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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우리 나라 좋은 나라(김영명)

개같이 살고 싶다.

by 한글문화연대 2015. 3. 5.
[우리 나라 좋은 나라-55] 김영명 공동대표

 

개같이 살고 싶다.

 

우리는 흔히 나쁜 사람들보고 개돼지 같은 놈이라고 욕한다. 그런데 듣는 개돼지 입장에서는 이런 욕이 매우 억울하다. 도대체 개와 돼지가 무슨 그런 나쁜 짓을 했다는 말인가? 개나 돼지나 어떤 짐승이든지 제 먹을 것만 먹으면 다른 욕심 부리지 않고 자거나 쉰다. 나쁜 종자는 진짜 인간이다. 배부르고 배불러도 남의 것을 더 뺏어먹으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종종 개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무엇보다 개나 돼지나 짐승들은 사람들이 하는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그것들은 창피한 것을 모르고 민망한 것도 모른다. 그래서 겁이 나는데도 안 나는 척을 할 줄 모른다. 겁이 나면 겁나게 바로 꼬리를 내린다. 허세와 허영과 위선이 없다. 거기서 생기는 개체의 고뇌와 개체 사이의 갈등이 모두 없다.


사람이 가장 괴로운 것이 쓸데없는 생각 때문이다. 이 지구가 끝나면 어떻게 될까? 나는 왜 생겨났을까?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갈까? 오늘 저녁은 라면을 먹을까 풀빵을 먹을까? 박근혜를 찍을까 문재인을 찍을까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저 배고프면 먹이를 찾아다니고 배부르면 잔다. 아무런 걱정이 없다.

걱정이 있다면 배고픈 걱정이다. 아니 그런데 이건 걱정이 아니다. 그냥 배고픈 고통일 뿐이다. 내가 배고플까 새끼가 배고플까 걱정하지는 않는다. 그저 본능에 따라 먹이 사냥을 하거나 풀을 뜯어 먹거나 물이 있는 곳으로 이동할 뿐이다.

이런 말에 대해 사람들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아니 그렇게 수준 낮게 살고 싶은가? 인간이 개나 돼지처럼 살았다면 어떻게 이런 문명을 이루었을 것이며, 어떻게 뛰어난 의료 기술로 수명을 연장했을 것이며, 어떻게 온갖 물질과 놀이로 세상을 즐길 수 있었겠는가? 이에 대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다 생각하기 나름이올시다. 문명을 모르고 의료를 모르고 물질 놀이를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 나름대로의 만족을 찾았을 것이고,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은 어느 수준에서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당신은 정말로 빙하기의 선인류가 되어 맘모스와 싸우고 추위와 싸우면서 얼어 죽고 굶어죽거나 상처투성이의 고통 속에서 짧은 삶을 살고 싶소? 물론 그렇지는 않다. 누가 그렇게 살고 싶겠는가? 나도 우리 현생 인류가 이룬 그 모든 문명의 이기를 누리면서 편안하게 오래오래(는 아니지만) 살고 싶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로 그 모든 문명의 이기 덕분에 더 편안하게 살고 있는가? 네안데르탈인이나 루시보다는 물론 편안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문명의 찌꺼기들이 우리에게 많은 고통을 안기고 있는 것도 사실 아닌가?


말을 하다 보니 조금 새었다. 이런 글의 장점이 조금 새어도 된다는 것 아니던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현대 사회의 현생 인류는 쓸데없는 생각과 쓸데없는 걱정을 너무 많이 하고 산다. 쓸데없는 허세와 쓸데없는 위선과 쓸데없는 불행감과 쓸데없는 분노와 쓸데없는 우울감을 너무 많이 안고 산다. 그것이 다 인간인 체 하느라 그런 거다. 개돼지와는 다른 수준 높은 생명체임을 증명하고 싶어서이다.

그래 우리는 물론 개돼지보다 수준 높은 생명체이다. 하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개돼지처럼 단순 무식하게 살 수는 없을까?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누가 죽이면 죽고 하면서, 그 중간 중간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말이다.


물론 그럴 수 없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그래도 나는 개같이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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