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 말이 그렇구나(3)

 

장마가 길어지면서, 집집마다 습기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요즘 내리는 비는 장맛비이다. ‘장마비’가 아니라 ‘장맛비’[장마삐]라고 해야 표준말이 된다. 옛날에는 장마를 ‘오란비’라고도 했지만, 요즘에는 이 ‘오란비’란 말이 ‘장맛비’에 거의 떠내려가 버려서 옛말로만 남고 말았다. 이제 이 달 하순부터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 굵은 빗방울이 세차게 쏟아지는 날이 많아질텐데, 이처럼 “굵고 세차게 퍼붓는 비”를 ‘작달비’라고 한다. 작달비를 만나면 우산도 별 소용이 없게 된다. ‘작달비’와 정반대되는 비가, 가늘고 잘게 내리는 비를 가리키는 ‘잔비’이다.


잔비도 여러 날 내리게 되면 개울물을 누렇게 뒤덮는다. 개울가나 흙탕물이 지나간 자리에 앉은 검고 고운 진흙이 있는데, 이 흙을 ‘명개’라고 한다. 장마가 져서 홍수가 난 뒤에는 곳곳에 명개가 덮여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장마 뒤에 한동안 쉬었다가 한바탕 다시 내리는 비가 있다. 이 비가 홍수 때문에 여기저기 덮여 있는 명개를 씻어내는 비라고 해서 ‘개부심’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뭔가를 새롭게 하는 것을 비유하여 ‘개부심’이라고 한다. 비록 어절 끝에 ‘비’가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본래 ‘개부심’은 비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비를 나타내는 우리말 가운데 ‘먼지잼’이라고 하는 무척 귀여운 말도 있다. ‘먼지잼’은 “겨우 먼지나 날리지 않을 만큼만 오는 비”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편, 빗방울이 하늘에서 얼어서 떨어지는 것을 ‘우박’이라고 하는데, 이 우박은 순 우리말이 아니라 한자말이다. 우박을 순 우리말로는 ‘누리’라고 한다. [누리] 하고 짧게 발음하면 ‘사람이 사는 세상’을 뜻하는 말이고, [누:리]처럼 길게 발음하면 우박을 바꿔 쓸 수 있는 순 우리말이 된다.


 

‘누리/우박’ 하면 연상되는 ‘천둥’과 ‘번개’는 모두 우리말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천둥’은 처음부터 우리말은 아니었다. 본래 한자말 ‘천동’(天動)이 들어와 쓰이다가 [천둥]으로 소리가 바뀌어서 우리말화한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천둥’보다 먼저 써 왔던 순 우리말은 ‘우레’이다. 그래서 우레가 치면서 함께 내리는 비를 ‘우레비’라고 한다. 가끔 ‘우레’를 ‘雨’(비 우) 자에 ‘雷’(우레 뢰) 자를 써서 ‘우뢰’라고 알고 계시는 분들이 있는데, ‘우뢰’라는 한자말은 없다. 반면에 ‘번개’는 순 우리말이다. ‘갯가’라든지 ‘개울’, ‘개천’처럼 물이 흐르는 곳이 ‘개’이기 때문에, 번개나 무지개는 모두 물과 관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기지/ 한글문화연대 학술위원>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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