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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13기] 알 권리를 가로막는 어려운 공공언어 - 13기 황세연

by 한글문화연대 2026. 8. 25.

알 권리를 가로막는 어려운 공공언어

 

 

정부와 공공기관의 낯선 언어,

소통의 도구가 아닌 장벽

한글문화연대기자단 13기 황세연

9fd192@naver.com


지난해 8월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은 정부 보도자료와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외국어 40개를 추려 우리말 대체어를 발표했다. 외교부가 즐겨 쓰던 '이니셔티브''구상'으로, '파트너십''협력 관계'로 다듬었고, 인사혁신처가 쓰던 'HR''인사', '(pool)''후보군', '원스톱''일괄'로 바꾸었다. 그런데도 지난해 12월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국민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어려운 어휘·표현 30개 가운데 13개에서 '바꿔야 한다'는 응답이 70%를 넘었고, 5개는 80%를 웃돌았다. 정부가 부지런히 말을 다듬어 내놓는 사이에도, 국민이 알아듣기 힘든 외국어와 전문용어는 공공언어 현장에서 끊임없이 새로 생겨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말로 대신해야 할 외국어, 출처-문화체육관광부)

 

공공부문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어나 외국어로 가득 차면, 국민의 정책 이해도가 떨어지고 정책이 효과적으로 시행되기 어렵다. 단순히 불편함의 문제가 아니다. 언어의 장벽이 곧 정보 불평등이 되고, 그 불평등은 복지, 행정, 의료 등 삶의 중심과 직결된다. 
국립국어원은 공공언어 쓰기 평가에서 쉬운 말로 바꿔 써야 할 외국어 목록을 선정하고 대체어를 제안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체감하는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행정분야 전문용어 표준어를 고시하고 2만여 개의 순화어를 제공하고 있지만, 실제 공문서와 보도자료에는 ‘인프라’, ‘플랫폼’, ‘거버넌스’ 같은 표현이 여전히 넘쳐난다.

외국의 사례를 보자. 1979년 영국의 크리시 마허는 기자들 앞에서 정부 공문서 다발을 찢으며 ‘도무지 알 수 없는 글을 쓰는 정부’에 항의했고, 이 장면이 방송을 타며 쉬운 영어 쓰기 운동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 결과 대처 정부는 불필요한 공문서를 정리해 예산을 절감했고, 국민은 알기 쉬운 정보를 얻게 됐다. 미국에서도 1970년대부터 연방정부 주도로 공문서, 법률 문서에 쉬운 표현을 쓰도록 하는 ‘플레인 잉글리시 운동’을 전개해 왔으며, 2010년에는 이를 법으로 제정했다. 이후 연방 기관들은 문서 분량을 대폭 줄이고 민원 문의도 감소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립국어원이 제시한 필수 개선 행정용어, 출처: 서울Pn)


한국도 2005년 국어기본법 제정 당시부터 공공기관에 쉬운 공문서 작성을 법적으로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어겼을 때의 제재 규정은 없다. 실제로 국어기본법에는 별도의 벌칙이나 불이익 조항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중앙 및 지방자치단체등 공공기관의 자발적 준수의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하지만 변화의 조짐은 보인다. 서울 강동구는 보도자료에 사용된 용어와 문장을 사전에 감수한 뒤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방식으로 쉬운 공공언어를 실천해 2025년(2024년 실적)에 이어 2026년(2025년 실적)에도 서울시 자치구 중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제도가 아닌 의지로도 변화가 가능하다는 증거다.

언어는 단순한 소통의 도구가 아니다. 누가 정보를 이해하고 누가 배제되느냐를 결정하는 권력이다. 쉬운 한글로 쓰인 공문서 한 장이 누군가에게는 복지 혜택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권리 회복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글이 모두의 문자가 되려면, 지금보다 훨씬 쉬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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