부’로 혼용되는 것처럼, 국제기구명도 일관된 기준이 없으면 오히려 혼선을 초래한다”며 기구명과 줄임말의 1:1 대응과 통일성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기자들은 실사용자이기 때문에 실제 기사 작성 현장의 수용도와 편의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지순 기자는 “지면 제약이 없는 온라인 기사에서부터 한국어 줄임말을 시범적으로 사용하고 다듬어가는 것이 한 방법일 수 있다”며, “결국 언론사의 내부 실험과 인식 변화뿐 아니라 정부·협회의 지속적인 개입과 설득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글의 공공성, 실천으로 이어져야 이번 토론은 국제기구명 표기라는 구체적 사례를 통해, 한글이 단순한 표기 수단이 아닌 ‘공공언어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장이었다. 발표자와 토론자들은 한글 및 국문화의 방향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실제 언론과 행정 현장에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또한 이번 논의에서는 국제기구명뿐 아니라 정부 부처나 정책명 등 다양한 공공언어 영역에서도 한글과 우리말 표현이 원활히 통용되도록 제도적·문화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뜻이 모였다. 이날 토론회는 한글과 우리말이 공공언어로서 기능하기 위해 정책과 현장이 어떻게 맞물려야 하는지를 보여준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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